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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7351853
· 쪽수 : 208쪽
· 출판일 : 2024-10-16
목차
1 미인의 사진을 보고 감격의 눈물을?
2 결혼 주례는 송진우 선생, 옛 애인 최승희의 축하 속에
3 마음 한구석에는 인정이 넘치고
4 말술을 사양하지 않았던 주량
5 광복군 군자금을 돕고
6 평생 입에 대지 않았던 밀가루 음식과 떡
7 음악을 향한 정열과 집념
8 「모란이 피기까지는」 명시의 탄생 순간
9 방언이 많은 영랑 시 번역의 어려움
10 일제의 창씨, 신사참배, 단발 명령에 불복
11 아빠의 애틋한 사랑을 담아 「딸에게」 보낸 편지
12 축구, 정구로 몸을 다지고
13 아들 자랑하던 삼불출?
14 20년 된 소작인에게는 농토 무상 증여
15 자식에게는 호랑이 같았던 아빠
16 부친의 비석에 ‘조선인’, 상석에 ‘태극’새겨
17 광복의 날! 강진군 내에 태극기 보급, 국악연주로 애국가를
18 민심 파악 서툴러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
19 자식들에게는 “문학을 전공하지 말라”
20 좌익 테러 위협과 자식들 교육 위해 고향 떠나 서울로
21 자작시 낭송 때는 너무도 수줍었던 사람
22 생후 46년 만에 얻은 첫 직장
23 대중가요는 한 곡도 못 불러
24 직원들이 두려워한 유일무이한 중앙청 한복 공무원
25 경무대의 대형 일본 병풍을 치우게 하고
26 친일파에 너그러웠던 영랑
27 주변을 놀라게 한 과격한 성격
28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다
29 납북은 면했으나 끝내 서울 탈환 작전 중 유탄에 쓰러지다
30 전쟁 중 약탈로 유품 한 점 못 건진 유가족
31 박목월 시인 “영랑 시는 우리나라 최고의 시”
32 정지용 시인이 본 영랑 시
33 가장 사랑했던 후배 서정주 시인과 영랑
34 “나는 늙어서 셋째 놈과 살겠소”
35 이승만정부 여순민중항쟁 관련 영랑 시어 조작
36 폭거, 독단 일 삼는 강진군청, 국가지정문화재 훼손이라니!
37 강진은 이효석문학관을 배워야
38 유가족, ‘영랑’을 빛낸 황주홍 군수에 감사장 증정
39 강진을 돕기 위해 간 필자가 임기 전에 떠난 이유
40 영랑 시인부부 유택 ‘애국선열묘역’인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재이장
저자소개
책속에서
머 리 말
16년 전 당시, [시문학파기념관] 창설을 준비하던 강진군(군수 황주홍)의 초청으로 오랜만에 귀국한 영랑시인의 셋째 아들(필자)이 강진에 와서 처음으로 느낀 것은 바로 영랑 시인의 시 외에는 영랑 시인의 사생활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때 필자는 너무 오랜 해외생활로 이런 결과를 만들었음에 자괴감이 들었다.
이건 아니라고 느낀 필자는 자신의 기억과 서정주, 박목월, 황금찬 등 선친의 문단 후배들 그리고 고향 선배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편씩 초안을 쓰기 사직했다. 이렇게 해서 처음 선친 영랑 시인의 사생활은 『아버지 그립고야』(동아일보사, 2010)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렸다.
그런데, 초판 중 고향 선배가 잘 못 전해준 내용 즉, 선친의 재혼 결혼식 주례 송진우 선생을 여운형 선생으로 잘 못 쓰는 등 뒤늦게 몇 군데 수정해야 할 곳들이 확인되었다.
곧 개정판을 내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주변 여건으로 하루하루 미루다가 어언 올해 9순을 맞으면서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고향 군민들을 위한 경제 활성화 방안, 잊히지 않는 고향 현지에서 일어난 일 등 역사적 자료로서 중요한 내용들을 곁들여 개정증보판을 펴낸다.
특히, 이번에 부모님 유택을 마지막으로 이장하면서 얻은 경험과 비화를 독자 여러분께 사실 그대로 공개함이 훗날 특히 고향 분들에게 있을 수 있는 오해를 예방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장 경과보고도 상세히 곁들였다.
영랑이 그토록 사랑하던 겨레와 국토·고향 산천·생가의 모란·동백·꾀꼬리·숲·대밭·한 폭의 동양화처럼 펼쳐진 강진 앞바다의 정경 그리고 거문고·북·판소리·악성들의 교향곡·협주곡 등을 죄다 포기하고 유명을 달리한 지 어언 74년, 그 지난날의 일들을 회고하려니 “ .... 아슬한 하늘에 뜬 연 같이 / 바람에 깜박이는 연실같이 / ..... 아슨풀하다 .... ”(「연 1」 중에서)
지난날을 회상하는데 문득 “ 뚱뚱한 몸짓에 걸걸한 웃음소리, 거기에서 풍기는 체취, 소박하고 활달하고 호걸풍마저 섞인 ‘무한호인’(無限好人)이라 불릴 정도의 그의 초탈(超脫)한 성격은 우리 시인들 중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던 평론가 이헌구(1905 ~ 1983)의 글 ‘생각나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숲향기 숨결을 가로막았소
발끝에 구슬이 깨이어지고
달따라 들길을 걸어다니다
하룻밤 여름을 새워버렸소
- 「숲향기 숨길을」 전문 -
영랑에게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한 이 땅과 이 뜰을 비추는 달, 그 속에서 신선인 듯 달 따라 밤을 새워 여름을 거닐던 로망이 있었다.
잇따라 발표되는 주옥같은 영랑의 서정시에 평론가 이원조(1909 ~ 1955, 시인 이육사의 동생)는 “..... 이 시인이 자꾸 이대로 나가면 뮤즈(Muse;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음악·극·미술을 지배하는 아홉 여신들)마저 질투할 것이다. 칭찬도 공격도 할 것 없이 그냥 둘 수밖에”라고 했다. 평론가라 해서 함부로 비평할 작품들이 아니라는 뜻일 게다.
순간의 미적 감동을 포착해서 ‘서정주의의 극치를 이룩해 놓은 시인’(박용철, 정한모 두 시인의 평)인데다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적당히 시류를 타면서 편안히 한세상을 살아갈 때 “.....나는 독(毒)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 막음 날 내 외로운 혼(魂) 건지기 위하여”(「독을 차고」 중에서)라며 잔인무도하고 잔악한 일제의 탄압에도 이 악물고 끝내 그 지조를 굽히지 않았던 영랑이었다.
이제 와서 보니 영랑의 묘비에 꼭 알맞은 ‘유언장’ 같은 시 「묘비명(墓碑銘)」을 두고도 유가족 및 동료, 후배들이 대표작으로 알려진 「모란이 피기까지는」 만 생각해 온 것은 일찍이 영랑의 시 전편을 접하지 못한 탓이 아닐까?
생전에 이다지 외로운 사람
어이해 묘 아래 빗돌 세우오
초조론 길손의 한숨이라도
헤어진 고총(古塚??)에 자주 떠오리
날마다 외롭다 가고말 사람
그래도 뫼 아래 빗돌 세우리
'외롭건 내 곁에 쉬시다 가라'
한(恨) 되는 한마디 삭이실란가
- 「묘비명(墓碑銘)」 전문 -
이 책이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영랑의 사생활을 연구하는 국문학도와 영랑 시 독자들, 그리고 고향 후배 여러분께 다소나마 이해를 돕는 자료가 되었으면 한다.
끝으로 이 책이 나오기까지 옆에서 협조해 주신, 고향의 선배 및 친지 여러분들, 그리고 표지를 장식해 주신 김승희 화백께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2024년 8월
미국 마이애미 해변에서
시인 영랑 유족 대표 김현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