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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1248579
· 쪽수 : 220쪽
· 출판일 : 2022-04-20
책 소개
목차
초대
따뜻한 숨, 너그러운 마음
방학
실놀이
바람이 불어와야 할 땐 불어오기를
낮이 길어지다
평화
뿌리
여름의 문턱
초록
비치코밍
멧비둘기의 고향 집 1
더위에 쏘이다
이게 말이 되나?
축하합니다
꽃은 어디에 있을까
멧비둘기의 고향 집 2
인연의 열매
어느 무구한 하루
보은
북서풍을 타고 겨울이 왔다
소설
수확
무제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우리 집은 지은 지 20년이 넘었다. 제주의 북서쪽 바다를 면하고 있어서인지 창틀이나 외벽, 문손잡이 등이 나이보다 낡아서, 겨울이면 금 간 벽과 벌어진 창 틈새로 거칠고 찬 북서풍이 ‘휘유 휘유’ 휘파람을 불면서 드나든다. 카디건을 두르고 마루로 나가서 실내 온도를 확인하니 섭씨 15도. 시각은 5시 30분. 어제는 14도까지 내려갔다. 뜨거운 물로 보이차를 내려서 남편과 마주 앉아 음악을 듣는다. 어둑한 새벽에 잠에서 깨기 위해 우리가 주로 하는 일이다.
역시 방학에는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 내키는 대로 산책을 떠나고, 철새들을 만나고, 하루 세끼를 세심하게 차려 먹고, 요가나 근력 운동을 하고, 남는 시간에는 원 없이 음악을 듣고 부지런히 책을 읽고 또 만들어낸다. 반면 숙제 같은 집안일은 남편도 나도 최대한 미뤄서 집 안 바닥은 지푸라기, 풀씨, 먼지, 보현의 털로 적당히 지저분하다. 분리수거를 하지 않은 유리병과 종이 박스가 방 한편에 쌓여 있고, 외출했다 돌아오면 집 안에서 우리 셋의 살내가 섞인 구수하고 쿰쿰한 냄새가 난다. 말끔한 실내를 좋아하지만 하고 싶은 걸 미루면서까지 집을 정돈하기엔 방학은 너무 짧다.
노루가 됐다가, 별이 됐다가. 물고기가 됐다가, 배가 되고. ㅁ이 됐다가, d가 되고 음표가 되는. 무한하게 이어지는 놀이가 결국에는 끝과 끝을 이은 한 가닥의 실로 귀결되는 실놀이를, 지구와 우리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해온 거라고. 방학을 마치면서 생각한다.
봄이 왔고 다시 나의 작은 농원 학교로 등교할 때가 되었다. 새 학기에는 또 누구와 손을 잡고 어떤 모양으로 변해가면서 생명의 끈을 엮어나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