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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4171867
· 쪽수 : 268쪽
· 출판일 : 2025-09-18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005
1월 013
2월 033
3월 053
4월 075
5월 097
6월 119
7월 139
8월 159
9월 181
10월 201
11월 221
12월 245
저자소개
책속에서
아직도 탁상달력을 사용한다. 사람들을 만나서 일정을 메모할 때 폰을 이용하지만 집에서는 책상 위에 놓인 작은 달력에 기입한다. 그것도 주로 연필로 적는다. 연필과 종이의 만남을 지속하는 방법이다. 몇 자 적는 짧은 순간의 정서가 마음을 다독인다. 그날 기분에 따라서 글씨의 크기와 필체와 흘림이 모두 다르다. 나중에 잘 못 알아보는 것들도 있다. 내 글씨가 아닌 것 같은 글자들이다.
_2025년 1월 일기 「6」
발화되지 않은 것들, 언어에 접촉되지 않은 무한 세계의 우둔함 속에 몸을 맡기고 앉아 있다. 나는 그 우둔함 속에서 우둔해지고, 거친 힘 속에서 약화되며, 무한의 흐름 속에 상실된다. 이는 매우 간명한 과정이다. 무한은 명령이고 속삭임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한 채 편안하다. 언어의 옆길에 있는 물을 마신다. 언어가 알지 못하는 물을 마신다. 꾸밀 수 없는 물이다. 나는 그냥 물을 바라본다. 발화하지 않는 것을 발화되지 않게 한다.
_2025년 3월 일기 「8」
녹이 스는 것에 사로잡힌다. 녹이 슬고 멈추어진 세계에서 어떤 말 못할 불가피함을 목도한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접어든 것이다. 녹의 색은 형언하기 어렵다. 청록이나 청회색 비슷한, 그러면서 포괄적으로 검은색이다. 시간이 색으로 나타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시간이 쓰러지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초월과 우월을 내려놓고 시간이 색으로 흐느끼는 중이다.
이런 색을 어디에선가 또 본 느낌이다. 어두워질 때의 짙푸른 색이 그렇다. 이맘때, 가까이 도로로 엄습해오는 어둠뿐 아니라 멀리 산의 어두워지는 형체가 모두 청흑색을 띤다. 녹이 슬 때, 그리고 어두워질 때, 시간은 엇갈린 참회를 하는 것일까. 너무 늦었다고, 너무 빠르다고.
_2025년 6월 일기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