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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필사노트 : 그립은 흘긴 눈

나의 첫 필사노트 : 그립은 흘긴 눈

윤동주, 현진건, 홍사용 (지은이)
새봄출판사
15,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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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필사노트 : 그립은 흘긴 눈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나의 첫 필사노트 : 그립은 흘긴 눈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91195881529
· 쪽수 : 200쪽
· 출판일 : 2017-01-15

책 소개

'책 안에 직접 필사하는 책'으로는 최초였던 '나의 첫 필사노트' 시리즈의 세 번째 책. 이번에는 윤동주와 홍사용의 시, 현진건의 소설을 수록했다.

목차

윤동주 <병원> 필사노트
윤동주 <병원> 필사를 위한 몇 가지 도움말

현진건 <그립은 흘긴 눈> 필사노트
현진건 <그립은 흘긴 눈> 필사를 위한 몇 가지 도움말

홍사용 <나는 왕이로소이다> 필사노트
홍사용 <나는 왕이로소이다> 필사를 위한 몇 가지 도움말

내가 쓰는 책의 후기
편집자가 쓴 책의 후기

저자소개

윤동주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 사이의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명동소학교, 은진중학교를 거쳐 평양의 숭실중학교로 편입하였으나 신사참배 거부 사건으로 폐교 조치되자, 광명중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였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立敎)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다가 교토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로 편입하였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연길에서 발행되던 『가톨릭소년』에 여러 편의 동시를 발표하고 그 외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에도 시를 발표하였으며, 문예지 『새명동』 발간에도 참여하였다. 대학 시절 틈틈이 쓴 시 19편을 골라 시집을 발간하고자 하였으나 그의 신변을 염려한 스승과 벗들의 만류로 뜻을 보류하였다. 1943년 독립운동을 모의한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다. 1945년 2월 16일 광복을 여섯 달 앞두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여 고향 용정에 묻혔다. 일제의 생체 실험 주사에 따른 희생으로 추정될 뿐 지금까지도 그의 죽음에 대해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1948년 유고 31편을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고, 1968년에는 연세대학교 내에 그의 시비(詩碑)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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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0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1920년 조선일보사에 입사, 같은 해 11월 《개벽》에 첫 작품인 「야생화」를 발표하지만 혹평을 받으며 작가로서 출발했다. 그러나 1921년 1월 《개벽》에 「빈처」를 발표하면서 1920년대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발돋움했다. ‘백조 동인’을 거쳐 ‘파스큘라’와 ‘카프’로 이어지는 현진건의 문학 이력은 그의 사상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성숙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염상섭과 함께 사실주의 문학을 개척했으며 김동인과 더불어 한국 근대 단편소설의 선구자가 되었다. 「술 권하는 사회」 「할머니의 죽음」 「B사감과 러브레터」 「사립정신병원장」 등의 단편과 《적도》 《무영탑》등의 장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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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용 (지은이)    정보 더보기
본관은 남양(南陽), 호는 노작(露雀)·소아(笑啞)·백우(白牛)·새별 등이 있지만 주로 ‘노작’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1900년 5월 17일(음력), 경기도 용인군 기흥면 농서리 용수골에서 아버지 홍철유와 어머니 능성 구씨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본적지는 경기도 화성군 동탄면 석우리 492번지다. 석우리(石隅里)는 속칭 ‘돌모루’라 불리는 곳으로, 남양 홍씨의 집성촌이며 현재 노작홍사용문학관이 위치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1919년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3·1운동 때 학생운동에 참여했다가 검거된 바 있다. 1920년 박종화, 정백 등과 순문예 동인지 『문우』를 창간하였고 1922년 문화사를 설립하여 신문학운동을 주도하던 동인지 『백조』를 발간했다. 1923년 토월회에 관여하면서 연극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후 토월회의 문예부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신극운동에 뛰어들었다. 1927년 박진·이소연 등과 함께 극단 ‘산유화회’를 결성해 창작희곡 「향토심」을 공연했으며, 1930년 최승일·홍해성 등과 극단 ‘신흥극장’을 조직해 연극운동을 이어나갔다. 「나는 왕이로소이다」로 대표되는 신시는 물론 「저승길」, 「봉화가 켜질 때에」 등 민족의 현실에 밀착한 소설을 창작하였고, 「조선은 메나리 나라」와 같은 비평을 통해 자신의 독특한 창작예술론을 전개하며 민요시 창작에도 힘썼다. 검열로 인해 「벙어리굿」 등 일부 작품은 실전되었으나 「흰 젖」, 「출가」 등 문화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편희곡을 창작하였고, 그 외에도 다수의 희곡작품을 창작, 번안, 각색, 연출했다. 매체를 확장해 라디오극을 발표하기도 하고 대중가요의 번역가이자 창작자로서 활동하기도 했으나 일제강점기 말, 희곡 「김옥균전」을 집필하다 원고를 압수당한 후에는 더 이상의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다. 1935년을 전후해 서울 자하문 밖 세검정 근처에서 흰 고무신과 흰 두루마기 차림으로 다니며 한방치료로 생계를 유지했다고 전한다. 1940년 강경·전주 등지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으며, 이 시기를 전후해 사찰을 순례하고 불경을 연구하였다. 해방 후 근국청년단에 가담해 청년운동을 전개하려 하였으나 병세가 악화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47년 1월 5일, 폐환으로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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