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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4330141
· 쪽수 : 244쪽
· 출판일 : 2024-10-21
책 소개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남자란 종잡을 수 없는 존재야.
개란 종잡을 수 없는 존재야.
시계란 종잡을 수 없는 존재야.
바람이란, 물이란, 꿈이란, 종소리란, 비발디란, 잔디란, 음표란, 기타란, 형수 형이란, 아버지란, 아버지의 애인이란, 부모란, 엄마란. 그러다 마지막에 멈추는 것은 항상 엄마. 컴컴한 옷장에 날 남겨두고서 어디로 갔을까.
나의 요람은 옷장. 그래서 지금도 옷장을 좋아한다. 아닌가. 몹시 슬퍼하거나 무서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 이건 내가 만든 신화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신화가 필요하니까.
엄마는 그냥 어느 날 불현듯 가출해서 돌아오지 않은 거고, 옷장에 가둬두거나 어디 묶어두거나 하는 그런 드라마틱한 학대를 하지는 않았다. 학대란 일대일의 대상이 되어야 벌어지는 일이 아닐까. 갇힌 공간에서 더 이상의 확장이 불가능할 때, 서로가 서로만을 바라볼 때 그래서 그것이 위협이 될 때 덜 약한 사람이 더 약한 사람을 괴롭히기 시작하는 거다. 나는 그냥 부스러기다. 엄마를 성가시게 하는 대상은 됐을지언정 위협하는 대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생은 어쩌면 음식과도 비슷하다. 모르는 음식은 영원히 그 맛을 알 수 없지만, 한번 맛을 본 것은 모른다고 할 수 없다. 그러고 보면 맛은 단지 입으로만 느끼는 게 아니다. 미각이 첫 번째긴 하지만 후각이나 시각 또한 중요하고, 더 나아가 그 못잖게 중요한 게 또 있다. 바로 촉각이다. 면이 퍼져 있다면 더 이상 면이 아니고, 질긴 고기는 이미 고기가 아니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촉각을 한 번이라도 맛본 사람은 그 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세상의 모든 전성기는 그 찰나다. 모든 것이 아주 잠깐 동안 딱딱 맞아떨어지던 그 순간. 우리는 모두 긴 어둠 속에서 아직 먹지 못한 음식을 기다리거나, 단 한 번 맛본 그 최고의 맛을 그리워하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