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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8387585
· 쪽수 : 204쪽
· 출판일 : 2024-03-04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글_삶의 레시피를 찾아서
1장_아내를 위한 레시피
살림은 아무나 하나 | 요리는 어려워 | 아내의 생일에 미역국을 끓인다 | 날달걀비빔밥 | 기억의 조작 | 새로운 날들 | 남자들의 장 담그기 | 외조를 잘하시네요 | 압력솥은 만능 요리기구 | 쯔유를 만드는 이유 | 우리들의 오해 | 조리법은 없다 | 돈은 없지만 먹고는 싶어서 | 시래기는 위대하다 | 달래를 다듬으며 | 중년 남성들에게 요리를 권하다 | 국화차 만들기 | 불온한 김장 노동 | 흰 눈과 김치찌개 | 주방이라는 공간 | 괜찮아?
2장_리틀 포레스트
내 이름은 붥덱 | 텃밭이 뭔데? | 도시농부가 되다 | 농사는 어려워 | 내 텃밭이 생기다 | 봄은 텃밭에서부터 온다 | 봄꽃이 들려주는 얘기들 | 리틀 포레스트 | 봄을 요리하다 | 농막의 하루 | 이찬복 씨는 힘이 세다 | 멧돼지 가족의 나들이 | 자귀꽃 필 무렵 | 하지 감자를 캐다 | 잡초 이야기 | 꽃 한 송이 꺾는 것이 곧 멸종의 시작이다 | 며느리밥풀꽃에 대한 보고서 | 텃밭에서 살아남기 | 가난하게 살 권리, 비겁하게 살 권리 | 가을걷이 | 느리고 불편하게 살기
나가는 글_부부가 함께 늙어간다는 것은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이 책은 요리책이 아니다. 애초에 내가 대단한 요리사도 아니다. 웬만한 음식은 다 내 손으로 만들고,생소한 요리도 레시피를 쭉 훑어보면 흉내 정도는 내지만 요리사처럼 최고의 맛을 추구하지도 않고 더 나은 요리를 위해 연구를 하는 것도 아니다. 최고의 요리를 위해 최고의 식재료를 찾아다니지도 않는다. 오히려 재료는 맛보다 가성비를 따지고 마트에 가면 주로 마감 세일 코너를 기웃거린다.(…중략…)이 책이 누군가에게는 대리만족이 되고 누군가에겐 갈증이 될 수도 있겠다. 왜 저렇게 사나, 한심하게 보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어느 날 난 선택했고 그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아내가 변하고 가족이 변하고 무엇보다 내가 변했다. 생계 수단에 불과했던 밥상 위에 얼마나 많은 가치와 의미가 있는지 깨닫기도 했다. 선택은 늘 그렇듯 기적을 만들어낸다. 요리란 그저 음식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텃밭 역시 단순히 농작물을 가꾸는 일이 아니다. 모두 삶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사람과 자연을 이어주는 일이다. 살림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사소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지 깨닫게 해주는 일이다. 나는 살림을 하면서, 요리를 하면서, 김서령 작가가 말하는 삶의 맛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행복이 어떻게 우리를 찾아오는지 느낄 수 있었다. 여기에 실린 얘기는 그런 얘기들이다. 맛이 아니라 삶을 요리하는 레시피. 행복을 찾기 위한 레시피다. 모두가 나름의 레시피를 찾아 행복하기를 빌어본다. \_<들어가는 글_삶의 레시피를 찾아서> 중에서
아내가 발을 다친 후 진짜 음식을 만들어보겠다고 들어온 부엌은 말 그대로 정글이었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냉장고에 호박이 보였다. 호박볶음을 해야 하나? 아니면 호박국? 인터넷에서 보니 새우젓이 필요하다던데 그건 어디 있지? 이 하얀 가루는 어디에 쓰는 걸까? 다진 마늘은 또 어디? 밥이 잡곡이던데 잡곡은 어디에 두지? 이것도 아내한테 물어봐야 하나? 모르긴 몰라도 중년 남자들이 요리에 도전하고 싶어도 쉽사리 덤벼들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모를 막막함. 미지의 세계는 늘 두려운 법이다. 요컨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세상에 발을 디민 것이다. 애초에 자취와 살림은 차원부터가 다르다. 대충 요리해서 내 한 입 챙기는 것과 온 가족의 입맛에 맞게 매일매일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 대령하는 일이 어찌 같겠는가. 살림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누군가의 헌신을 연료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살리는 일. 그래서 살림이건만 그저 밥, 반찬 몇 개 만들고 청소하고 설거지 정도로 생각해 왔다.(…중략…)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부엌,아니 주방에 들어가고 며칠 후,퍼뜩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망했다”였다.번역일만으로 하루가 빡빡한데 거기에 살림까지?아내가 다쳤어도,아내한테 아무리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어도 그냥 먼 산 바라보며 ‘생깠어야’ 했다.물론,아내도 내가 사나흘 끙끙거리다 포기하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연하잖아! 다른 것도 아니고 살림인데! 이건 남자가 할 일이 못 돼.절대로!
_<살림은 아무나 하나> 중에서
제일 기억나는 음식이 날달걀비빔밥이다. 비빔밥이라고 해봐야 그저 더운 밥 위에 날달걀 하나와 조선간장 한 수저 넣고 비벼 먹는 데 불과했다. 내 나이 다섯 살에 어머니가 집을 나간 후 어린 동생들을 돌보던 누이가 자주 해주던 음식이었다. 시골이라 다들 닭을 키웠기에 달걀 구하기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프라이가 아니라 날달걀인 이유는 식용유든 돼지기름이든 어린 누나에게는 사기도 다루기도 만만치 않았지 싶다.(…중략…)
“맛있는 음식에는 노동의 땀과 나누어 먹는 즐거움의 활기, 오래 살던 땅, 죽을 때까지 언제나 함께 사는 식구, 낯설고 이질적인 것과의 화해와 만남, 사랑하는 사람과 보낸 며칠,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궁핍과 모자람이라는 조건이 들어 있으며, 그것이 맛의 기억을 최상으로 만든다.” 황석영의 말이다. 날달걀비빔밥은 그러니까 내 “궁핍과 모자람”의 상징인 셈이다. 난 지금도 종종 날달걀비빔밥을 만들어 먹는다. 안 하는 요리는 있어도 못 하는 요리는 없다고 큰소리치는 요즘이지만 기억의 맛은 어느 산해진미보다 유혹이 강하다. 그 역시 양은 도시락이나 밀가루 소시지와 같은 기억의 맛이겠지만 차이가 있다면 날달걀비빔밥만큼은 당시의 맛을 그대로 돌려준다. 이 음식으로 소환해야 할 기억이 가난, 외로움밖에 없어서일까? 지금도 그때처럼 나 혼자만 먹어야 하는 음식이어서? 아내와 아이들이 싫어하는 게 어쩌면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그들에게 외롭고 가난한 기억이 없다는 뜻이니까.
_<날달걀비빔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