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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세계사 일반
· ISBN : 9791194263234
· 쪽수 : 816쪽
· 출판일 : 2025-01-17
책 소개
목차
머리말
서론
1. 펠릭스, 서기전 90년대
2. 왕중왕, 서기전 247-70
3. 전쟁과 소문, 서기전 70-54
4. 전투, 서기전 53-50
5. 침공, 서기전 49-30
6. 독수리와 왕자, 서기전 30-서기 4
7. 두 위대한 제국 사이에서, 5-68
8. 상업에 능숙한 사람들, 1-2세기
9. 영광과 눈물, 70-198
10. 왕조들, 199-240
11. 로마 황제가 다시 거짓말하다, 240-265
12. 총명한 여왕과 세계의 복원자, 265-282
13. 포위 공격과 원정전, 3세기 말-4세기
14. 세상의 두 눈, 5세기
15. 군인, 성벽, 그리고 황금, 5세기 말-6세기 초
16. 전쟁과 항구적 평화, 518-600
17. 최고조, 600-621
18. 승리와 참사, 621-632
19. 그날이 오면 모든 신자가 크게 기뻐하리라, 632-700
결론
왕중왕과 황제
연표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주
참고문헌
도판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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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1. 펠릭스
로마와 파르티아의 첫 공식회담은 돌이켜보면 당시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가진 사건이었다. 플루타르코스는 이후에 벌어진 일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중요하게 여겼고, 향후의 사건과 갈등 중 일부도 다른 곳에 상세히 기록했다. 좀더 광범위한 관점에서 회담에 대한 그의 기록과 자료들은 두 제국의 역사를 이해하려고 할 때 직면하게 되는 많은 문제를 예증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현존하는 기록들이 모두 로마 측에서 나온 것이고, 파르티아에서 나온 것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오로바주스의 처형과 같은 사건은 그리스-로마 사료들이 파르티아에서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일과 그 이유에 근거하고 있는데,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정보다. (…) 사상 처음 다른 민족의 사절을 만나 로마의 위엄과 체통을 지키는 가운데 외교 관계를 수립하는 것은 로마의 총독에게는 가치가 있는 업적이었다. 그것을 막강한 야만족이 로마의 우월한 무력과 도덕적 가치를 인정하는 사건으로 묘사할 수 있다면, 전쟁에서 승리한 것만큼은 아닐지라도 그에 버금가는 군사적 영광과 위신을 세우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2. 왕중왕
아르사케스 왕조는 서기전 121년에 즉위한 미트라다테스 2세의 영도 아래 서기전 2세기의 나머지 시기를 잘 헤쳐 나가는 행운이 따랐다. 선왕인 미트라다테스 1세와 마찬가지로 그는 재위 기간 대부분을 전장에서 보냈고, 과거 수십 년 동안 잃었던 영토를 꾸준히 회복했다. 지역의 유목민 부족과 다른 지도자들에 맞서 싸운 기간에 대한 사료는 부족하지만, 미트라다테스 2세는 상실한 영토를 다시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제국의 판도를 크게 넓혀 놓았다. 그는 곧 서쪽으로 진출해 서기전 112년 혹은 111년에 아르메니아를 동맹 속국으로 만들었다. 이 무렵 ‘왕중왕’이라는 호칭이 그가 발행한 동전에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는 아케메네스 시대의 전통을 되살린 것인데 어디까지가 의도적인 방침인지, 의도적인 것이라면 예전 시대의 기억이 어떻게 보존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런 동전들의 발행은 아르사케스 군주가 대제국의 주인이고, 다른 지역의 왕조는 봉신국에 지나지 않는다는 직접적인 선언이었다.
4. 전투
카레 전투는 로마와 파르티아 사이의 첫 번째 중요한 교전이었다. 게다가 두 강대국 사이에 벌어진 그 어떤 전투보다 자세한 내용이 후대에 전해지고 있어서 더욱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 전투는 지금까지 너무 포괄적인 결론이 도출되어 왔는데 그것이 실제 증거와는 별로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깊이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이 전쟁의 파급 효과다. 양측은 크라수스가 시작한 이 전쟁의 초기에는 별로 열의가 없었던 듯하다. 우리의 사료들은 이 시기에 로마가 다른 일에 몰두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며 파르티아는 로마 원로원, 그리고 후대 황제들의 많은 관심사 중 하나에 불과했음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실제로 전투가 벌어졌을 때에도 이 전쟁이 로마인들의 가장 중요하거나 우선순위의 관심사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