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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91198117939
· 쪽수 : 240쪽
책 소개
목차
엮는 말 • 4
그믐밤 • 8
십삼 원 • 60
탈출기 • 70
향수鄕愁 • 88
박돌의 죽음 • 98
기아飢餓와 살육殺戮 • 122
폭군暴君 • 144
설날 밤 • 168
백금白琴 • 198
의사醫師 • 226
책속에서
“삼돌이, 자네 또 뱀 잡으러 가는가?”
방축 위 서늘한 그늘 속에 누워서 담배 피는 늙은 농군이 소리쳤다. 삼돌이는 대답 없이 그리를 쳐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웃기는, 개꽃 싸라간 눈처럼! 히히.”
그 옆에서 고누를 두던 쇠돌이라는 젊은 농군이 웃었다.
“에이구! 끅끅 뱀이를 그렇게두 잡니? 새나 다람쥐를 말총 올개미루 잡지 뱀을 올개미로 잡는 데를 어디서 봤니, 하하하.”
“그러문 어떻게 잡니?”
힘없이 말하는 삼돌은 서먹한 웃음을 억지로 웃었다.
“몽치로 때려 붙들어야지 이눔아. 뱀이 죽었다구 올개미에 들겠니?”
“응, 때리문 죽어두……. 산 뱀이라야 쓴단다.”
누군지 기다리고 있는 듯이 받아쳤다.
“응, 산 뱀은?”
“김 좌수 아들이 옌쥐챙 있는데 손가락 물기문 낫는다네.
- ‘그믐밤’ 중에서
뒷집에 있는 젊은 주인이 나왔다. 어둑충충한 등불 속에서 무겁게 흐르는 께저분한 공기는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 몰려들었다. 젊은 주인은 부엌에 선 대로 구들을 올려다보면서 이마를 찡그렸다.
찢기고 뚫어지고 흙투성이 된 거적자리 위에서 신음하는 박돌이 모자의 그림자는 혼탁한 공기와 빤한 불빛 속에 유령같이 보였다.
“어째 이원은 아니 보입메?”
젊은 주인은 책망 비슷하게 내뿜었다.
“김 초시더러 봐달라니 안 옵데. 돈 없는 사람이라구 봐주겠소? 약두 아니 져주던데!”
박돌 어미의 소리는 소박을 맞아 가는 젊은 여자의 한탄같이 무엇을 저주하는 듯 떨렸다.
“뜸이나 떠보지비?”
“그래볼까? 어디를 어떻게 뜨믄 좋은지? 생원이 좀 떠주겠소? 떠주오. 쑥은 얻어올게.”
“아, 그것두 뜰 줄 모릅네? 숫구녕에 쑥을 비벼놓고 불을 달믄되지! 그런 것두 모르구 어떻게 사오?”
- ‘박돌의 죽음’ 중에서
오그그 모여든 속에서 한 사람이 소리를 치면서 내닫더니 춘삼의 귓벽을 철석 갈겼다. 춘삼이는 쓰러졌다.
“야 이놈아 이 호로새끼야! 네 에미 같은 사람의 머리를 끌어!”
노파는 앙드그륵 악물고 두 눈에 불이 휑해서 춘삼에게 달려들었다.
“어마니 그만 참소!”
“아즈머니 그만두시우! 엑 미친놈!”
앞뒤에서는 일변 노파를 말리고 일변 춘삼을 차고 욕한다.
“에구! 가슴이 터져라!”
노파는 목이 메어 울지 못하고 가슴을 쾅쾅 치더니 차츰 울음 소리가 커졌다.
“그 아니꼬은 꼴을 웃고 보면서 모아놓은 것을…… 흑! 흑! ……. 자식두 없는 것이 그것으로 낙을 삼는 것을! 어엉. 흑흑! 어엉!”
노파는 울음을 뚝 그치고 머리를 틀어 얹더니,
“응 이놈 보자! 네놈의 집을 가서 기동뿌리를 빼 오겠다.”
하고 문으로 내달았다. 그 두 눈에는 굳센 광채가 서리었다. 낯빛은 검으락푸르락 하였다. 문 앞에 모여 섰던 군중은 뒷걸음을 쳤다
- ‘폭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