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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7138249
· 쪽수 : 208쪽
· 출판일 : 2022-06-30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글 _006
사이
술독 사이를 걸으며 생각한다 _014
가볍게 들려오는 키보드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_018
사이코패스 _022
우리가 반말할 사이는 아니잖아요? _026
책장
그들의 이야기를 기다린다 _032
천장에 닿을 만한 책장을 갖고 싶어 _036
어떻게 살고 있나 _040
엽서
봄은 엽서의 계절 _048
빨간 펜 당신 _051
여행의 엽서 _056
수취인불명 _060
엽서로 꽃 피운 여행 _064
커피
"김 양, 여기 커피 좀." _072
원두는 두 티스푼 설탕은 한 티스푼 _078
커피를 마실 때 _081
소파에 기대어 _086
블라우스에 커피가 쏟아진다 _089
2:2:2 _093
오래된 물건
낚시대 단상 _098
손수건에 남은 잔향 _102
○○산업 신입사원 공채모집 면접실 _106
시간이 지나도 기다리는 것들 _113
달
달을 보러 가는 시간 _122
달이 뜨는 밤에는 _127
달이 핀다, 달을 편다 _131
어둠 속에 존재하기 _135
포옹
내 품의 온도 _140
어젯밤 꿈속에 _143
껴안는다는 의미, 어색함의 의미 _147
나는 서비스직이다 _152
서태지와 별책부록 그리고 S _158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와 불을 켰다
마마보이 _170
사랑의 시작과 소멸 _173
내가 돌아오는 그곳 _178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_182
어둠과 살 맞대고 _186
비싼 밥 먹는 날 _189
저자소개
책속에서
예전에 제대로 보지 못한 정원은 이제야 꼼꼼히 돌아보았다. 햇살이 눈 부셨다. 넓디넓은 정원 한편에 사람도 들어갈 만큼 큰 독이 엄청 많았다. 줄지어 선 술독들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커다란 술독은 마치 미로처럼 끝없이 많고도 많았다. 그런데 술독 표면엔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었다. 이 많은 술독은 그저 장식품인 건가 싶었다.
안내문을 읽고서야 궁금함이 풀렸다. 발효를 위해 독 표면의 먼지를 일부러 닦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귀를 가까이 대면 뽀글뽀글 술이 익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고 했다. 그 안내문을 읽고 미로 같은 술독 사이를 다시 천천히 걸었다. 걷다가 먼지가 뽀얗게 쌓인 술독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다.
닦아내야 깨끗해지는 유리창의 먼지도 있지만, 오랜 시간을 두고 술을 익게 하는 술독의 먼지도 있다. 만난 지 오래되어 이제는 소원해진 친구들을 생각했다. 명절 안부와 경조사 인사로 남은 그들과의 사이는 멀어진 것이 아니라 그처럼 먼지가 쌓인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사이에 쌓인 먼지는 어떤 것일까.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떠난 엄마는 이제 해답을 찾았겠지만, 나에게 이야기해줄 수 없으니 그 질문은 내게 여전히 질문으로 남는다. 다만 남겨진 나는, 훗날 내가 떠난 이후 남겨진 이들의 마음은 알 것 같다. 함께 하는 많은 시간, 행복한 이야기들이 '추억'이거나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그들과 함께 할 것임을 이제 안다. 그러니 오늘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다정하고 따뜻하게 한마디 건네본다."같이 커피 한잔할까요?"
일어서서 베란다 창틀을 두 손으로 세게 감쌌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의자를 밟고 일어섰다. 12층에서 올려다보는 밤하늘과 내려다보는 집 앞 공원의 풀과 나무 그리고 벤치에 울컥했다. 네가 말한 동그란 달을 보기도 전에 눈물이 차올랐다. 글썽이며 더 높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파트 사이로 달이 동그랗게 떠 있었다. 가까이서 보면 울퉁불퉁하여 못난 달은 멀리서 보면 매끄럽고 아름답다. 어두울 때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는 달은 오직 밤하늘을 배경으로 밝게 빛났다. 동그란 달이 이야기하듯 어둠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밝음이 있고 무언가 아름답다면 모난 면도 있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이제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