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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학 > 사회학 일반
· ISBN : 9791194716174
· 쪽수 : 224쪽
· 출판일 : 2025-08-28
책 소개
목차
‘트랜스로컬 감성총서’를 발간하며 / 07
전주곡 / 012
제1장 들어가며: 문화 연구는 지역 연구다 / 017
제1부 후기근대의 세 가지 전환
제2장 ‘예술’의 전당에서 ‘문화’의 전당으로 / 035
제3장 예술의 종말과 일상의 예술화: 문화적 전환 / 058
제4장 명사적 세계에서 동사적 세계로: 수행적 전환 / 074
제5장 내가 존재하는 곳이 바로 나다: 공간적 전환 / 101
제2부 호모 루덴스의 귀환과 로컬의 재발견
제6장 놀이와 장소의 재발견 / 127
제7장 제의와 공동체의 재발견 / 148
제8장 정동적 전환과 공공성의 재구성 / 164
제9장 횡단의 시대, 트랜스로컬과 트랜스모던 / 179
제10장 나가며: AI 시대의 기술과 문화, 글로컬 상상력을 위하여 / 207
후주곡 / 219
저자소개
책속에서
제1장 들어가며: 문화 연구는 지역 연구다
마음 속의 중심과 주변
필자는 부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10년을 보냈고, 열한 살이 되던 해부터 성인이 되기 직전까지는 목포에서 살았습니다. 부산과 목포, 두 지역에서의 경험은 제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후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는 서울과 수도권으로 거주지를 옮겼고, 20년이 넘는 세월을 그곳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필자는 어느 샌가 ‘서울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본격적으로 연구와 학문의 세계에 발을 들이기 시작한 시점에 서울이 삶의 중심이 되었기에, 연구자로서의 정체성 역시 서울을 기반으로 형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서울이 제 삶의 장소였을 때는 필자가 ‘서울사람’임을 스스로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이 점은 함께 생각해볼 만한 문제인데요. ‘중심지’는 우리에게 ‘특수한 장소’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하는 일화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의 마음속 지리 감각이라는 뜻의 ‘심상 지리(imagined geography)’와 관련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서울과 지방’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내면화하고 있습니다. 서울이라는 중심지는 ‘특수한 곳’으로 인식되기보다는, 오히려 ‘기준’이자 ‘일반’으로 간주됩니다. 반면, 지방은 ‘특수한 곳’ 혹은 ‘주변부’로 여겨집니다. 이처럼 중심과 주변의 구분은 공간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 형성에도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의 정체성이 머무는 가장 일차적인 장소는 바로 우리의 몸, 즉 ‘신체’입니다. 흥미롭게도, 마음속 지리 감각에서 신체 역시 ‘중심’에 위치한 것과 ‘주변’에 위치한 것으로 나뉩니다. 이때도 ‘중심’에 위치한 신체는 의식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 사회에서 주류 미국인의 피부색은 굳이 의식될 필요가 없었습니다. ‘백인white people’이라는 표현에서 ‘백(白)white’은 실제로 흰색을 의미하기보다는, ‘의식되지 않는 색’을 뜻합니다. 즉, ‘백인’은 색이 없는 존재인 반면 ‘유색인colored people’은 특정한 색을 가진 존재로 구분됩니다. 이 이분법에서 ‘백인’은 ‘무색인’이면서, 동시에 ‘유색인’의 색을 지정하고 규정하는 ‘중심’의 주체가 됩니다.
이와 유사하게, 젠더의 맥락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오랫동안 남성이라는 신체의 젠더는 사회적으로 별도의 호명이나 의식이 필요 없었습니다. 흔히 거론되었던 예지만, 대학에서 ‘여교수’라는 표현은 흔히 사용되지만, ‘남교수’라는 말은 거의 쓰이지 않았습니다. 남성 교수는 그저 ‘교수’로 불리며, 이는 남성이 곧 기준이자 일반임을 보여주었습니다[이런 예들을 거론하면서 필자는 과거형을 쓰고 있는데요. 이런 관습적 어법이 최근 들어서는 상당히 크게(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필자는 ‘후기근대적 전환(postmodern turn)’이라고 부르려 하는데요. 이에 대한 본격적 논의는 이 책의 1부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서울사람’ 역시 ‘서울’을 의식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서울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자신을 특별히 ‘서울사람’이라고 인식하지 않고, 지역적으로 좁힌다 해도 대표자로서의 ‘한국인’으로 여깁니다. 반면, 지방 출신이거나 지방에 거주하는 이들은 자신이 ‘지방사람’임을 더 자주 의식하게 됩니다. 이처럼 중심에 위치한 존재는 늘 ‘일반’으로, 주변에 위치한 존재는 ‘특수’로 인식되는 구조가 반복적으로 재생산됩니다. 결국 우리가 ‘장소’를 어떻게 인식하고, 또 어떤 장소를 의식하지 않는지에 대한 문제는 단순한 공간적 구분을 넘어, 사회적 정체성의 형성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말하기
서울에서 평론과 연구 활동에 몰두하던 20∼30대 시절, 필자에게 ‘지역’이라는 개념은 언제나 ‘한국’이라는 국가 단위, 더 나아가 ‘민족’이라는 큰 틀로만 다가왔습니다. 그 시기 필자에게 지역이란 구체적인 생활 공간이나 일상적 경험보다는, 추상적인 정체성의 일부로서만 존재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2011년 전남대학교에서 일하게 되면서부터, ‘지역’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필자에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변화의 배경에는 제 삶의 터전이 서울과 수도권이라는 중심지를 떠나, 광주라는 지방 도시로 옮겨졌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내 신체가 새로운 장소에 자리잡게 되면서, 무엇보다 ‘중심지’로부터 벗어나 ‘주변’의 위치에 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과 세상에 대해 말하는 필자의 ‘발화의 위치(locus of enunciation)’ 역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지역’이라는 단어, 특히 영어의 ‘로컬(local)’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행정구역이나 지도상의 지리적 위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직접 몸을 두고 살아가는 ‘장소(place)’와 ‘위치(location)’에 대한 깊은 자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방문이나 일시적 체류가 아니라, 그곳에서 실제로 ‘거주’하며 삶을 영위하는 경험을 필요로 합니다. 한 장소에 거주해보지 않고서는, 그곳을 둘러싼 정체성과 감각, 그리고 그 안에 깃든 문화적 의미를 온전히 체득하기 어렵습니다.
말하자면 ‘제주도 한 달 살기’와 같은 단기 체류 정도로는 ‘제주도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말하는 자리, 즉 자신의 ‘발화 위치’를 변화시키지 않는 한, 제주도는 삶의 ‘장소’가 아니라 ‘관광지’로만 인식될 뿐입니다. 이렇듯 ‘장소’와 연관된 ‘위치’는 쉽사리 변화시킬 수 없는 우리 삶의 존재론적 조건이기도 합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러한 ‘장소’는 ‘신체’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성’이라는 신체에 거주해 보지 못한 ‘남성’이, 혹은 ‘흑인’의 신체에 거주해 보지 못한 ‘백인’이 상대의 정체성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내 삶의 근거지가 광주로 바뀐 이후, 나의 ‘발화 위치’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이는 단순히 ‘한국 현대사’에서 ‘광주’라는 도시에 부여된 ‘역사적’ 의미를 더 깊이 실감하게 되었다는 식의 거창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실상 ‘역사적 광주’라는 이미지는 광주 바깥, 특히 서울과 수도권에서 더욱 극적으로 소비되고 재현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민주화의 성지(聖地)’라는 고정된 수식어와 함께 전형화된 광주에 대한 외부인의 시선은, ‘광주 사람들’에게 때로는 부담스럽고 불편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