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3235607
· 쪽수 : 368쪽
· 출판일 : 2025-07-09
책 소개
목차
내 목숨을 구하러 온 저승사자들
혀뿌리가 아릴 정도로 달게 사는 것이 인생!
비가 내리면 우리는 훌라를 추지
당신과 꼭 닮은 내가 여기 있다
지난날의 내가 오늘의 나를 강하게 만든다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저승사자가 데리러 올 거라는 생각은 왜 하지 못했을까. 누구에게나 죽음은 딱 한 번뿐이라 배달 후기처럼 진짜 리뷰를 확인할 수도 없다. 내가 아는 죽음이란 죽어본 적 없는 자들이 지어낸 이야기가 전부인 셈이었다. 그러니 근육질의 할머니라고 해서 저승사자가 아니란 법은 없었다. 드디어 죽을 수 있겠구나. 마음이 놓였다. 안도감에 눈이 스르륵 감겼다.
휘익, 짝!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왼쪽 볼에서 얼얼한 통증이 번져나갔다. 아팠다. 다 죽어가는 마당에 뺨을 맞다니. 이게 무슨 일이지. 눈에 힘을 주어 저승사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저승사자의 머리엔 스포츠 헤어밴드가 둘리어 있었다. 가운데엔 큼직한 나이키 로고가 박음질돼 있었고, 그 위로 아주 미세하게 검은 실밥 하나가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그런 게 눈에 들어오다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저승사자의 한마디에 그 웃음은 쏙 들어갔다.
“정신 단단히 차려라.”
하루빨리 도시로 돌아가, 내 방식대로 세상과 작별하고 싶다는 마음과 달리, 내 눈은 뚫어지게 물회를 바라보고 있었다. 높게 쌓아 올린 경계심도 살얼음 국물과 함께 스르르 녹아내리기 바빴다. 붉게 살얼음 낀 국물, 얇게 썬 당근과 오이, 양배추와 청양고추, 얇게 저며져 꽃잎처럼 단정히 놓인 전복회, 그리고 아이스크림 스쿠프로 퍼 얹은 듯 둥글게 뭉쳐 올린 투명한 오징어회까지.
꼬르륵. 뱃속이 더 큰 소리를 내며 울었고, 이를 신호탄 삼아 내 손이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숟가락은 그릇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그 안에 든 것을 힘껏 퍼 올렸다. 숟가락 위엔 밥과 채소, 오징어회가 보기 좋게 올라갔다. 자동문이 열리듯 내 입이 쩍 벌어졌고, 그 안으로 물회를 이루던 재료들이 한입 가득 들어찼다. 적당한 간격으로 알알이 씹히는 쌀알, 부드럽게 구부러지는 채소들의 아삭함, 그리고 탱글탱글 살아 있는 오징어의 탄력까지. 입안에 여름 바다가 찰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