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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1262193
· 쪽수 : 197쪽
· 출판일 : 2020-12-31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1장 봄바람이 불면 짭조름한 미역 냄새가 꽃향기보다 더 짙게 날아왔지?돌미역
2장 물건만 많으면 수심바리도 힘든 줄 몰라?전복
3장 문어 꼬치가 어디 붙은 줄 아나??문어
4장 기침엔 해삼만 한 약이 없다?해삼
5장 바닷속 절벽마다 멍게꽃이 만발하고?멍게
6장 팔도 다리도 없지만 먹성은 최고?소라
7장 성게처럼 겉은 조금 까칠해도 속이 알차고 둥근 사람이 좋아?보라성게
8장 천하에 다시없을 인물단지, 천하에 다시없을 맛?군소
9장 입속에 정말 파랑새가 살았을까??말똥성게
10장 동해 굴보다 더 실한 놈 있으면 나와 봐?굴
11장 소치·우뭇가사리·진저리·톳·돌김·도박?바다풀
물질 관련 용어
책속에서
봄이 온다. 겨우내 맵고 찬 바람 신나게 놀던 언덕에는 청보리 물결이 일렁인다. 마을 어귀 벚나무는 하루가 다르게 꽃을 단다. 음력 2월부터 3월까지 생쪽빛으로 물들인 비단 같은 바다가 미역을 준다. 작업을 알리는 어촌계 일정 따라 동해안 해녀들의 한 해는 미역으로부터 열린다. 몇 번이고 바다를 내다보며 망사리를 챙기고, 미역낫도 챙겼다. 물옷도 꺼내 한번 입어 보고, 물안경도 써 본다. 설 막대목에 전복 주문이 들어와 한나절 잠깐 물질한 것을 제외하면 올해 첫 입수인 셈이다. 지난해 늦가을 기세작업을 한 미역돌에 미역은 많이 달렸을까? 마음은 벌써 머리 타래처럼 까만 미역 너불거릴 앞바다 미역돌에 가 있다.
“문어는 바위틈에 들어가 앉아 발로 자잘한 돌들을 주워 담을 쌓아. 내다볼 구멍만 겨우 놓고 다 쌓지. 그리고 바위 안쪽에 알을 붙여. 테레비에서 바닷속 나오는 거 보니까 알이 꼭 포도송이 같더라. 그러고는 주둥이처럼 튀어나온 데로 바람을 불어 알을 호흡시키데. 알 지키는 동안은 절대 안 나와. 먹지도 못하니까 알이 부화할 무렵엔 굶어서 죽어. 그것도 엄마들이라고 애를 쓰는 거지. 불쌍치만 그런 거 다 어찌 간섭하나. 가끔 알배기 문어를 잡을 때도 있는데 삶으면 그 알이 참 맛있어. 햅쌀로 밥을 지어 놓은 것같이 꼬들꼬들해. 어떤 사람들은 먹물주머니의 먹물을 소스로 찍어 먹기도 하는데, 너무 익히면 먹물이 굳어. 알 가진 문어가 불쌍하다고? 그런 거 생각하면 뭔들 잡을 수 있겠나. 우리도 뭘 벌어먹어야 사니까 잡는 거지 문어가 미워 잡나.”
가난한 바닷가 마을에서 나이 든 부모와 어린 동생들을 둔 머리 큰 딸이 할 일이라고는 앞바다에 드는 것뿐이었다. 짧은 물옷을 입고 물질을 하다 보니 다리가 까맣게 그을려 암만 꽃 같은 처자도 맨다리로는 치마를 입을 수가 없었다. 숨 참으며 따 오는 것들 팔아 보리쌀도 바꿔 먹고 국수도 바꿔 먹었다. 옆 동네 총각과 중매로 결혼을 하고 와 보니 시집 살림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게 물속에서 보낸 세월이 사십 년을 넘고 오십 년을 넘었다. 해녀들끼리는 떨어져 사는 친자매들보다 더 사이가 좋다. 네 아이 내 아이 할 것 없이 어울려 기르고, 경조사 함께 치르며 늙었다. 비린 바람 맞으며 추우나 더우나 당하게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은, 해녀라는 바다 인연들 덕분이다. 숨을 붙들고 사는 인간이 숨을 참고 하는 일, 대단히 경건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