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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1470109
· 쪽수 : 276쪽
· 출판일 : 2025-06-26
책 소개
목차
이헤이 <모르는 사람을 봤어> 010
조혜림 <스칼> 050
임발 <그러니까 이제는> 120
손준수 <초록이 머무는 날들에> 168
편집자의 말
맺음말
책속에서
<모르는 사람을 봤어 中>
육 년 가까이 다녔던 회사를 그만둔 것은 작년 봄의 일이다. 사직서를 내기 전날 밤에도 나는 퇴근 후
파랑을 만났다. 집 앞 꼬치구이 가게에서 부장 욕을 하며 맥주를 마셨다. 이야기의 결론은 늘 같았다. 다
시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이었다. 내가 작가가 되면 부장 욕부터 쓸 거야. 사내 정치 이야기를 써야지. 편입
도 하고 싶어. 그렇지만 확신도 없는데 일을 그만두고 진학해 글을 쓰는 건 정말 미친 짓 같아. 내후년이
면 나도 서른인데. 모두가 어딘가에 제 자리를 찾아 머무르기 시작하는데, 나만 뭔가를 향해 걷는다는 건
미친 짓이잖아. 확신도 없는 일에 뛰어들었다가, 등단을 못하고, 결국은 변변찮은 직업도 없이, 평생 길
을 잃고 방황하는 삶을 살면 어떡하지. 나는 사대보험이 없는 삶이 정말 두려워. 사대보험이랑 거리가
먼 내 꿈이 너무 좋아서 지겹고 싫어. 내가 말하자 늘 묵묵히 듣기만 하던 파랑이 그날따라 이렇게 말했다.
“좋아서 싫은 게 뭐야? 그런 말이 있나?”
<파스칼 中>
윤희는 헤르메스의 요청에 따라 어떤 아이디를 만들까 잠시 고민하다 ‘파스칼’이란 이름의 아이디를
만들었다. 문과인 윤희는 아예 자신과 다른 사람 같은 아이디를 만들고 싶었고, 어디서 주워 들었던 수
학자의 이름 ‘파스칼’을 차용해 아이디를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처음엔 ‘로피탈’과 같은 수학 관련 닉네임들을 헤르메스가 매칭시켰으나 윤희는 당황한 나머지 ‘거절’을 내뱉었다. 5번 정도 여러 아이디가 매칭됐으나 윤희는 첫 채팅의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고 ‘거절’ 혹은 ‘나가기’를 연거푸 말했다. 그러다 잠들기 전 마지막에 매칭된 상대는 ‘HYEIN’이란 아이디의 유저였다.
“안녕하세요?”
<그러니까 이제는 中>
“내가 어떤 일 하는지 지금도 잘 모르지?”
일 년을 만났으면서도 네가 정확하게 무슨 일을 하는지 난 잘 몰랐다. 그때 넌 어떤 센터에서 일한다
고 했다. 네가 어떤 말을 하면 그걸 듣고도 난 특별하게 호기심의 가지를 키우지 않았다. 네가 얘기해 주
는 만큼만 겨우 들었을 뿐이다. 어떤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지 자세히 묻지 않았다. 어차피 너도 자세하
게 말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내게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하지
않냐며 대뜸 물었다. 난 사생활을 캐묻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급하게 둘러댔다. 그러나 실은 그
다지 궁금하지 않았던 게 더 정확한 이유였다. 너를 사랑하면서도 너의 세계를 몰랐다. 사랑하는 연인이
라고 해도 모든 걸 굳이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게 나의 가치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