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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4171232
· 쪽수 : 248쪽
· 출판일 : 2024-11-20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005
1월 013
2월 029
3월 047
4월 067
5월 087
6월 107
7월 123
8월 143
9월 165
10월 185
11월 207
12월 225
저자소개
책속에서
비가 오려는지 잔뜩 흐린 날이다. 대기가 숨을 죽이고 고요가 감돈다. 대기가 숨을 죽이면 모두가 숨을 죽인다. 지금 눈앞에 보이지 않는 다른 곳에서도 이러한 고요를 따르는 것 같다. 모두 숨을 죽이고 고요를 함께 바라본다.
갑자기 정적이 깨지는 한순간을 생각해본다. 비가 한두 방울 후드득거리며 창문에 떨어지거나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자동차의 엔진 소리, 휴대폰의 알람 소리, 이런 소리가 가라앉은 기운을 흔들고 아주 얕고도 보잘것없는 소음이 무거운 것을 잊게 만든다. 생활이다. 생활이 고요를 깨뜨리는 순간을 따르면서 한없는 침묵 속에 빠져들지 않고 지낸 것일 테다. 생활은 생활을 보게 한다. 생활로 향하며 우리가 바로 소음이라는 것을 보게 한다. 그러니 고요는 생활이 갑자기 멈추는 상황일 것이다. 비가 오려고 흐려서라기보다는 생활이 문득 멈춰서 고요가 고인다. 나는 일어서서 수돗물을 튼다. 물이 쏟아지는 소리를 듣는다. 생각난 듯이 세면대의 비누 얼룩을 지운다. 고요를 지운다. 생활이다.
_2023년 4월 일기 5
속삭일 말이 없어도 걷는다. 대기를 응시한다. 대기는 내가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을 응시한다. 무엇인지는 알기 어렵다. 하지만 대기가 나를 보지 않아도 여기 있는 것은 알겠다. 존재다. 존재는 모여 있음이다. 구름이 모여 있듯 차가운 대기가 모여 있고, 마침 그 모여 있음이라는 존재 한가운데를 내가 지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