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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기호학/언어학 > 한국어/한문
· ISBN : 9791196843328
· 쪽수 : 276쪽
· 출판일 : 2020-05-11
책 소개
목차
들어가며
추천사 / 충청도 사람이 봐도 웃기는 충청도 이야기_ 장사익?소리꾼
제1장_ 웃음의 미학
웃음의 기제
제2장_ 충청도 해학의 요소
뭉근함/ 능청/ 너스레/ 눙치기/ 재치/ 감정이입/ 유머 본능/ 사투리의 매력/ 친근감/ 간결 / 정겨움/ 유추/ 과장/ 분수(分數)/ 말 반죽
제3장_ 충청도 해학의 원천
소심(小心)/ 의뭉/ 장광설/ 무심(無心)과 ‘비틀기’/ 핍진한 상념/ 자부심/ 자유놀이/ 삶의 희곡화
제4장_ 충청 스타일
몽니/ 모사/ 모호
제5장_ 충청도의 힘
우직/ 낙관/ 정중/ 관조/ 겸허함/ 따뜻함
제6장_ 말(言)
말의 힘/ 정치인의 수사[Rhetoric]/ JP의 레토릭―은유와 교양/ 유머의 힘
제7장_ ‘충청도 따라 하기’의 필요성
청풍명월이 전하는 말
■ 참고문헌
저자소개
책속에서
린위탕과 소쉬르의 분석이 틀리지 않는다면, 다른 지방에 비해 충청도에 해학이 풍성한 근원적 배경은 ‘관조 습관’과 ‘언어 환경’이 될 것이다. 필자는 이런 충청도 사람들을 ‘청풍명월’이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로 한다. 달처럼 한적하니 밤하늘에 떠서는 안 보는 척하면서 세상만사 다 굽어보고, 분명히 느낄 수 있을 만큼 존재감을 드러내는 소슬바람 같은 까닭이다.
(중략)
30년 전 충청도의 어투와 화법에 꽂히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충청도의 해학에 매료당했다. 오랜 시간 경상도와 전라도가 우리 사회를 양분하다시피 하면서 갈등을 보이는 시간을 겪은 탓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삶이 고달프던 시절 친한 친구는 어쩌다 만나면 코미디 영화를 보자고 제안하곤 했다. 그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제3의 도’로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한국 현대사 외곽에 머물러온 충청도의 사람과 언어에 꽂힌 것이다. 그러면서 ‘충청도는 왜 웃길까?’를 화두로 삼기 시작했다. 언어의 특성과 구성원의 개성 그리고 지역 특색이 망라됐다. 필자는 점점 충청도의 퍼스낼리티가 진영논리에 발목 잡힌 우리 사회의 강퍅한 경직성을 풀어줄 수 있는 멋진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갈수록 더 급해지고 더 거칠어지는 우리의 매너와 언어 환경도 ‘충청도 따라 하기’를 하면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청풍명월’을 닮아 여유와 해학을 아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면, 세상은 훨씬 부드럽고 편안해질 것이라 확신한 까닭이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 본문 ‘들어가며’ 중에서
테리 이글턴은 웃음이 “사회적으로 속속들이 코드화된다.”라고 말한다. “웃음의 요소들이 사회적으로 특정돼 본능과 문화 사이에 존재하는 까닭”이라는 것이다. 웃음을 코드화시키는 기제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현실 비판, 세태 풍자, 자학 등이다.
(중략)
우리 사회에는 ‘중2병’에 힘들어하는 부모들의 고초를 담은 이런 우스개가 있다.
“북한이 쳐들어오지 못하는 건 중2가 있기 때문이다.”
중2가 그만큼 다루기 어렵고 무섭기까지 하다는 데서 비롯된 유머이다. 한 꺼풀 벗기고 들어가면 남한의 안보 의식이 중2에나 기댈 만큼 매우 헐거워졌다는 송곳 같은 지적이 숨어있다.
정치판을 소재로 삼으면 이런 유머도 가능해질 듯싶다.
“‘나쁜 놈의 반대말은 ‘착한 놈’이 아니라 ‘더 나쁜 놈’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정치가 나아지지 않고 여전히 표리부동한 정치 모리배들이 등장해 국민을 실망하게 하는 우울한 세태를 풍자하는 씁쓸한 웃음일 것이다.
2007년 10월. 충청남도 예산 장터. 중년 사내 둘이 국밥집에 앉아 농주 비워가며 이바구에 여념이 없다. 안주로 시킨 수육은 벌써 절반이 사라졌다. 얼굴이 불콰해지자 말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소머리 국밥 한 그릇 뜨러 들어갔던 필자는 그들의 대화에 집중하느라 음식 맛 음미는 뒷전이 되었다. 얼른 손전화의 녹음 버튼을 눌러 채록에 나선다.
― 그러구… 며칠 뜨악허더니 워디가 션찮었담? 누구 말마따나 봄 도둑 모셔다 놓구 가을 도둑 쫓기가 더 급허던가 벼?
― 그것두 그거지만 하우스 지붕이 션찮아서 그놈 고치느라… 차일피일허다 내려앉게 생겨서 자재 사다가 맘먹은 김에 후딱 해치워버렸지…
― 아 그려? 변소허구 굴뚝도 그렇지만 지붕도 아주 무너진 뒤에 고쳐야 조은 벱여. 난 또 안 뵈길래 애인 데리구 어디 놀러 갔나 했지.
― 허허 이 사람이 바둑 두다 말고 장기 벌리는 소리 허구 있네. 내가 워디가 팔자가 그 모냥으로 조아서 지집 끼구 산천경개 찾아 놀러를 대닌대?
― 아 자네 정도믄 워치케 팔자가 안 좋다 헐 수 있남? 아 하우스로 떼돈 벌지, 예산, 공주 부여에 집 시 채 있지, 서울 갱냄에도 아파트 사놨지, 애들 셋 다 서울서 대학 댕기지, 아 그 정도믄 시쳇말로 짱이고 대박이지.
― 뛰다 죽겄네. 아 이 사람이 여름 다 갔는데 시방두 더위 먹은 소리 허구 있어. 머슨 집이 시 채여? 예산 집 한 채가 전부잔여? 부여, 공주 있던 건 애덜 대학 갤치느라 팔어먹었다고 몇 번을 얘기했어? 갱냄 아파트는 처남 거구. 자네는 워째 하나를 갤키믄 열을 까먹는 비상한 재주를 가진 겨? 도덕적으루다 사는 사람헌티 팔짜구짜 읊으며 쉰소리 허지 말구 술이나 마셔. 넘덜 들으믄 오해햐.
비닐하우스 영농인들로 보이는 두 50대의 이바구는 전형적인 충청도 사람들의 대화법을 따르고 있다. 너스레를 떨고, 말이 길고, 사투리가 정겹고, 비유가 있고, 문자를 쓰고, 듣는 이의 귀를 기울이게 하고, 웃음 짓게 만든다. 그들의 대화는 마치 미리 써놓은 연극 대사를 읊는 것 같아서 한 편의 극본을 방불케 한다. 다분히 필자를 비롯한 식당 내 주변 사람들을 의식한 말 배틀로도 보인다. 그럴 정도로 충청도 사람들은 말할 줄 알고, 말의 재미를 알고, 말을 즐길 줄 안다. 아니 삶을 재미나게 연출할 줄 안다.
청풍명월의 해학은 충청도의 능청, 너스레, 재치, 의뭉, 소심, 뭉근함, 수다, 사투리 등이 만든다. 충청도의 트레이드 마크들이다. 그 기질들은 충청도의 느긋한 여유와 느릿한 사투리 그리고 양반 연하는 품격과 만나면서 말에 재미를 더해준다. 자기들에게는 특별할 게 없는 이러한 성향들이 외지인들에겐 큰 웃음을 주는 요소로 작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