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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2852034
· 쪽수 : 308쪽
· 출판일 : 2024-05-01
책 소개
목차
미루별 이야기 / 9
소원풍선 이야기 / 107
옥수수빵 이야기 / 169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미루별 이야기 ☞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등에 업힌 미루가 말했어요.
“내가 죽을 때 말이야… 옆에 있어 줄 거지?”
갑자기 눈앞이 캄캄하고 발밑이 천 길 낭떠러지를 밟은 듯 휘청거렸어요. 종잇장처럼 가벼운 아이, 미루가 내 등을 빠져나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생각에 아이를 업은 손에 힘을 주었어요. 미루가 내 곁에 없는 삶… 아시죠? 전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미루의 몹쓸 병을 알고 나서도 전 어느 한순간도 미루를 잃는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아시잖아요, 당신. 그 아이는 저의 모든 것 그 이상이라는 것.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 죽으면 아주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잖아. 그러니까 죽기 전에 얘기를 많이 해야지. 그리고 또 죽을 때 많이 아플 거잖아. 그러니까 엄마가 있어야지. 그래야 무섭지 않지.”
그렇게 말하는 미루는 힘이 없었어요. 울컥 눈물이 솟고 가슴이 저렸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냈어요. 무언가… 무언가 얘기를 해 줘야 했어요. 하지만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어요.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몸과 마음이 공기 속으로 증발하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쉴 새 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울고 있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어요. 한 걸음 한 걸음 발자국을 옮기고 있었지만 걷고 있다는 생각도, 어디로 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 그저 내 등에 업힌 아이, 그 아이가 지금 나와 함께 있다는 것, 그것만이 느껴졌고, 내 기운이 다하면 누군가 이 아이를 가져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팔에 더욱 힘을 줄 뿐이었어요.
“섭섭하게 듣지는 말고… 초등학교 동창하고 먼 친척인데… 아이가 없어. 사람들은 아주 착하고 확실해요. 처음엔 갓난아이를 생각했는데… 나이도 있고, 부인이 몸도 좀 약하거든… 그래서… 딸처럼 친구처럼… 아이를 잘 키워줄 수 있을 듯해서… 나리, 이제 철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아이를 영영 잃어버리는 것도 아니고… 그쪽에서도 그런 건 고려하고 있으니 툭 터놓고…”
“어쨌든… 제 아이를 남에게 주라는 얘기잖아요.”
“아니, 꼭 그렇게 생각할 건 아니고…”
“아니요! 전 못해요. 절대 그럴 수 없어요!”
식당 주인아줌마가 처음 그 얘길 꺼냈을 때만 해도 전혀 귀에 차지 않았어요. 아시잖아요. 당신이나 나나 어떻게 자랐는데요. 우리 나리, 우리 미루 어떻게 얻은 아이들인데요.
“아이들 장래를 생각해야지. 나리는 나리대로 풍족한 집안에서 귀여움 듬뿍 받을 거고… 홀몸으로 어린것들을 어쩌려고?”
“그만두세요. 다신 그런 말씀 마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제 아이들은 제가 키워요. 내 몸이 부서져도… 갈기갈기 찢어지는 한이 있어도…!”
“쯧쯧, 고집하고는…”
그랬는데… 미루의 병을 알고 그 병의 심각성을 인정하게 되면서부터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던 거예요.
서둘러 나리를 병원으로 데려갔어요. 건강 검진을 마치고 나리 건강기록부가 나오자마자 서울로 올라갔지요.
“사실… 몇 번 내려갔었어요. 아이는 이미 봤고요.”
나리 사진을 내밀자 새엄마 될 여자가 그렇게 말하더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지만 아무래도 좋았어요. 아니, 뜨겁고 차갑고 그런 걸 따지고 있을 겨를이 없었어요.
“돈이 필요해요. 급히… 그것도 많이.”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었어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어요. 오로지 미루, 미루 생각뿐이었어요.
“보세요. 아이는 건강해요. 착하고… 속도 깊고 머리도 좋아요. 예쁘고… 예쁘고…”
그런데 그만 거기서 울음이 터지고 말았어요. 그리고 한 번 울음이 터지자 아무리 울어도 눈물이 마르지 않았어요.
“알아요, 미루 어머니. 잘 키울게요, 나리… 미루… 잘 보살피세요.”
“…….”
“수술 문제는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든 도와드릴게요.”
내 손을 잡는 나리 새엄마 눈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