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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일제치하/항일시대
· ISBN : 9791190631709
· 쪽수 : 264쪽
· 출판일 : 2023-09-25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 나의 일생 …… 4
글을 쓰며/ 돌올한 방석댁은 모도가 정기로다 …… 11
1부
고향 방석 마을에서의 생활 …… 21
2부
무섬 마을에서의 시집 생활 …… 53
3부
무섬 마을에서의 일상 …… 85
4부
해방과 6.25 …… 157
5부
자녀의 혼인과 근대화 …… 187
어머니를 추억하며 …… 213
불효여식 때문에 돌아가신 어매에게 늘 죄스러운 마음으로 살아왔다
첫째, 딸 둘매(진옥 鎭玉) …… 215
어머니와 재봉틀 네째, 아들 숙진(일진 日鎭)) …… 221
어머니와 번데기 다섯째, 아들 재현(在鉉) …… 229
어매와 하얀 가루약 여섯째 딸 순둘(鎭姬) …… 232
어머니와 화투 일곱 번째, 막내 아들 기현((基鉉) ……236
에필로그/ 나의 어머니 박명서 셋째, 아들 규진(圭鎭) …… 241
발간 축시/ 벌방댁 마음 김기진(시인)…… 247
참고자료 …… 250
책속에서
비가 오면 종가댁 할배는 갓이 비에 젖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 위에 갈모를 덮어 쓰시고 긴 담뱃대를 허리 뒤로 가로 잡고 마실을 다니셨다. 갈모는 한지에 기름 먹인 유지(油紙)로 만들었다. 비가 갈모에 내리면 기름종이라 주르르 굴러 떨어진다. 그 할배는 부싯돌로 불을 아주 잘 붙이고 담뱃대를 피워 무는 것을 여러 번 봤다. 우리 아부지 담뱃대는 종가댁 할배 거 보다 작았다
그날 저녁 상방에 신방을 차렸다. 낡아빠진 병풍으로 창문을 가리고 요를 깔고 이불을 준비했다. 할매는 신랑이 들어오면 목례를 하고 일어서서 맞이해야 한다고 했다. 신랑이 들어오니 돌개바람이 이는 것 같았다. 가슴이 메여왔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일어서면서 목례를 했다. 이어서 신랑이 갓을 벗고 두루마기를 벗고 자리 앉으면서 눈짓으로 나보고도 앉으라고 한다. 나는 어쩔 줄 모르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눈치껏 한쪽에 앉았다. 우리는 한참을 무덤덤하게 그렇게 앉아 있었다. 창밖에서는 누군가가 창호지에 침을 묻히며 구멍을 내는지 부스럭거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서 아부지인지 누군가가 창밖에서 아이들한테 "거기서 뭐하노?"하니 아이들이 달아나는 소리가 난다. 그렇게 말 한마디 없이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우리는 첫날밤을 지새웠다.
처음 몇 해 동안 외나무다리 건너기가 가장 힘들었다. 아이들은 그 좁은 다리 위를 막 달리며 건너가는 게 신기했다. 발바닥만한 좁은 판자 위를 걷기도 힘들고, 물살이 센 데는 다리가 사시나무 떨듯이 떨렸다. 그러면 내 다리도 후들후들 떨렸다. 어지러워지고 물에 빠질 것 같은 기분이다. 지게 작대기나 지팡이를 잡고 간신히 건너곤 했다. 몇 년 지나니 물동이나 참 방태기를 이고도 빨리 건널 수 있었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꾸준히 다니니 익숙해진다, 마치 시집살이에 적응하는 것처럼.
무섬 동네는 삼면이 강이고 동네 뒤는 산이라 이웃 동네도 면소재지도 읍내도 가기가 쉽지 않다. 가마 타고 시집살이 하러 온 새댁은 외나무다리 건너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먼저 시집 온 이웃집 아지매들이 갓 시집온 내게 겁을 주는 이야기도 가끔했다. "꽃가매타고 외나무다리 건너 시집오면 꽃행상(꽃상여: 喪輿)타고 죽어서야 다리를 건너간다네." 외나무다리 꽃가마 길이 꽃상여 길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