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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동양철학 > 유교철학/주역 > 주역
· ISBN : 9791190526197
· 쪽수 : 214쪽
· 출판일 : 2020-08-28
책 소개
목차
감사의 말씀
머리말을 대신하여
제1장 : 영원은 없다. 잠깐일 뿐이다 ·9
제2장 : 세상살이는 조금 흔뎅거려도 괜찮다 ·33
제3장 : 이 세상에는 무(無)는 없다 ·59
제4장 : 존재는 존재 없이도 존재한다 ·83
제5장 : 시간은 마음의 품물(品物)이다 ·107
제6장 : ‘지금’이 초월이다 ·131
제7장 : 하늘도 내 것이 아니고 땅도 내 것이 아니다 ·157
제8장 : 실재가 관계의 산물이듯 주역은 공간 안에서 천하를 건너다닌다 ·185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렇기는 하지만, 그러나 나는 내 자신을 통해 영원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내가 내 자신인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인간인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법이다. 인간은 인간이 되기 위하여 언제나 자기 자신으로부터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달팽이는 달팽이가 되었다. 박쥐는 박쥐가 되었다. 인간은 인간이 되었다. 참나무는 참나무가 되었다. 청량산은 청량산이 되었다. 달팽이는 달팽이를 알고 있을 것이고, 박쥐는 박쥐를 알고 있을 것이다. 참나무는 참나무를 알고 있을 것이고, 청량산은 청량산을 알고 있을 것이다. 돌멩이는 영물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영물이다. 영물일 것이다. 영물이란 자기 자신의 품안에 영혼을 끌어안고 있는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다. 영물은 제 혼자 편협하지 않으며, 제 홀로 독선적이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영혼은 어디 있는가. 영혼은 어떤 것에 혹은 어떤 곳에 갇히지도 않는다. 달팽이의 영혼을 보라. 박쥐의 영혼을 보라. 참나무의 영혼을 보라. 청량산의 영혼을 보라. 영혼은 철두철미 자기 자신을 자각한다. 영혼은 빛이기 때문이다. 빛은 양의 모습을 띤다. 모든 물질 역시 빛을 숨기고 있다. 이 숨김[즉, 음]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존재의 틀인 것이다. 물질을 보라. 물질의 숨김을 보라. 물질은 영도의 자리에 숨어 있다[즉, 물질이라는 것은 실은 속이 텅 빈 쭉정이일 뿐이다]. 불교의 우주관으로 본다면, 그것들은 공기층에 깔려있는 풍륜의 형상일 뿐이다. 우리는 왜 인간인가. 우리네 삶이란, 따지고 보면 물질의 자리로 내려온 허공인 셈이다. 형상세계의 숨구멍을 들여다 보라. 우리는 물질의 겸허함을 보고 다시 깨닫게 된다. (제1장 : 영원은 없다. 잠깐일 뿐이다 중에서)
정신이 맑으면, 마음도 맑아진다. 내 마음이 맑아지면, 나는 천상의 음악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천상의 음악은 용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모양을 띤다. 이 노래의 모양을 보자. 아래는 소슬바람이 불고, 위로는 우레가 치솟는다. 주역은 이 움직임을 가리켜 ? 뇌풍항이라고 불렀다. 항은 ‘항상’ 항恒이다. 사랑은 그러니까 하늘로 날아오르는 우레소리를 닮는다. 하늘의 정체를 보라. 물질의 정체를 보라. 하늘의 움직임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혜택을 준다. 물질의 움직임 또한 누구에게나 평등한 혜택을 준다. 그것을 일컬어 천지자연의 평상심이라고 부른다. (제2장 : 세상살이는 조금 흔뎅거려도 괜찮다 중에서)
말이 많으면 자주 궁색해진다. 속을 비우고 그 텅 빈 중을 지켜가는 것만 못하다(다언삭궁 불여수중 ??노자?? 5장). 말이 많으면 왜 궁색해지는가. 말이 많으면 기다림이 사그라지기 때문이다. 물은 흐른다. 시간은 쌓인다[즉, y축]. 연못은 고인다. 시간은 행동이었다. 시간은 업적이었다. 공간은 고여 있다. 연못은 공간이다. 공간은 그릇이었다. 그런데 시간은 공간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마침내 시간과 공간은 한 몸으로 뭉쳐버린 것이었다. 공간은 자신의 몸속에 시간을 쌓아둔다. 이때부터 시간은 흘러가지 않는다. 시간은 벽돌처럼 쌓이게 된다. 주역은 이 모양[즉, ☱ 연못에 담긴 ☵ 물]을 보고 수택절이라 했다. 그릇에 행동을 담아놓은 것을 주역은 절[즉, 예절]이라고 불렀다. 음[즉, 공간]은 양[즉, 시간]을 등에 지고 있다[즉, 음부양]. 음부양이란 무슨 말이었던가. 음[즉, 몸]은 양[즉, 정신]을 제 품속에 붙잡아 앉힌다. 그렇다면, 과거로 흘러들어간 시간은 ‘소멸된’ 시간이 아니다. 공간 속에 담긴 시간은 ‘소멸되지’ 않는다. 그릇 속에 담긴 행동은 부스러지지 않는다[이를 가리켜 힌두교에서는 다른 말로 업 Karma라 했다]. 그러기에 생명 속에 깃든 단 한 토막의 시간은 얼마나 투명하고도 맑은 영명체이랴. 그토록 청정한 시간은 돌멩이에게도 붙어있고, 빗방울에게도 붙어있다. 그것들 말고 우리는 또 무엇을 만나보아야 할 것인가. 누구를 만나보아야 할 것인가. 운명인가. 운명을 기다려야 할 것인가. 운명은 내 몸에 쌓인 시간일 뿐이다.(제3장 : 이 세상에는 무(無)는 없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