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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6003029
· 쪽수 : 312쪽
· 출판일 : 2017-02-22
책 소개
목차
1부 나는 꽃그늘 아래 혼자 누워 있습니다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 11
지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16
꽃그늘 20
외롭지 않아요? 25
소풍 29
청안한 삶 34
이 봄에 나는 어디에 있는가 39
여기 시계가 있습니다 46
사람도 저마다 별입니다 50
산도 보고 물도 보는 삶 56
저녁 기도 61
9월도 저녁이면 바람은 이분쉼표로 분다 68
마음으로 하는 일곱 가지 보시 75
2부 상처 없이 어찌 깊은 사랑이 움트겠는지요
쪽잠 81
우거짓국 84
누가 불렀을까 87
갇힌 새 91
꽃 보러 오세요 95
잘 익은 빛깔 99
집 비운 날 103
겨울잠 106
배춧국 110
첫 매화 113
햇살 좋은 날 116
꽃 지는 날 120
나를 만나는 날 123
아름다운 사람 126
소멸의 불꽃 130
동안거 134
산짐승 발자국 138
제일 작은 집 141
3부 오늘 하루를 아름답게 사십시오
나는 지금 고요히 멈추어 있습니다 147
찢어진 장갑 152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156
봄의 줄탁 162
주는 농사 166
여름 숲의 보시 170
오늘 하루를 아름답게 사세요 176
쓰레기통 비우기 180
대인과 소인 185
끝날 때도 반가운 만남 190
귤 두 개 196
치통 201
죽 한 그릇 207
4부 우리가 사랑한 꽃들은 다 어디에 있는지요
바람이 분다, 떠나고 싶다 217
깊이 들여다보기 222
가장 아름다운 색깔 229
산나물 235
조화로운 소리 241
가을 숲의 보시 246
고통을 담는 그릇 254
낙엽 이후 258
우리가 사랑한 꽃은 다 어디 있는가 262
생의 한파 268
참나무 장작 276
짐승들에게 말 걸기 281
겨울 산방 285
아름다운 암컷 289
가까이 있는 꽃 295
남들도 우리처럼 어여삐 여기며 사랑할까요 301
작가의 말 산에서 보내는 편지 308
저자소개
책속에서
제일 작은 집
씀바귀꽃이 노랗게 피었습니다. 아까시꽃이 피워내는 마지막 다디단 향기가 머리 위를 하얀 천 자락처럼 맴돌고 있습니다. 지난 일요일 권정생 선생님이 돌아가셔서 안동엘 다녀왔습니다. 조탑리에 있는 선생님 집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작은 집입니다. 다섯 평짜리 흙집. 『몽실언니』와 『강아지똥』 같은 훌륭한 작품을 쓰신 우리나라 어린이 문학의 가장 큰 어른은 평생 가장 작고 초라하고 비루한 집에서 살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너무 큰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댓돌에는 선생님의 고무신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나는 그 고무신을 보고 울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부족하다고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추녀 밑에는 씨앗으로 쓰려고 보관해온 옥수수 여남은 개가 매달려 있었고 평상에는 보리건빵과 뻥튀기 과자 한 봉지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먹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더 맛있는 것, 더 기름진 먹을거리를 찾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집 뒤에는 보랏빛 엉겅퀴꽃이 가득 피어 있었는데 그중 한 송이는 마루 끝에 와 서서 주인 없는 빈 마당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집은 그 엉겅퀴꽃만으로도 아름다웠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꽃, 너무 많은 것들로 집 안팎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혼자 사시는 동안 쥐가 들어와 옷 속에서 잠을 청하면 그냥 거기서 자도록 내버려두셨습니다. 혼자 주무시기에 무섭지 않느냐고 어린이들이 물으면 오른쪽에는 하느님 왼쪽에는 예수님이 함께 주무시기 때문에 무섭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가난하고 작고 낮고 비천한 삶을 선택하신 선생님의 오른쪽에 늘 하느님이 함께 계셨을 거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다”라고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새들도 침을 뱉고 가고 흙덩이조차도 외면하는 강아지똥도 고운 민들레꽃을 피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은 가시면서 자신이 지니고 있던 것, 앞으로도 계속 생기게 될 인세와 책을 통한 수입 전부를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우리는 내가 가진 것을 오직 내 자식 내 가족에게만 물려주려고 끌어안고 있는데 선생님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한 줌 재가 되어 가셨습니다.
우리는 선생님을 추모한다고 몰려가 뜨락의 민들레꽃만 짓밟아놓고 돌아왔습니다.
권정생 선생님,
가장 순결하고 맑고 높은 정신을 지녔으면서도 가장 비천하고 남루하고 외롭고 병든 모습으로 살다 가신 권정생 선생님,
선생님을 생각하면 울음도 눈물도 민망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