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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기억

폭풍의 기억

손영목 (지은이)
도화
15,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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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기억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폭풍의 기억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91192828220
· 쪽수 : 406쪽
· 출판일 : 2023-06-30

책 소개

손영목 소설가의 장편소설로 우리가 대한민국 독립을 논하려면 제국일본의 식민지 시대를, 전체는 아니더라도 그 마지막 단락은 필수적으로 되짚어봐야 하고, 독립정부 성립과 그에 뒤이은 6·25 한국전쟁의 불행한 비극 전모를 꼼꼼히 천착해봐야만 그 이후의 국가발전과 민족주체성 확립의 근거가 튼실해진다는 신념으로 저자가 3년에 걸려 완성한 작품이다.

목차

1~39 / 11

저자소개

손영목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7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197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1982년 경향신문 장편소설 당선 1999년 현대문학상 수상 2004년 한국문학상 수상 2007년 채만식문학상 수상 2019년 계간문예문학상 당선 2024년 탄리문학상 대상 수상 한국소설가협회 부이사장·이사장직무대행(역임) 한국문인협회 이사·문협60년사편찬위원장(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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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아들을 재촉해 방에 들여보내고 다시 아궁이에다 부채질을 하는 주선의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잠시 후면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리게 될 시련이 두렵고 막막해서였다.
주선은 자기가 왜 이런 상황과 만나야만 되는지,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억장이 무너질 노릇이었다. 같은 골목 안 맞은편 집에 택시운전수가 살고 있음이 어째서 내 잘못이란 말인가.
열여덟 살에 명색 시집이라고 남의 집 식구가 돼서 한 남자와 살을 섞고 자식도 둘이나 낳았지만, 아직도 마음은 오산 망월리 고향과 어머니와 피붙이들에게서 떠나지 못했다.
처음 한때는 ‘경성’이라는 막연한 동경의 세계에 대한 기대감으로 어느 정도 가슴 설렌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막상 결혼해 시집살이가 시작되자, 그녀 앞의 막막한 현실은 거의 절망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말이 좋아 경성생활일 뿐, 시골 친정보다 전혀 나은 구석도 없는 시댁의 궁색한 살림살이. 허약한 몸으로 리어카 끌며 골목골목을 누비는 간장된장장수 남편. 기가 드세고 성정이 단호해 한 번도 살가운 대화로 가슴을 열어준 적 없는 시어머니. 이런 열악한 인생살이 조건들이 그녀의 앞길을, 미래에 대한 희망을 무산시켜버렸다. 자기 피와 살을 나눠가져 태어난 두 아들의 존재가 유일한 기쁨과 위안이지만, 인생에서 그게 절대적이기는 할지언정 전부일 수는 없지 않은가. 나무가 물기 많은 쪽으로 항상 뿌리를 뻗어가려고 하듯, 그녀는 아직도 원초적 평화와 정신위안의 피난처로 오산 망월리 고향을 항상 염원하고 그리워했다.

일과시간이 지나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나서야 담벼락 안 공터와 건물은 완전히 춘길 혼자 지배하는 세상이 됐다. 어쩌다 일부 직원들이 늦게까지 야근할 때도 있으나, 그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이때는 회사마당이 온통 정환과 정만의 놀이터가 됐다. 어린 형제는 아무 거리낌없이 뛰놀거나 숨바꼭질하며 즐겁게 놀았다. 어쩌다 꽃을 따든지 작은가지를 부러뜨려 아버지한테 꾸지람을 듣기도 하지만, 그런 건 약과였다. 오히려 춘길은 아들들이 명랑하고 씩씩하게 뛰놀도록 조장하는 편이고, 늦은 시간대에 플래시 들고 순찰업무를 수행할 때면 사옥 주변이나 때로는 건물 안까지 정환을 졸졸 따르게 하기도 했다.
한참 어린 정만은 논외로 치고, 정환은 아이다운 호기심으로 환경적응이 빨랐다. 낮이면 문밖에 나가서 청계천 개울가에 내려가 일부러 맨발로 모래를 밟기도 하고, 무슨 곤충 따위가 있나 하고 무성한 풀숲을 헤쳐보기도 했다. 물고기가 눈에 띄는지 보려고 얕은 물속에 발을 담그기도 했지만, 어머니의 주의를 단단히 받았을 뿐 아니라 그 자신 은근히 두렵기도 해서 조금 깊은 데는 들어가지 않았다.

지도계층이 이처럼 정부 구성 문제를 놓고 대립과 반목을 거듭하는 동안, 민중사회는 민중사회 나름으로 해방정국의 변화에 바람 속의 낙엽처럼 휩쓸렸다.
혼란기 불안심리에다 모든 생산 활동이 중단돼 생필품 품귀현상이 극심해져 물가오름세가 가팔라 살기가 더욱 팍팍해지고, 사회 일각에선 해방이 과연 진실로 좋은가 하는 회의론까지 조심스레 대두됐다. 그동안 득세해온 일본인들이 물러난 데 따른 힘의 공백을 메우려는 사리사욕에 찬 경쟁 양상이 여기저기 벌어지고, 일본인에 대한 불법폭력과 약탈행위도 공공연히 자행됐다. 조선주둔 일본군과 경찰은 자기네 거류민들을 보호하고 미국군이 진주하기까지 국내치안을 유지한다는 명분 아래 무력시위로 건재를 과시하며, 여차하면 실력행사도 서슴지 않겠다고 눈을 부릅떴다. 이래저래 해방직후의 조선반도는 전체가 혼란과 불안의 도가니였다.
옥영과 그 일가는 평범한 일개 서민계층에 지나지 않지만, 그들도 해방정국이 몰고 온 변화의 소용돌이에 누구 못지않게 휩쓸렸다.

주선이 큰아버지한테 받은 돈은 4만5,000원이었다. 화폐 자체로는 제법 큰 금액이지만, 해방 후 하루가 다르게 물가오름세가 워낙 가팔라지고 상대적으로 화폐가치는 바닥에 떨어졌기에 겨우 쌀 열 가마를 살 수 있을까 말까했다.
그렇다고 주선이 큰아버지한테 섭섭하다고 할 계제도 아니었다. 농토는 경작해서 소출이 있어야만 가치가 발생하지, 토지 자체만의 재산적 가치는 보잘것없기 때문이었다.
춘길은 아내의 치맛자락에서 떨어진 그 돈 절반으로 보문동 안감내 개천 옆에 단간셋방을 얻어 가족의 거처를 마련하고 새출발을 다짐했다. 안암동 어머니집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가장 무난한 선택이지만, 그것은 현실성이 없는 희망이었다. 어머니 성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사정하거나 고집을 들이대지도 않았다.

정환은 왠지 참을 수 없어 벌떡 일어났다. 어디 가느냐는 어머니의 걱정스런 물음에 오줌 누러 간다고 대답하곤 거적때기를 들쳐 밖에 나왔다.
정환은 항상 오줌을 누는 한쪽 언덕바지로 가서 아래를 향해 힘줘 오줌을 누며, 방금 아버지가 한 말을 되새겨봤다. 행인을 붙들고 애소해 동정심을 유발함은 갑자기 떠올린 발상이지만, 효과는 본인 자신도 놀라울 정도였다. 다시 한다면, 할 마음만 내킨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스스로 터득한 요령도 있었다. 아버지 말대로 며칠만 더하면 상당한 돈을 마련할 수 있을 듯싶었다. 아버지가 그걸 밑천삼아 무슨 장사라도 해서 돈을 벌면 가족이 밥걱정 안 해도 되고, 이런 구질구질한 방공호를 벗어나 남들처럼 버젓한 집에서 살 수 있지 않겠나 싶었다.
하지만, 가슴 밑바닥의 올곧은 이성이 반대했다.
‘남의 집 문을 두드려 밥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나가는 사람 붙들고 돈 달라는 것도 구걸이야. 그건 거지나 하는 짓이잖아. 더 이상 하면 진짜 거지가 되는 거야.’
이런 분별이 어린 의지를 확고하게 굳혀줬다. 아버지가 무슨 말로 꾀거나 윽박지르더라도 절대 따르지 않겠다고 결심이 섰다.

전쟁은 물리력의 상대존재인 군인들만 피 흘리는 싸움이 아니었다. 무고한 민초들 역시 당사자인 동시에 집단피해자였다. 이들은 결코 승자나 패자 어느 편에 굳이 서려하지 않고, 설 수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치열한 살상전에 휩쓸려 목숨을 잃고, 초토화된 폐허에서 생존의 극한조건에 지푸라기 붙들듯 매달려 허덕이며, 신체 상처와 굶주림과 절망 때문에 죽어가야만 했다. 어쩌면 전쟁의 가장 불쌍하고 처연한 피해자는 바로 이들이었다.
그 본보기 사례가 춘길네 일가였다. 현역병도 아니면서 국민방위군으로 전장에 끌려가 왼다리를 다쳐 절름발이가 된 그는 군병원에서 기본치료가 대강 끝나는 대로 퇴원해 오산 망월리 처가에 달려갔다가 청천벽력을 맞은 듯 눈앞이 캄캄했다. 아내와 작은아들이 피란길에 미군기의 오폭을 당해 폭사하고, 참혹한 지옥 속에서 요행히 목숨을 건진 큰아들은 격심한 충격에 갑자기 벙어리처럼 말문이 막히다니! 춘길은 이 가당찮은 불행 앞에서 목이 메도록 오열했다. 그건 그의 여린 감성으로 도저히 감당 못할 큰 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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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DB 제공 : 알라딘 서점(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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