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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3499580
· 쪽수 : 328쪽
· 출판일 : 2023-12-07
책 소개
목차
머리말
001
002
003
004
005
006
007
008
009
010
011
012
013
014
015
저자소개
책속에서
“도망칠 생각은 학교 공부가 싫어지기 시작한 때부터 했어요. 도망갈 궁리만 하다 도망을 치자니 그만한 돈은 있어야만 해서 엄마가 몰래 감춰둔 돈 몽땅 가지고 송정리행 첫차를 타버린 거요. 아무튼 그렇게 해서 버스 종점인 송정리에 내리기는 했으나 어디로 가야 할지도 막막하고, 그래서 시외버스 대기실 출입문 반대쪽에 비 맞은 가을 닭처럼 쪼그리고 앉아 버스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만 봤어요. 그러니까 시간만 흘러 점심시간이 넘었지 뭐요. 버스를 엄마 몰래 새벽에 타느라 밥도 못 먹어, 바로 옆에 보이는 만리장성식당에 들어가 짜장면 한 그릇 시켜 먹고 그냥 앉아 있는데 그것을 보신 사장님께서 왜 안 가고 있느냐는 거요. 그래서 저는 어디 일자리 없을까요. 물으니 집은 어디냐고 묻더니 사장님과 통화를 하셨지요.”
“그러면 더 물읍시다. 두 분이 서로가 좋다 해서 이렇게 부부가 되신 건가요?”
“그렇지요. 장모님은 서로 좋아하는 걸 보시고는 둘이 결혼해라. 하시는데 감사합니다, 하면서 기다렸다는 듯 큰절까지 드렸어요.”
“장모님께 큰절을 드리니 뭐라고 하시던가요”
“그런 얘기는 제가 할게요. 이 양반이 송정리 만리장성에서 보내주어 왔다면서 엄마에게 인사를 극진히 하는 걸 보니 너무도 이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우리 식당이 혹 맘에 안 들어 다른 식당으로 갈지도 몰라, 학교 갈 때 말고는 오빠 옆에 딱 붙어있다시피 했어요.”
물이지만 임찬호 씨는 맛나게도 마신다. 아무튼 아픈 당시의 얘기를 자식들에게 하기는 해도 맘만은 편지 못하다. 그것을 운명이라고 말하기에는 내 잘못도 있어서다. 계엄령이 발효되었을 때 말로만 아니라 옷이든 신발이든 감춰버리는 건 당연했음에도 그렇게 안 한 게 두고두고 후회된다. 그러니까 계엄령은 본시 진압을 목적으로 할 것이기에 곧 끝났을 텐데. 이젠 되돌릴 수도 없는 후회지만 남은 안타까움이다. 그러니까 형들의 신발이든 옷이든 한가지 만이라도 감춰버렸으면 형들은 야, 그래도 그렇지, 신발까지 감춰버리면 어떻게 하냐. 그러면서 웃고 말았을 건데 설마 했던 게 후회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