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logo
x
바코드검색
BOOKPRICE.co.kr
책, 도서 가격비교 사이트
바코드검색

인기 검색어

실시간 검색어

검색가능 서점

도서목록 제공

박정희와 김대중이 꿈꾸던 나라

박정희와 김대중이 꿈꾸던 나라

(국민이 평안한 100퍼센트 대한민국을 위하여)

김경재 (지은이)
도전과미래
25,000원

일반도서

검색중
서점 할인가 할인률 배송비 혜택/추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알라딘 로딩중
yes24 로딩중
교보문고 로딩중
11st 로딩중
영풍문고 로딩중
쿠팡 로딩중
쿠팡로켓 로딩중
G마켓 로딩중
notice_icon 검색 결과 내에 다른 책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중고도서

검색중
서점 유형 등록개수 최저가 구매하기
알라딘 판매자 배송 35개 2,000원 >
로딩중

eBook

검색중
서점 정가 할인가 마일리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로딩중

책 이미지

박정희와 김대중이 꿈꾸던 나라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박정희와 김대중이 꿈꾸던 나라 (국민이 평안한 100퍼센트 대한민국을 위하여)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한국정치사정/정치사 > 한국정치사정/정치사-일반
· ISBN : 9791195315826
· 쪽수 : 416쪽
· 출판일 : 2016-01-12

책 소개

대한민국 역사의 중심적인 두 인물, 박정희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다룬 책이다. 저자는 박정희와 김대중의 공통점을 이해하고, 어느 지점에서 어떤 이유로 상이점이 생겨 서로 다른 노선을 걷게 됐는지를 파악해야만 비로소 대한민국 근대사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목차

서 문

제 1 장 역사는 어떻게 21세기까지 오게 됐나

·한국 100년사를 보는 사관은 무엇인가?
·쿠데타라는 용어가 어떻다는 것인가?
·마음속의 한민족 세기단을 그리며
·이데올로기와 어프로치 그리고 젊은 세대
·역사의 씨줄과 날줄은 무엇인가?

제 2 장 거인들의 탄생, 상인 김대중과 장교 박정희

·독립운동가? 친일파? 소심한 생활인?
·토인비를 배운 김대중,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연속으로 이해
·왜 조선의 청년들은 만주로 가려 했는가?
-김대중도 박정희도 “만주의꿈”을 지니고
·이순신과 나폴레옹을 꿈꿨던 박정희
·천황에 혈서 충성맹세 논란의 진상
-혈서 없이는 만주에 갈 수 없었다
·만주대륙은 조선청년들에게 무한한 영감을 불어 넣었다
·만주군 박승환 중위의 처절한 독립운동
·광복군 평진대대 박정희, 대대장으로 고국에 오다
·역사는 ‘왜(WHY)’를 가르쳐야 한다
-일제강점기의 조선청년들의 고뇌와 좌절

제 3 장 해방 후 김대중과 박정희의 공산주의 활동

·김대중은 사업가로 변신, 목포 최고 신여성과 결혼
·김대중: 공산세력에 가담해 그들의 실체를 파악하다
·박정희: 좌우갈등에 친형 박상희의 죽음을 맞다
·남로당에 포섭된 혐의로 체포된 박정희
·숙군(肅軍)이 대한민국을 살렸다: 백선엽과 김창룡의 전략
·경무부장(警務部長) 조병옥의 항변
·항일운동과 공산주의 운동이 혼재된 시대
·이승만의 의지와 예견
·김대중 대 박정희: 용공혐의를 어떻게 극복하나?
·점점 무의미해지는 공산당 논란

제 4 장 각기 다른 6.25 경험을 한 김대중과 박정희

·백의종군 박정희, 6.25 남침을 정확히 예측했다
·인민군의 속전속결과 한강 인도교 폭파 논란
·박정희 일기: 어머니 제사 지내다 전쟁 소식 듣자마자 구미역으로 달려가다
·한강 나루터를 서성이던 박정희의 분노
·악덕 자본가로 몰린 김대중, 인민군에 감금당해
·6.25와 부산정치파동으로 정치참여 뜻 굳힌 김대중
·중공군 개입 보고 후 묵살당한 박정희
·부산정치파동 후 이용문과 박정희 “이승만 정권 바꿔버립시다”
·대한민국 공산화를 막아낸 이승만
·갑신정변의 주역 서재필도 쓸쓸히 고국을 떠났다
· “미국 시민권자가 한국에서 무슨 할 일이 있겠소?”
·중국에서 보는 한국전쟁
·모택동과 주은래의 가상 대화 구성
·이념검증(理念檢證)
·삼각구도(三角構圖)

제 5 장 6.25 이후, 사업가와 군인에서 정치인과 혁명가의 길로

·혁명을 꿈꾸던 박정희
·미국“한국군에는 쿠데타를 일으킬 인물이 없다”
·고난을 예고한 세례명 토마스 모어
·60년 전통의 민주당, 절반이 제외된 역사

제 6 장 4.19 혁명, 박정희와 김대중의 기회

·부정선거와 4.19
·조용한 4.19 혁명 참여자 군인 박정희
·김대중 “4.19 혁명의 주역은 중산층과 군인”
·1950년대 이승만 정부의 묻힌 업적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쓸쓸한 귀향

제 7 장 5.16 혁명가 박정희 vs. 장면 대변인 김대중

·준비된 혁명가 박정희
·제2공화국을 지키려 했던 김대중
·박정희는 중앙청으로, 김대중은 국회로
·박정희, 반공을 국시로 내세워 미국 측 지지를 받다
·5.16으로 정치적 자산을 상실한 김대중

제 8 장 경제 살리기, 정치적 승부를 건 박정희와 김대중

·박정희: 자립경제 기초를 마련하기 위한 몸부림
·김대중: 한일국교정상화에 소신을 걸다
·한일국교정상화는 미국 측 안보전략
·박정희의 적극적인 베트남전 파병 정책

제 9 장 박정희 vs. 김대중의 최후의 승부, 대선과 유신

·닉슨 독트린, 그리고 다가오는 위기
·박정희의 국가 효율성 체제에 도전한 김대중
·박정희 “북한을 국력에서 압도하는 것만이 유일한 통일 방안”
·10월 유신, 중화화학공업 위한 국가총력 체제
·망명, 납치, 감옥, 유신시대 김대중의 시련
·김일성에 완벽한 승리를 거둔 박정희

제10장 끝나지 않은 김대중의 고난, 그리고 4번째 도전 끝에 집권

·김대중의 2차 망명과 ‘폭풍의 귀국’
·양김 분열로 대선에서 패배
·김영삼의 호남포위론: 3당 합당으로 대통령직을 거머쥐다
·김대중의 공동정부론: 김종필이 결정적으로 대선승리를 도왔다

제11장 김대중의 개방형 국가론 총체, 햇볕정책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한 김대중의 개방형 국가론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부터 시작된 햇볕정책
·햇볕정책은 김대중과 올브라이트의 합작품
·6.15 선언 이후 비판을 받는 햇볕정책
·부시정권 등장으로 흔들리는 햇볕정책
·햇볕정책 실패, 그 이후는?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정책’의 현 주소
·민주주의 국가와 1인 독재 전체주의 국가와의 협상 한계

제12장 김정은의 북한과 대한민국의 정치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통합을 저해하는 공산주의 망령
·산민통합(産民統合)은 ‘평안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한국역사의 중심 흐름이다
·박근혜 대통령 승부처는 통일대박과 국정교과서, 그리고 탕평책
·DMZ에 글로벌 평화도시를 세우자
·DMZ에 제5의 UN 본부건립은 가능한가

제13장 박정희와 김대중이 꿈꾸던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박정희-김대중의 악수하는 동상을 세우고 싶다
·아바타인가? 분신인가? 아니면 그 모두를 극복한 새로운 무엇인가?
· “두 사람이 꿈꾸던 대한민국의 비전이 아주 비슷했다고 본다”

에필로그

부 록
김정은의 북한과 대한민국의 정치
·제5대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사 - 박정희
·제15대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사 - 김대중
·자유지성 300인회 강연 - 2015년 10월 28일

저자소개

김경재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42년 전남 여수 출생 순천남교, 순천중학, 순천고교 졸업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미 버지니아 신학교 수료(1년) 미 펜실베이니아대 (U Penn) 대학원 정치학 박사과정 수료 (5년) 러 브리아티아 국립대 명예교수 월간 ‘사상계’ 정치담당 편집자 미 뉴욕 ‘독립신문’ 주필 겸 발행인 미 북미주 민통연합 전국의장 제15대, 제16대 국회의원 (순천) 김대중 대선후보 홍보위원장 노무현 대선후보 홍보본부장 박근혜 대선후보 기획특별보좌역 청와대 박대통령 홍보특별보좌관 저 서: 필명 박사월 (朴思越) ‘혁명과 우상’(김형욱 회고록, 전5권) ‘쓰러지는 역사, 일어나는 역사’ ‘축, 한국정치의 푸른 신호등’ ‘김경재의 고백 그리고 꿈 ’ ‘DJ의 독서일기’ 등 10여 권
펼치기

책속에서

박정희와 김대중의 일제시대 청년시절은 묘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둘 다 가난한 소작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제가 통제하던 학교에서 일본 역사를 배우며, 전국시대, 메이지유신 시대의 영웅들을 알게 됐다. 또 일본인 교사로부터 선진문물을 배웠다.

둘 다 이순신 장군의 전기를 읽으며 어렴풋이 민족의식을 깨닫게 된다. 박정희가 주로 무사들에 관심을 가져 군인의 길을 택한 반면, 김대중은 정치인들에 관심을 가져 정치인이 되고자 했던 차이는 있다. 둘 다 답답한 조선 땅을 넘어 드넓은 만주로 가려했다. 당시 부유층 자녀들은 주로 일본으로 유학을 간 반면, 가난한 집 똑똑한 학생들은 만주로 유학을 가는 일이 많았다. 단 김대중의 경우 태평양전쟁 탓에 만주 건국대학교 입학을 포기했다.

박정희와 김대중의 삶에 공통점이 있다는 것은 일제강점기 가난한 집안 똑똑한 청년들의 삶이 대부분 그랬으리란 점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일제가 조선을 합병한 뒤 태어났다.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났기에 주로 서울, 중국과 미국 등지에서 조직화 된 독립운동 소식을 제대로 접할 수 없었다. 누구 하나 독립운동을 하라고 권하는 사람도, 연결시켜주는 사람도 없었다. 이런 시대에 이들이 택할 수 있었던 길은 이순신 장군 전기를 읽으며 미약하나마 민족정신을 깨닫는 한편, 일본 역사의 영웅들을 배우며 군인과 정치인의 꿈을 키우는 길이었을 것이다.

범선의 돛과 풍차를 생각해 보자. 이들이 태어난 시기는 한반도에 거센 바람이 불던 시기다. 그 바람의 방향을 잘 예측해 바람의 방향대로, 문자 그대로 순풍에 돛을 달고 목적지를 향해 갈 수도 있다. 아니면 대지에 발을 굳건하게 딛고 강풍을 거스르는 풍차를 세워 동력을 생산, 다른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게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선택은 개개인 조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결정하게 된다. 이러한 개인의 결정을 가치중립적으로 보지 않고 ‘선과 악’이라는 2분법적으로 분류하는 것은 대단히 편협한 생각이다.

지금 문제시 되는 좌파 검인정 교과서에서 묻는 그대로, 일제강점기 때 태어난 박정희와 김대중과 같은 청년들에게 “항일운동가, 친일파, 소심한 소시민 중 무엇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은 없었다. 군인이든 정치인이든 사업가든, 그저 직업에 대한 꿈만 있었을 뿐이다.

김대중의 만주 건국대학교와 박정희의 만주군관학교는 식민지 조선 청년들에겐 그나마 지옥 같은 식민지 지배를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와 같은 선상의 ‘꿈의 무대’였다.


김대중과 박정희는 솔직히 표현하자면 ‘진짜 공산주의자’가 될 만한 자질도 기회도 없었다. 진짜 공산주의자들이 봤다면 속으로 웃었을 것이다.

김대중은 해운사업을 하면서도 정치적 입지를 위해 당시 자못 유명세를 타던 몽양 여운형의 건준에 살짝 이름을 걸쳤다가 보수 성향 지방유지인 장인의 호통으로 발을 뺀 청년실업가이자 야심가였다. 머리는 명석했지만 적어도 그때까진 공산주의에 관련된 독서와 사색의 흔적도 별로 보이질 않았다.

박정희는 자신의 꿈을 위해 만주로 가서 일본군 소위까지 됐지만 해방직후 부대를 탈출해 광복군에 합류했는데 장준하 등 토박이 학도병 탈출파에 밀려 우울하게 귀국, 고향에 돌아갔다. 그러다 형 박상희의 대구폭동에 연루돼 어설프게 좌익에 포섭된 형국이 됐다. 이를 피하기 위해 국군에 들어갔다. 이승만의 공산주의 세력 숙청 첫 작업이 숙군 작업이었고, 박정희는 그로 인해 죽음의 문턱까지 가게 돼 진짜로 죽을 뻔하다가 백선엽 장군 덕에 살아난 것뿐이다. 사실관계를 모르는 낡은 좌파들은 박정희를 ‘변절자’라 부를지 모르나 그야말로 이 나라 숙군의 실질적인 기획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정희는 이승만의 반공체제가 흔들리던 혼란기에 쿠데타에 이은 선거에서 윤보선으로부터 용공분자라는 비방을 받고도 집권, 이승만에 이어 김일성의 진짜 공산주의 세력과 국운을 건 체제경쟁을 해왔다. 다른 한편 김대중은 그 박정희 체제와 대결을 하며 용공분자로 몰리게 됐으나 끝내 집권을 하고야 마는 기막힌 역사의 아이러니가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변수인 ‘공산주의 망령’이라 하겠다.

제발 이쯤에서 박정희와 김대중에 대한 ‘빨갱이 논쟁’은 그만 접어줬으면 좋겠다. 이 둘에 대한 빨갱이 논쟁은 무식한 자의 악의에 찬 모략 수준에 불과하다.


김대중과 박정희는 각각 민간 피란민과 군인의 입장에서 6.25를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부산정치파동에 대해서도 직간접적으로 관여한다. 둘 다 이승만 정부의 전쟁 지휘와 부산정치파동에 대해 강한 비판적 의식을 갖게 됐다.

김대중은 주로 전쟁으로 인한 민간인들의 극심한 피해를 눈으로 보다 보니, 이승만의 강력한 반공정책보다는 민족 간 화해와 협력 및 평화 쪽에서 대안을 찾는다. 또한 부산정치파동을 주제로 피난 온 대학생들과 대화를 하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선망하게 된다. 즉 청년시절을 사업가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정치 혹은 사회운동가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된 셈이다.

반면 박정희는 6.25 남침과 중공군 개입에 대한 정보 묵살, 수뇌부의 무능과 부패로 인해 희생당한 동료 군인들의 입장에서 6.25와 이승만 정부를 바라본다. 즉 그는 국가체제를 효율성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국가 CEO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박정희와 김대중은 각각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대한민국 근현대 거대한 두 줄기의 상징적 인물로 성장한다.

그러나 이들이 6.25를 체험하면서 이승만 정부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갖고 국가적 대안을 찾으며 대통령까지 되다 보니, 건국대통령 이승만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도서관, 박정희기념재단은 있어도, 아직까지 국가와 국민이 지원하는 변변한 이승만기념관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이 포스팅은 제휴마케팅이 포함된 광고로 커미션을 지급 받습니다.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서점(www.aladin.co.kr)
최근 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