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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0758970
· 쪽수 : 256쪽
· 출판일 : 2020-10-12
책 소개
목차
환희를 찾아서
트린
고양이 소년
Merci(메르시)
서핑 보호 구역
개를 끼고
싫다고 해도 굳이
작가의 말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어찌어찌하여 500에 55를 낼 수 있게 되든, 아니면 500에 45짜리 다른 방을 찾든, 어느 쪽이든 삶이 그다지 즐거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애초에 그것이 문제였다.
‘즐겁지 않다.’
즐겁지 않은 이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억울해졌고, 결국 방을 빼기로 했다.
대신 돌려받은 보증금으로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인생에 인위적인 사건을 만들자. 결심만으로도 마음이 담대해졌다.
태풍이 지난 뒤 숲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에는 별이 가득했다. 간만에 별 사진을 찍고 싶었다. 카메라 뷰파인더 안에 점점이 박힌 별들을 선으로 이어 별자리를 가늠해보았다. 그럴 때면 문득 별들을 잇듯 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질문들이 이어졌다.
캠프장에서 현서의 말을 계속 들어주었더라면, 우리 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직감을 착각으로 여기지 않았더라면, 옆 반 선생님에게서 따돌림 당하는 아이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럴 리 없다고 웃어넘기지 않았더라면, 그날 밤 별자리를 설명해주듯 그 아이에게 세상을 버티는 법을 말해주었더라면…….
그랬다면 현서는 자신이 찍은 별자리 사진을 확인할 수 있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덧없는 질문들을 반복했다.
밤하늘을 찍기 위해 필름 한 롤을 다 써버리고도 답을 찾지 못했다. 이 필름의 서른일곱 번째 사진이 제대로 현상된다면, 현서가 잠들어 있는 곳에 두고 오리라.
“포기해. 분위기를 봐.”
오늘도 배는 뜨지 않았다. 내일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했다. 매표소 직원 말대로 항구 분위기는 어제보다 더 어수선했다. 노숙하는 난민의 수가 족히 두 배는 되어 보였다. 그들은 몰래 내다버린, 바닷물에 섞이지 않는 기름이 이룬 띠처럼 항구 여기저기에서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바위 같은 얼굴을 한 난민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바다 곁에 있는데도 사막 한중간에 있는 듯 텁텁한 기분이었다. 습기 하나 없는 건조한 모래바람이 맹렬히 휘몰아쳤다. 회오리에 휩쓸릴까 싶어 얼른 돌아섰다. 그때 칭얼거리다가 엄마 품에 지쳐 잠든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의 침과 눈물이 엄마의 가슴팍에 동그랗고 짙은 얼룩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