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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1906400
· 쪽수 : 214쪽
· 출판일 : 2025-03-27
책 소개
목차
자서(自序) 5
격식과 환대 11
격외(格外)의 생각 13
결과 무늬 15
고갱이와 멋 부림 17
고목(古木)과 큰 나무 19
고무신과 운동화 21
고추무름과 고추부적 23
공중제비와 착지 25
관(觀) 27
그늘의 힘 29
글의 지문(指紋) 31
긴장감과 탄력 33
김치와 시 35
꽃을 탐할 것인가 열매를 취할 것인가 37
꿈과 현실 39
나는 누구인가 41
나아감과 물러남 43
낚시꾼과 부자 45
남종화와 진경산수 47
노동인가 운동인가 49
달과 천 개의 강 51
달변(達辯)과 눌변(訥辯) 53
딱딱하게 굳은 빵 먹는 법 55
딴전피우기와 딴지걸기 57
땅 속의 7년 나무 위의 7일 59
때때로 익힌다는 것 61
마음자리와 발상 63
막사발의 아름다움 65
만가(挽歌)와 축가(祝歌) 67
모루와 망치 69
목동과 양떼들 71
묵향과 차향 73
물음과 울음 75
바닷물 77
반복과 변주 79
밥과 반찬 81
밥과 술 83
밥과 영혼 85
법고창신(法古創新) 87
보편성과 개연성 89
붓과 팔레트 91
빛과 그림자 93
빛과 빚 95
사막과 낙타 97
사슴의 뿔 99
산과 알피니즘 101
산등성이와 골짜기 103
살청(殺靑) 105
새의 뼈는 비어있다 107
생각의 둠벙 109
생선을 싼 종이와 향을 싼 종이 111
석복의(惜福衣) 113
성(聖)스럽거나 속(俗)되거나 115
소라게나 게고둥이나 117
소소헌과 시집 119
시시콜콜 우두커니 121
시와 진주조개 123
시적 정서와 개성 125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 127
아삼륙 129
알과 테트리스 131
여백 133
연잎의 지혜 135
염부와 소금밭 137
오아시스와 모닥불 139
운율과 시 141
원형과 시 143
위트와 풍자 145
유치찬란 147
이마에 손을 얹고 바라볼 간(看) 149
일출과 일몰 151
일상에서의 신기루 153
일상의 사소함 155
일아삼엽(一芽三葉)의 시 157
잎이거나 꽃이거나 159
장대높이뛰기와 연작시 161
저 꽃이 법문(法問)이다 163
절구와 디딜방아 165
정면과 측면 167
정적(靜的)이거나 동적(動的)이거나 169
제다(製茶)의 과정 171
제습과 가습 173
제행무상(諸行無常) 175
조기매운탕과 육수 177
주름진다는 것 179
중년의 시 181
중심과 가장자리 183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185
짧은 것은 짧은 대로 187
차 한 잔 189
창조인가 발견인가 191
초지일관(初志一貫) 193
추와 찌 195
콩이다 팥이다 197
틀과 창 199
풍자와 패러디 201
피아노와 피아니스트 203
휘뚜루마뚜루 205
흥과 신명 207
■ 집 그리고 향수 -성선경 208
■ 자술연보 211
책속에서
고갱이와 멋 부림
식물에게는 헛꽃이라는 게 있다. 참꽃은 작고 볼품이 없어 눈에 띄어도 이목을 끌지 못한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헛꽃의 치장을 한다. 영락없이 꽃처럼 보이는데 헛꽃이다. 진짜 꽃이 너무 작아 곤충을 유혹할 수 없으니 꾀를 낸 것이다. 꽃이 피면 홀딱 속아 넘어간 곤충들이 혼미하여 날아든다.
이런 멋 부림은 사람들에게서도 나타난다. 명함에 찍힌 많은 이력들은 거의 헛꽃이다. 시에 있어 멋 부림은 고갱이를 돋보이게 하려는 장치다. 멋 부림은 고갱이를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기 위에 눈길을 끌어들이는 헛꽃이다.
곤충에게서나 사람에게서나 먼저 눈이 가는 것은 헛꽃이다. 헛꽃의 멋 부림에 끌려들어가 고갱이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멋 부림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헛꽃에만 눈길이 가 고갱이를 놓칠까 하는 근심을 하는 것이다. 헛꽃은 헛꽃으로서의 역할이 있을 뿐 고갱이는 아니다. 고갱이를 놓치면 곤란하다. 헛꽃은 당의정의 설탕물과 같은 것이다. 고갱이를 잡아라. 삶의 줄기, 고갱이를.
밥과 영혼
시를 쓰는 일은 밥을 팔아 영혼을 사는 일이다. 이는 매우 고달프고 곤혹스러운 일이다. 영혼도 사고팔고 하는 자본주의에서는 적합한 직업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영혼을 팔아 밥을 사는 구조다. 밥을 팔아 영혼을 사야지 영혼을 팔아 밥을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시인은 밥을 팔아 영혼을 사는 사람이다.
어느 시인은 태어나려고 하는 “아이의 심장도 밥, 밥, 밥, 하고 뛴다.”고 시를 썼다. 이게 자본주의의 논리다. 밥이 법보다 위에 있다. 자본주의는 영혼을 팔아 밥을 사는 구조니 태아도 이미 밥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는 암시다. 아무리 숭고한 영혼도 밥 앞에서는 무력하게 무릎을 꿇는다.
밥과 영혼은 공존하기가 어렵다. 나는 많은 시인들이 밥 때문에 영혼을 팔아 힘들어하는 것을 보아왔다. 밥 앞에서는 젊은 날의 꿈도 무릎을 꿇는다.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 장난처럼 묻던 물음이 어떤 함의를 가졌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밥과 영혼이라. 시를 쓰는 일은 밥을 팔아 영혼을 사는 일이다. 곤란하다. 헛꽃은 당의정의 설탕물과 같은 것이다. 고갱이를 잡아라. 삶의 줄기, 고갱이를.
생선을 싼 종이와 향을 싼 종이
마음은 아주 크고 넓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음이 보이니 보이지 않느니 한다. 말은 마음의 소리요, 행동은 마음의 자취니, 마음은 아주 분명하게 보인다. 그리고 빙산일각(氷山一角)이라, 보이는 부분 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크다. 그리고 그 마음이 다 시의 행간에 담긴다. 생선을 싼 종이는 생선 비린내가 나고, 향을 싼 종이는 향내가 나기 마련이다.
같은 나무를 보고 어떤 시인은 전신주를 떠올리고, 어떤 시인은 미륵상을 떠올린다. 전신주를 떠올리는 시인은 전신주에 마음이 가 있고, 미륵상을 떠올린 시인은 미륵에 그 마음이 가 있다. 그 마음이 행간에 담긴다.
말은 마음의 소리다. 시는 그 마음의 소리를 가장 잘 드러내는 양식이다. 시인은 단어 하나 토씨 하나에 그 마음을 다 담는다. 시를 읽는 독자는 어떤 평론가 보다 예리한 눈을 가지고, 그 마음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