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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91197998515
· 쪽수 : 224쪽
· 출판일 : 2022-11-01
책 소개
목차
엮는 말 • 4
광염 소나타 • 8
태형 • 44
광화사 • 74
배따라기 • 104
감자 • 130
k박사의 연구 • 144
붉은 산 • 172
반역자 • 184
발가락이 닮았다 • 202
책속에서
내가 이제 이야기하려는 백성수의 아버지도 또한 천분 많은 음악가였습니다. 나와는 동창생이었는데 학생 시대부터 벌써 그의 천분은 넉넉히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작곡과를 전공하였는데 때때로 스스로 작곡을 하여서는 밤중에 혼자서 피아노를 두드리고 하여서 우리들로 하여금 뜻하지 않고 일어나게 하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밤중에 울리어 오는 야성적 선율에 몸을 소스라치고 하였습니다.
그는 야인이었습니다. 광포스러운 야성은 때때로 비위에 틀리면 선생을 두들기기가 예사이며 우리 학교 근처의 술집이며 모든 상점 주인들은 그에게 매깨나 안 얻어맞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야성은 그의 음악 속에 풍부히 잠겨 있어서 오히려 그 야성적 힘이 그의 예술을 더 빛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 ‘광염 소나타’ 중에서
간수의 헤어 나가는 소리와 함께,
“아이구 죽겠다, 아이구, 아이구!”
부르짖는 소리가 우리의 더위에 마비된 귀를 찔렀다. 우리는 더위를 잊고 모두들 머리를 들었다. 우리의 몸은 한결같이 떨렸다. 그것은 태 맞는 사람의 부르짖음이었다.
서른까지 헨 뒤에 간수의 소리는 없어지고 태 맞은 사람의 앓는 소리만 처량히 우리의 귀에 들렸다.
둘째 사람이 태형대에 올라간 모양이다.
“히도쓰.”
하는 간수의 소리에 연한 것은,
“아유!”
하는 기운 없는 외마디의 부르짖음이었다.
“후다쓰.”
“아유!”
“미쓰.”
“아유!”
우리는 그 소리의 주인을 알았다. 그것은 어젯밤 우리가 내어 쫓은 그 영원 영감이었다. 쓰린 매를 맞으면서도 우렁찬 신음을 할 기운도 없이 ‘아유!’ 외마디의 소리로 부르짖는 것은 우리가 억지로 매를 맞게 한, 그 영감이었다.
- ‘태형’ 중에서
처녀는 화공의 발소리에 머리를 번쩍 들었다. 화공을 바라보았다. 그 무한히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기묘한 눈을 들어서.
“아.”
가슴이 무득하여 무슨 말을 하여야 할지 망설이며 화공이 반벙어리 같은 소리를 할 때에 처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기가 어디오니까.”
여기가 어디?
“여기는 인왕산록 이름도 없는 곳이지만 너는 웬 색시냐?”
“네…….”
문득 떠오르는 적적한 표정.
“더듬더듬 시내를 따라왔습니다.”
화공은 머리를 기울였다. 몸을 움직여 보았다. 무한히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처녀의 눈은 그냥 움직임 없이 커다랗게 뜨여있기는 하지만 어디를 보는지 무엇을 보는지 알 수가 없다. 드디어 화공은 부르짖었다.
“너 앞이 보이느냐?”
“소경이올시다.”
소경이었다. 눈물 머금은 소리로 하는 이 대답을 듣고 화공은 좀더 가까이 갔다.
“앞도 못 보면서 어떻게 무얼 하려 예까지 왔느냐?”
처녀는 머리를 푹 수그렸다. 무슨 대답을 하는 듯하였으나 화공은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러나 화공으로 하여금 적이 호기심을 잃게 한 것은 처녀의 얼굴에 아까와 같은 놀라운 매력 있는 표정이 없어진 것이었다.
- ‘광화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