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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문 에세이
· ISBN : 9791197641435
· 쪽수 : 216쪽
· 출판일 : 2023-01-16
책 소개
목차
2019년 6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2021년 6월
감사의 말
덧붙이는 말
청소년을 위한 치료전문가의 조언
책속에서
빛줄기 하나 들어오지 않던 시간에 대해 이야기한 건 내가 그 시기를 지나왔고, 이제는 그런 장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알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기 위해서다. 정신 건강의 문제가 더 이상 다른 사람들과 나를 가르는 사회적 잣대가 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늘 불안에 떠는 사람들,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 소심한 사람들, 쉽게 상처받는 이들이 더 이상 숨을 필요가 없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내가 노래를 하는 한 나는 계속해서 목소리를 낼 것이다.
-감사의 말 중에서 (테싸)
테싸는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불안을 표현하지 않을 때가 가장 위험하다’는.
주변으로부터 감추고, 묻어 둘 때가,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의심하지 못할 때가 가장 위험하다. 만약 불안을 느낀다면 말로 표현하고, 나아지기 위해 두 팔을 벌려 이를 받아들이자.
혼자 애쓰지 말고 도움을 청하자. 우리는 함께 일 때 더 강하다.
-덧붙이는 말 중에서 (라엘리아 브누아, 정신의학박사)
2019년 6월
눈을 감고 길게 숨을 내쉰다. 호흡에 집중하며 귓속에서 윙윙거리는 소리를 무시하려 애쓴다. “테싸, 준비됐어요?5분 남았어요.” 스태프들이 마지막으로 내 마이크가 제대로작동하는지 확인한다. 사운드 엔지니어, 뮤지션, 매니저, 프로듀서…… 모두가 사방으로 분주히 뛰어다닌다. 그들은 자신이 여기 있는 이유와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아는 듯 보인다. 반면 이곳에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 나는 모든 게 낯설기만하다. 만 열일곱 살의 내가 그날 밤, 그 장소에 있게 되리라고 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생애 첫 페스티벌이 아닌가. 수많은 사람들, 엄청난 소음, 내게 불안발작을 일으킬 만한 무수한 경우의 수. 이 모든 것들이 나를 공포에 떨게 했다. 무대 옆에 서니 온몸으로 베이스 소리를 느낄 수 있다. 소리의 에너지가 다리를 관통하는가 싶더니 몸에 힘이 차오른다. 이쪽에 선 내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관중의 함성은 들린다. 뱅센(파리 외곽에 위치한 지역-옮긴이)에서 열린 ‘위러브 그린 페스티벌’의 메인 스테이지에 선 부바(프랑스 래퍼옮긴이) 앞에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4만 명이에요, 하고 누군가가 알려 주었다. 부바의 여느 콘서트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행사인 이 공연은 밤 11시 30분에 시작돼야 했는데, 그는 관객을 40분 이상 기다리게 하고 있었다. 관중의 야유가 커진다. 부바의 공식 라이벌 카리스(프랑스 래퍼-옮긴이)의 이름을 외치며 그를 자극하는가 하면, 아예 자리를 뜨는 사람도 나왔다. 하지만 래퍼가 마침내 무대에 오르자 분위기는 급속도로 달아올랐다. 선선한 6월 밤, 운집한 수만 명의 팬들이 그들의 스타와 함께 한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난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어쩌다 이 무대에 참여하게 된 거지? 이 시간이면 마르세유 우리 집에 있어야 하는데. 불안이 나를 옥죄어 올 때 내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유일한 장소, 지난 3년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고 눈을 감고도 그려 낼 정도로 속속들이 아는 내 방이 내가 있을 곳인데. 사실 그 날 나는 책상 앞에서 바칼로레아(프랑스고등학교 과정 졸업 및 대학 입학 자격증으로, 바칼로레아 취득 시험을 바칼로레아로 통칭한다-옮긴이)를 준비하고 있어야 했다.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야 한다는 생각으로 견뎌 왔지만, 나는 며칠 전 교과서를 모두 꺼내 책장 한쪽 구석에 깊숙이 넣어 버렸다. 드디어 모든 게 끝이라는 엄청난 안도감이 몰려왔다. 사실 그렇게 큰일도 아니다. 시험은 내년에도 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 무대에서 노래할 기회는 아마 내게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정해진 틀에 억지로 나를 끼워 맞추려 애썼으나, 결코 유익한 경험이라 부를 수 없는 일이었다.
「A la folie(열정적으로)」의 마지막 소절이 울려 퍼질 때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다음 곡은 「Arc-en-ciel(무지개)」. 즉 내가 무대에 오를 차례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미소로 내게 응원을 보냈다. 하지만 나는 온 모공이 발산하는 공포심에 휘감겼다. 공연이 시작되고 무대 뒤편에서 느껴지는 흥분과
관중의 열기에 나 자신의 불안에 쏠려 있던 기분이 옅어지는 듯했지만, 몇 주 전부터 꿈꿔 온 순간이 몇 초 뒤로 성큼 다가오자 축축해진 손이 덜덜 떨리면서 마이크가 미끄러져 내렸고, 최악을 상정한 온갖 시나리오가 다시 머릿속에서 맴돌기 시작했다. 내 곡의 첫 소절을 부르는 순간 혓바닥이 부풀어 올라 숨이 막히거나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을까 봐 겁이 났다. 무대에서 굳어 버린 나머지 한마디도 못 하고 사람들의
야유 속에 무대를 떠나게 될까 봐 겁이 났다. 파리까지 동행해 준 부모님은 물론이고 매니저 소피앙, 몇 주 전부터 나와 데뷔 곡들을 함께 작업하고 있는 클레망까지, 그날 밤 그곳에서 줄곧 나를 믿어 준 사람들을 실망시키게 될까 봐 겁이 났다. 그러나 이 모든 두려움을 뛰어넘는, 중학교 때부터 내게서 떠나지 않는 가장 큰 두려움은 바로 사람들 앞에서 구토하는 것이다. 오늘 밤 4만 명 앞에서 구토를 하게 된다면,
나는 어째야 하냐? 과연 수습할 수 있을까? 내 어깨를 잡는 손이 느껴진다. 매니저다. “자, 테싸, 이제
가야지. 지금이야.” 그가 미소 짓는다. 나는 눈을 감고 한차례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몇 초간 숨을 참았다. 병원 치료프로그램에서 배운 대로,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을 가라앉힐 타이밍이다. 나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듣지 않는다. 그저 내 안의 흥분, 결의, 분노, 두려움, 최근 몇 년 동안 나를 스쳐간 불안의 포효를 느낄 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 모든 게 사라져 버렸다.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어둠 속에서
나와 눈이 멎을 만큼 밝은 빛 속으로 들어갔다.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큰 무대. 그 앞을 채운 인파의 움직임. 부바를 올려다보자 노래가 흘러나왔다. 내 차례다. 나는 두 손으로 마이크를 꼭 쥐고 관객 쪽으로 몸을 돌렸다. 머릿속에는 더 이상 어떠한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