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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운동 > 사회운동가/혁명가
· ISBN : 9791192628318
· 쪽수 : 840쪽
· 출판일 : 2024-06-20
책 소개
목차
감사의 말
1부
엠마 골드만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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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이제 나는 미국, 뉴욕주의 꽃의 도시에 위치한 공장에 있었다. 아주 모범적인 공장이라고 들었다. 분명, 가슨 의류공장은 러시아에서 일하던 장갑 공장에 비하면 대단한 발전이었다. 작업실은 컸고 밝았으며 공기도 잘 통했다. 저마다 팔꿈치만큼의 개인공간도 있었다. 아버지 사촌 공장에서 구역질나게 나던 지독한 냄새도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일은 더 고됐다. 점심시간은 30분밖에 주어지지 않았고 하루의 일이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다. 엄격한 규율 때문에 자유로운 이동이 금지되었는데 심지어 화장실을 갈 때조차도 허락을 받아야 했다. 또 십장의 끝도 없는 감시는 내 가슴을 돌처럼 무겁게 짓눌렀다. 하루하루 일이 끝날 때마다 나는 기진맥진했고, 겨우 내 몸을 끌고 언니네 집에 돌아가 침대에 누울 힘만 남은 상태가 되었다. 이런 끔찍하게 단조로운 일상이 한주, 또 한주 계속되었다.
그와 함께하면서 알게 된 것은 우리는 너무 다른 사람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처음, 제이컵에게 끌렸던 것은 그가 책을 좋아하던 모습 때문이었는데, 이제 그는 더 이상 책에 관심이 없었다. 이제 직장 동료들과 어울려 카드게임을 하고 춤이나 추러 다녔다. 그에 반해 내 안은 분투와 열망으로 가득 차고 있었다. 정신의 세계에서 나는 여전히 러시아에,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살았고 그곳에서 내가 읽은 책들, 보았던 오페라들, 내가 알고 지내던 학생모임 속에 머물렀다. 점점 로체스터가 싫어졌다. 하지만 이곳에 도착해서 유일하게 알고 지낸 사람이 커쉬너였다. 그는 내 삶의 공허함을 채워 주었고 그런 그에게 강하게 끌린 것 또한 사실이었다. 1887년 2월 우리는 로체스터에서 유대식 결혼식을 올렸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것들이 꼭 사치스러운 건 아니라고 봐요.” 나는 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외려 그것들은 필수품이죠. 그런 아름다움 없이 삶은 견딜 만한 것이 못 돼요.” 이렇게 말은 했지만 속으로는 버크만 말이 맞다는 것을 알았다. 혁명가들은 자기네 목숨마저 바치는데 아름다움을 포기 못한다는 게 말이 된단 말인가? 젊은 예술가는 내 안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나 역시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쾨니히스베르크에서 가난하게 살 때 그 삶을 견디게 해준 건 이따금 선생님들과 함께한 소풍이었다. 숲, 달빛이 은은히 비추는 들판, 머리에는 풀잎으로 왕관을 만들어 올리고 꽃도 꺾고… 이런 일들이 괴로운 집안 환경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더랬다. 어머니에게 혼날 때나 학교에서 어려움이 있을 때, 이웃집 정원에 핀 라일락이나 가게에 진열된 형형색색 실크 천을 보면 모든 게 아름답고 환해지면서 나의 슬픔을 잊을 수 있었다. 정말 가끔이지만 들었던 음악도. 좋은 혁명가가 되기 위해 이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걸까 나는 궁금해졌다. 내게 그럴 힘이 과연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