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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중국사 > 중국중세사(위진남북조~당,송)
· ISBN : 9791195597734
· 쪽수 : 436쪽
책 소개
목차
머리말 • 5
제1장 시간여행 안내
하루 두 끼 식사 17 | 다이어트는 남의 나라 이야기 24 | 아침 식사는 너무 빠르 지도 너무 늦지도 않게 28 | 송나라 타파스 31 | 무대랑은 샤오빙을 팔지 않았다 34 | 송나라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미식들 37 | 수박 전래기 46 | 맵고 얼얼했던 송나라 50 | 송나라 사람의 식사량 54 | 식사 후 양치는 어떻게 했을까? 59
제2장 연회 참가 시 필독 사항
반금련의 자리 67 | 동가와 서빈 70 | 술 한 잔에 안주 네 가지, 프랑스식 식사 73 | 주식을 먹을 때에도 술 한 잔 76 | 속옷과 식사 79 | 분찬에서 공찬으로 82 | 향 음례에 참가하지 않으면 과거를 볼 수 없다 86 | 태학생이 밥을 사야 할 때 92 | 황제의 연회에는 필참! 96 | 지각생 악비, 병권을 몰수당하다 99 | 조회 후에 먹 는 업무 식사 102
제3장 송나라에서 분식 먹기
밀가루 음식은 어떻게 남쪽으로 전해졌을까 107 | 만터우는 만터우가 아니고 빠 오즈는 빠오즈가 아니다 110 | 스페어타이어를 닮은 비상식량 115 | 왕안석 집 에서 후빙 먹기 118 | 마늘 가득한 셴빙 122 | 훈툰과 구둬 125 | 겨울에는 훈툰, 연말연시에는 탕빙 128 | 올챙이국수 커더우펀 132 | 자빠오모 135 | 화이화와 마이판 138
제4장 육류와 해산물
양을 바라보며 탄식할 뿐 145 | 황정견이 롼양을 먹는 법 150 | 황용의 칼솜씨 153 | 군자가 주방을 바꾸다 156 | 비계가 더 맛있다 159 | 수이징콰이 162 | 가 짜 물건, 가짜 고기 165 | 소동파가 좋아한 생선회 171 | 개고기, 먹을까 말까 176 | 깐랴오부터 깐첸까지 179 | 사람을 놀래 죽게 만든 광동 요리 182 | 맹물 에 삶는 것과 본연의 맛 185 | 게를 따라 거처를 정한 구양수 188 | 생명이 있는 것은 마음대로 죽이지 말라 197 | 포어지사 201
제5장 각종 식기
송나라 사람은 자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209 | 파리 그릇은 보물 212 | 국자와 젓 가락 216 | 송 고종의 공용 젓가락 219 | 어다상 221 | 삽산과 식병 227 | 가림막 과 개완 230 | 술잔에 관한 몇 가지 일화 233 | 송나라 다도 입문 241 | 송 휘종 의 차탕 그림 245 | 송나라 보온병 249
제6장 상형식품
조자 왔어요! 255 | 상형 식품 258 | 왕유줸, 양터우첸 261 | 구양수의 자즈 사랑 265 | 화식 딤섬 띠쑤빠오뤄 270 | 달콤한 환시퇀 273 | 식물성 고기 276 | 푸드 데코레이션 279
제7장 시간여행 안내
송나라 냉음료 가게 285 | 손님맞이 차, 손님 배웅 탕 290 | 소동파의 칵테일 293 | 돼지고기로 술을 빚다 296 | 쉐화주 299 | 마지막 술은 노인들에게 302 | 술잔 가득 채우고 306 | 술고래 석만경, 별명은 석오두 310 | 송나라 때 술 한 근의 가 격은 얼마였을까? 319
제8장 시간여행 안내
구양수와 연회의 즐거움 325 | 각양각색의 벌주놀이 328 | 화촨과 오행 332 | 술 자리의 관현악 335 | 즉석 가무와 시 짓기 338 | 분위기 띄우는 데는 활쏘기가 최 고 341
제9장 시간여행 안내
황제의 수라 347 | 황제가 서양 요리 먹듯 350 | 위엔양우전콰이, 버킷 리스트 353 | 경축용 순커우류 359 | 황실 연회가 고작 이 정도? 363 | 황실의 젓가락 367 | 도채연 372 | 술 취한 귀비 375
제10장 시간여행 안내
정점과 각점 381 | 밀주 제조의 죄 384 | 송나라 호화 주점 387 | 식당 인테리어 안내 391 | 요리사보다 종업원 394 | 식욕을 돋우는 관상용 요리 397 | 박매 401 | 매박 404 | 외부 식품 반입 환영 407 | 송나라 총포사 410 | 찻집 가서 된장국 마시기 413
간추린 송나라 음식 사전 • 416
옮기고 나서 • 416
리뷰
책속에서
끼니의 측면에서 보자면 송나라는 징검다리 같은 시기이다. 송나라 이전에는 대다수 사람들이 하루 두 끼 식사를 했는데, 송나라에 들어선 이후부터는 하루 세 끼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하루 두 끼 식사가 하루 세 끼 식사로 바뀐 것은 송나라 때부터이다. 그러나 이 습관이 정착하기까지 과도기가 대단히 길어서 절대다수의 송나라 농민과 궁핍한 백성들은 여전히 하루 두 끼의 전통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청나라와 민국民國시기에도 아침과 저녁만 먹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원래 송나라에서는 황제가 술을 마실 때 술 1잔에 안주가 두 가지씩 바뀌어 나오는 것이 관례였다. 서양 요리로 치면 프랑스 요리와 비슷한 셈이다. 그러나 국빈 연회나 황제가 개인적으로 베푼 연회에서는 술 1잔에 안주를 네 가지씩 바꾸어 내는 경우도 많았다.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송나라에는 공식 연회와 비공식 연회에 구분이 있었다는 점이다. 비공식 연회는 현대의 중국식 연회와 대부분 비슷해서 물 흐르듯이 요리가 상에 오르되 새 요리가 나왔다고 먼저 나온 음식을 치우지는 않는다. 연회가 끝나면 접시와 사발들이 식탁에 한 가득이니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이에 반해 공식 연회는 서양의 연회와 비슷한 격식이 있다. 새로운 요리가 나오면 앞서 나온 요리는 치운다.
남송이 세워진 이후 반세기 동 안 최소한 3,000만 명에 달하는 북방 난민들이 계속해서 장강을 건너 절강, 강소, 복건, 광동, 호북, 호남 등지에 정착했다. 북방에서 온 새로운 이민자들은 자신들의 음식 문화와 자신들이 재배하던 농작물 등을 남방에 퍼뜨렸고, 이에 밀과 밀가루 음식에 대한 수요가 단시간 내에 급증했다. 고종 만년에 강절 지역에는 밀밭이 널리 분포하고 있었으며, 항주, 소주蘇州, 가흥嘉興, 남경 등 남방 지역의 거리에 북방식 분식집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 남방 사람들이 밀가루 음식에 갖고 있던 무시와 오해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심지어는 조리법을 배우려는 붐이 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