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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성경의 이해
· ISBN : 9791191239850
· 쪽수 : 256쪽
· 출판일 : 2022-07-28
책 소개
목차
여는 말
성서의 시각적 읽기, 그리고 신상으로 살아가기
성서의 시각적 읽기
신상으로 살아가기
인간됨과 창조 이야기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
새뮤얼 박의 《전쟁 때의 창조》
새뮤얼 박의 《베레쉬트 바라》
믿음의 손
하갈의 불운한 운명과 동정 어린 시선
불행과 동정을 넘어서는 믿음의 어머니의 손
꽉 막힌 현실, 위를 가리키는 손
믿음을 점검하는 손
소망의 발걸음
머문 별을 보다
권리를 찾는 과부
아리마태아 요셉은 무엇을 찾았는가
차마 못하는 마음과 정의
정의로운 요셉의 차마 못하는 마음
위로의 아들, 요셉
포도원 주인의 정의와 차마 못하는 마음
기적의 내면
‘기적’이 놓인 오늘날의 자리
사마리아 여인의 우물 속
내가 아는 한 가지
기억의 윤리
호세아의 가족 기억하기
크리스마스와 거절된 위로
이 여인을 기억하는가?
사랑의 힘
합당한 예절로 뵈뵈를 영접하라
필레몬의 쓸모없는 종을 사랑하는 형제로 받아들이기
기만의 비극
디나는 어디에 있느냐?
무엇이 반복되는가?
빌라도의 씻어낼 수 없는 손
측은지심의 보행 - 길 위의 예수 -
나가는 말
보론
저자소개
책속에서
나는 이 책이 고갱의 그림이 한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00여 년 이전에 기록된 성서의 구절을 붙들고, 그것을 자신의 혼과 영과 육으로 그려낸 화가의 그림을 찬찬히 살피면서 중요하 지 않은 듯 뒤로 미뤄놓은 삶의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잠깐이라도 머물러 보자. 영원에 관해 묻고 서로의 지식과 경험을 겸손하게 나 눌 때 우리는 더욱 인간다워지고, 그래서 하느님에게 다가갈 수 있 다. 많은 정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많은 질문, 그것도 영원과 진리와 아름다움을 향한 물음을 가진 사람이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하느님의 영이 그렇게 인생의 본질을 묻는 이들에게 은혜로 함께 해 주시지 않을 리 없다. 이 책은 그러한 일을 도우려 한다. 답보다는 더 위대하고 섬세한 물음을 독자들과 더불어 묻고 생각하려 한다.
야훼 하느님을 나타내는 신상을 절대 만들지 말라는 계명은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선언을 배경으로 읽어야 한다. 인간이 하느님의 신상이니 그를 하느님 대하듯 존중해야지 다른 신상을 만들고 그것에 절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는 뜻이다. 신상을 따로 만들면 안 되니, 그것을 따로 둘 신전이 필요 없다. 이것은 하느님을 만나고, 그가 현현하는 신전을 전면 부정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하느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이 있는 모든 곳이 신전이라는 의미다. 그러니 애당초 성서는 온 세계를 신전으로, 모든 인간을 신상으로 선언하는 급진적 가르침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 곧 그분의 형상으로 이 세상을 신전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의 몸이 신전이고, 그를 통해서 모든 사람이 하느님을 오감으로 체험하도록 살았다. 따라서 그를 따르는
이들의 몸, 그리고 그 모임이 신전이 아닐 수 없다. 거룩한 산 제물 로 자신의 삶을 드리는 사람들의 모임은 임마누엘의 신전이 된다.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고, 이 세상과 길항하면서도 새 세상의 꿈이 실현되는 움직이는 신전이다. 신앙인들은 성서의 뜻에 따라 세상 을 신전으로 삼고 신상으로 살아간다. 그러니 누군가 “돌 위에 쌓 은 돌”을 두고 신전이라고 부르거든 그것은 성서적 신앙이 아니라 고 말해주어야 한다. 이처럼 성서의 시각적 읽기는 종국에 신의 형상으로서 살아가 기를 향한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우리 삶의 신앙-예술적 형상 화다. 성서 본문을 시각화하고 나아가 예술화하려는 노력은 우리 삶을 시각화하고 나아가 신앙-예술화하려는 것으로 향한다. 성서 를 읽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삶을 신앙-예술품으로 조형해 나가려는 것이다.
프레데릭 구달(1822~1904)은 하갈과 이스마엘에 대해서 통념과는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그림 10). 하갈은 어린 이스마엘과 함께 뒤돌아서 아브라함의 집을 보지 않는다. 그는 아브라함에게 기대기보다 하느님의 언약을 믿는다. 비록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정처 없이 떠돌 수밖에 없는 막막하고 광활한 광야뿐이고, 몸에 지닌 것이라고는 물 한 동이와 빵 한 덩어리뿐이다. 아이는 어리고, 자신은 유린당하기 쉬운 여자다. 그러나 하갈은 걸어간다. 불끈 쥔 오른손은 그의 믿음과 의지를 보여준다. 하갈은 물동이를 어깨에 이고 자신이 내딛는 발걸음이 결코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님을 확신하려 한다. 비록 떠나는 길에 굶주림과 지독한 갈증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그는 하느님의 돌보심을 믿는다. 이스마엘도 어리광을 피우지 않는다. 그는 빵 가방을 들고 제 몫의 일을 하려 한다. 아이는 ‘엄마’를 바라보는데, ‘엄마’의 의연한 태도를 자신도 모르게 몸에 익힐 것이다. 믿음은 동정을 자아내는 불행과 고통에서 위로를 얻으려는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언약을 믿고 나아가는 굳게 움켜쥔 손에 있다. 그렇게 꼭 쥔 손을 하느님은 잊지 않으셨다고 성서는 보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