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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7628221
· 쪽수 : 272쪽
· 출판일 : 2021-11-24
책 소개
목차
저자의 말 4
part 1 어린 날들과 조우
마당의 미학 12
숯 17
아주 가벼운 여행 22
아버지 27
족보 34
신발 39
구설수 43
쌀밥 한 그릇 48
울어도 괜찮아 52
part 2 푸른 듯 푸르지 않은 날들
새들처럼 59
오래된 편지 63
그까짓 것 68
명절 보고서 73
물집 79
자유를 향한 길 83
감성 공부 88
도서관 향기 93
바보예찬 97
part 3 아픔일까, 그리움일까
감이 있는 풍경 104
시장에서 109
귀고리 한 짝 115
여우와 곰 120
봄꽃 같은 사람들 125
어머니의 산, 지리산 129
지리산 종주 134
기저귀 140
공명 145
김장을 하다가 149
part 4 사색 그 고요 너머
은행나무 아래에 서서 160
가을비 164
담쟁이 168
걷기 좋은 길 173
초승달 178
매미를 보내며 182
대나무 숲 같은 사회를 꿈꾸며 186
바람 191
완장 195
심플(Simple)-기생충을 보고 201
맹목(盲目)-율곡으로 맹목을 꾸짖다. 205
맹목에 빠지는 것은 205
맹목에 빠지지 않으려면 209
학문과 사상의 형성과정을 살피면 어떨까 211
맹목을 강요받았던 시대에 맹목에 빠지지 않았던 학자 율곡 218
에필로그 225
part 5 나에게로의 여행
마음속 돌 하나 231
마음속의 아이 235
낡은 것들과의 이별 240
동안거(冬安居) 245
학교를 마치며 249
2020년 254
구업口業 258
흉허물 없는 사이 264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냐고요? 269
저자소개
책속에서
며칠 전 간단한 검사를 받으려고 채혈을 했더니 고지혈증이라고 한다. 유전적인 작용으로 탄수화물을 간에서 지방으로 전환시킨다고 한다. 흰쌀밥에 탐닉하여 스스로 탄수화물 중독이라고 여겼더니 낭패다. 약을 처방해줘서 약국에 갔더니 “쌀밥은 안 됩니다” 한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느낌과 아직 쌀밥에 허기가 지는 듯해 잠시 망연하다. 생일에야 먹던 쌀밥을 양껏 먹었으니 아쉬움도 없이 기꺼이 수긍함이 마땅하나, 쌀밥을 양껏 먹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아쉽고 안타까우니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 마냥 마음이 허전하다.
윤기가 흐르는 탱글탱글한 갓 지은 하얀 쌀밥은 늘 새롭고 반갑다. 셀 수 없이 하얀 쌀밥 그릇을 비워냈지만 아직 유년의 쌀밥 한 그릇에 미치지 못하나 보다. 철도 채 들지 않을 어린 나이에 혼자 작은 방에서 먹은 쌀밥을 아직도 다 못 먹은 모양이다. 동그란 양은 소반에 고봉으로 올린 갓 지은 하얀 쌀밥만큼 맛있는 밥을 먹어본 적이 없다.
열세 살까지 엄마가 해 줄 수 있었던 최고의 생일상은 쌀밥 한 그릇이었다. 할머니와 다른 자식들의 눈이 걸린 엄마는 작은 방에다 보리쌀 하나 섞지 않는 하얀 쌀밥 한 그릇을 고봉으로 담아주는 것으로 최고의 생일상을 만들었다. 따로 작은 방에 들어서 한 숟갈 한 숟갈 단맛이 도는 밥을 맛나게 먹었다. 밥을 아껴두었다가 학교에 다녀온 후에 마저 먹었다. 생일이니까 저녁까지 하얀 쌀밥을 먹고 싶었나 보다.
가마솥에 보리쌀을 넣고 먼저 끓이다가 하얀 쌀을 얹고 한소끔 익혀 밥물이 가마솥 뚜껑 아래 흐르면 아궁이에 불을 줄이고 뜸을 들였다. 아버지와 할머니의 겸상에는 거의 쌀밥이 차려졌고 우리 밥상에는 쌀이 드문드문한 보리밥이 올라왔다. 어린 자매들이 올망졸망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으면 아버지는 계란찜이랑 생선구이 등을 우리 밥상에 물려주었다. 아버지의 밥상에서 우리들의 밥상으로 건너온 건 뭐든지 맛있었다.
늘 숨이 차던 아버지는 치료를 거부하였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에게 밥이라도 양껏 먹이려면 병원에서 돈을 쓸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시골에서 논마지기라도 덜어내고 싶지 않았던 게다. 아버지를 잃게 되자 밥의 색깔은 더 까매졌다. 말 그대로 꽁보리밥이 되었다. 쌀을 돈사야 일 년에 열세 번의 제사와 우리들 학교 보내는데 쓰일 것이기에 아끼는 게 쌀이었다. 아버지의 밥상에서 넘어오던 계란찜과 생선구이도 사라졌다. 우리의 동그란 양은 소반은 쓸쓸함이 반이었다.
_‘쌀밥 한 그릇’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