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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철학 일반 > 교양 철학
· ISBN : 9791196278021
· 쪽수 : 288쪽
· 출판일 : 2018-06-11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 9
만남1 프리모 레비
이상한 미덕, 거울같이 비추는 고결한 눈 .......... 18
만남2 알퐁스 도데
아름다움을 캐는 눈 ....................................... 64
만남3 가브리엘 마르케스
꿈같은 세상, 꿈처럼 풀어내는 이야기 마술사 ...... 106
만남4 엔도 슈사쿠
이해하고 또 이해하려는 깊은 마음의 눈 ........... 164
만남5 알베르 카뮈
부조리한 세상에서 의미를 찾아 고뇌한 영혼....... 222
후기 혹은 변명 ............................................. 280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내가 왜 이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렇게도 ‘깊은 공감’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는지, 왜 이 책에 눈을 박고 있는 내내 편안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는지 그 답을 조금 찾아낼 수 있었다. 강요하지 않는 눈, 해석하지 않는 눈, 평가하지 않는 눈, 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해주는 눈, 바로 그것이었다. (중략) 레비의 이런 눈은 왕태를 닮았다. 왕태는 『장자』에 등장하는 가공이다…… 그는 발하나를 잘린 불구인데, 그 이유는 형벌을 받았기 때문이다……그런데 특이한 점은 그가 무언가를 가르치지도 않고, 다정하게 어떤 문제에 대해 상담해 주지도 않는데, 그를 따르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아서 그 추종자들의 수가 공자와 노나라를 반분할 정도였다는 것이다.(중략) 내가 프리모 레비에게서 발견한 것은 단지 구경하는 시선이 아니라 진정어린 관심과 세심한 이해를 통해 각득기의를 찾아내고 수용하는 능력이었던 것 같다. 그것이 타고난 것인지 수양된 인격의 향기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분명히 그에게는 그런 맑고 고결한 ‘눈’이 있다.
이미 코르니유 영감과 풍차방앗간은 오랜 세월 하나로 강고하게 ‘이어진 관계’였던 것은 아닐까. 존재적으로 너무 깊이 이어져 있어서 떼어낼 수가 없는 그런 관계. 그런데 ‘하나로 이어져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절대 대상화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한쪽이 무사하게 잘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행복해지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 살고 있다고 느끼는 것, 그리고 생사를 함께 하고 싶어 하는 것……그런데 ‘이어져 있다는 것’과 ‘매여 있다’는 것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장자에 따르면 이 세계는 하나로 연속되어 있다고 한다. 세계는 마치 출렁거리며 운동하는 거대한 그물망과 같은 것인데 ‘나’라고 하는 개별자 역시 이 연속적인 그물망에 한 ‘코’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다만 스스로 ‘나’를 세우고 ‘마음으로 짓기成心’을 시작하면 단절이 일어나게 된다. 장자는 실상에서 이어진 관계가 관념 속에서 단절될 때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커지는 고통’뿐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나를 세워 ‘단절’시켜도 실상에서의 ‘이어져있음’에는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코르니유 영감과 풍차방앗간은 이미 이어져 있는 ‘존재의 실상’을 회복한 마음을 지닌 관계가 되는 거다……그런데 어째서 코르니유 영감에게서는 ‘매여 있다’는 답답한 구속감보다는 하나 되어 흘러가는 ‘이어져 있음’의 행복감이 느껴지는 것일까. ‘이어져 있음’이 어떤 경우에 행복한 ‘이어짐’으로 바뀌는 것일까.
고독은 언제 찾아오는가. 어떤 이들이 고독을 느끼는가.……존재의 고독을 부르는 것은 ‘사랑의 결여’가 아닐까. 마음에서 진정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사람들. 그래서 후손들이 그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광적으로 性에 집착한 것’이 아닐까. 육체적으로나마 이어지기 위해.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기 때문에 고독은 치유되지 않았고, 극단적인 형태의 사랑으로 <근친혼>이 나타난 것은 아닌가. 하지만 그 근친혼은 고독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오히려 고독을 재생산하고 결국 파멸로 이끈 것은 아닌가. (중략) 불교에서는 이런 ‘자기애’를 ‘아상(我相)’이라 하고, 더 심해진 것을 ‘아만(我慢)’이라고 하는데, 이런 극단적인 자기애는 세계와의 소통단절을 부르고, 결과적으로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게 만들기 쉽다. 돈키호테나 리어왕이 그랬던 것처럼. 바로 세상 사람들의 눈에 ‘미치광이’로 비친 이런 이들의 극단적인 자기애와 자기 세계에의 침잠이 ‘광기’로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