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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7085444
· 쪽수 : 176쪽
· 출판일 : 2021-04-26
책 소개
목차
차례
1부
2부
3부
4부
5부
6부
7부
感·불가능한 인터뷰 _김형중
저자소개
책속에서
녹취록을 풀 때 그녀의 침묵도 문자文字에 담아 기록해야 한다. 그녀의 표정, 몸짓, 한숨, 눈빛, 얼굴빛, 시선, 눈동자의 떨림, 망설임, 눈물도…… 그것들 역시 그녀의 발화되지 못한 말이므로.
그녀의 두 눈동자가 400개의 구멍을 응시한다.
그녀의 두 눈동자가 한 개의 구멍을 응시한다.
그녀의 두 눈동자가 한 개의 구멍에 삼켜져 그 한 개의 구멍을 틀어막는다.
“혹시 녹음기가 신경 쓰이세요?”
그녀는 묵묵부답이다.
그녀의 침묵을 ‘침묵’이라는 글자에 욱여넣는다.
첫 방문 때 나는 그녀의 침묵이 혹시나 녹음기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 아닐까 했다. 그래서 그녀의 침묵이 너무 길어진다 싶으면 말했다.
녹음기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녹음기에, 테이프 감기는 소리에 예민하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쪽은 그녀가 아니라 나다.
“이름을 밝히지 않으셔도 돼요.”
증언 녹취 작업은 열두 명의 피해자를 대상으로 동시에 진행 중이다. 그중 실명을 밝히는 것에 동의한 피해자는 단 한 명이다. 그 피해자에겐 자식이 없고, 그녀가 위안부였다는 걸 그녀의 가족과 이웃들이 알고 있다.
“책으로 묶을 때 가명을 쓰시면 돼요.”
“다른 이름이요.”
“황수남이라는 이름 말고…… 다른…….”
“……요코.”
순간 환청인가 한다. 바람 소리이거나. 그녀의 입은 그새 한 번도 열린 적 없는 듯 다물려 있다.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 작고 낮아 녹음기에 녹음되지 않았으면 어쩌나 싶다.
한없이 낯선, 그래서 기이하게 들리는,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분명한 목소리가 내 목소리라는 걸 깨닫고 나는 어깨를 떤다.
“녹음기, 이리 주세요.”
그녀가 도로로 내려선다. 전속력으로 달려오던 승합차가 내쏘는 전조등 불빛에 그녀가 현상되듯 드러나는 순간, 그녀의 손에 들린 녹음기가 흉기처럼 날카롭게 빛난다.
데리고 갔어……
유령이 내는 소리처럼 도로 위에서 출몰한 소리가 어디서 기인한 소리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인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인지, 아니면 환청인지.
몸을 다 가져갔어……
그래서…… 몸이 없지……
다 가져가서……
죽지도 못해…… 몸이 없어서……
피는 나……
피는 눈에서 나는 거니까……
거기…… 굴 속에……
눈을 감아도 피가 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