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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비평/칼럼 > 한국사회비평/칼럼
· ISBN : 9791198518224
· 쪽수 : 292쪽
· 출판일 : 2024-07-28
책 소개
목차
개정판을 내며 4
프롤로그_ 안녕, 나의 모든 것 14
1부 지방시 첫 번째 이야기,
대학원생의 시간
1 “스물여섯의 나는 그렇게 이 삶을 시작했다” 27
제도권 삶의 시작
2 “이것이 대학원의 전통이라며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32
대학원 입학과 조교 생활
3 “숨 쉬는 비용을 제외하고도 삼백만 원이 비었다” 38
등록금과 장학금
4 “그냥 연구소 잡일 돕는 아이입니다” 41
연구소 조교 생활
5 “지식을 만드는 공간이 햄버거를 만드는 공간보다 사람을 위하지 못한다면” 49
과정생의 노동과 처우
◆ 대학 시간강사 K께 57
6 “여기서 혼자 할 일 없는 놈” 64
내 부모의 보호자가 되지 못하는 현실
7 “너 그러다 늙겠구나” 70
그리고……
8 “야 그만 좀 얻어먹어 인마” 73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 친구들
9 “나는 반사회적인 인간이다” 80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 시간강사와 사회인
10 “아직도 하고 있냐” 87
꿈과 현실에 대한 이야기… 친구 허벌에게
11 “발표가 이제는 좀 들을 만하네, 좋아요” 97
그렇게 대학원생이 되었다
12 “한번 해보겠습니다” 104
학위논문 주제를 선정하다
13 “자네, 혹시 삼계탕 좋아하나” 108
학위논문 자료를 수배하다
14 “걔들도 힘들었대, 하고 적혀 있었다” 118
학위논문을 쓰다
15 “그래도 자네 살 만했지?” 128
연구원 등록이라는 ‘희망 고문’
16 “결국 나도 비겁한 인간인 것이다” 136
내가 만난 학부생 조교들
17 “미안해 꾸마우더리” 144
학자금 대출
18 “내 몸에 그저 미안하다” 150
수료, 그리고 대학원생의 몸
◆ 어느 날의 일기: 노동한다는 것의 의미 155
2부 지방시 두 번째 이야기,
시간강사의 시간
1 “연구만 하고 강의는 안 할 수 없을까” 163
강의 수임을 거절하다
2 “네, 할게요, 고맙습니다” 170
30인의 지도 교수를 만나다
3 “여러분은 저보다 더욱 좋은 선생님입니다” 180
학생들에게 배운 인문학
◆ “You are very hard teacher”
―강의실에서의 내 첫 번째 지도 교수에게 188
4 “당신은 나를 볼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196
강단에서의 시야
5 “조별 과제에 불만이 많던 학생은 강사가 되어 강단에 섰다” 203
평범한 집단 지성의 인문학
6 “나는 학생들이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213
강의실에 언제나 옳은 존재는 없다
7 “내일 뵈어요” 222
우리 주변의 인문학
8 “교수님, 일베 하세요?” 228
강의실 안에서의 ‘정치적인 것’
9 “교수님 논문도 검색해주세요” 235
강의와 연구 사이의 균형 찾기
10 “지몽미 그게 뭐야” 243
‘신종족’과 소통하는 ‘젊은 교수님’
11 “여러분 마음속으로 제게 에프를 주세요” 252
학생들 앞에 부끄럼이 없도록, 진심 어린 사과하기
12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 260
맥도날드에서 배운 인문학
13 “교수님은 무척 행복해 보이세요” 266
나의 구원자, 학생들
14 “후회하지 않으시나요?” 277
‘헬조선’에서 꿈꾼다는 것
에필로그_ 그 어디에도 지방시는 있다 286
저자소개
책속에서
어머니는 측은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언제나처럼 한마디,
“노력하면 되는 거 아니니?”
언젠가부터 나타난 많은 ‘힐링 전도사’들은 ‘꿈’, ‘도전’, ‘열정’과 같은 단어들을 청년의 미덕으로 제시한다. 듣기엔 참 좋은 말이다. 그런데 이들이 구축한 ‘청년론’은 젊은 세대들의 아픔을 그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규정해내기에 문제가 된다. 이 마법의 논리를 구성하는 핵심은 바로 ‘노력’이다. 취직하지 못하는 것, 연애하지 못하는 것, 그 어떤 모든 것들이 기성세대만큼의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귀결된다. 이것은 청년 세대를 위한 위안이나 동기부여가 되지 못한다. 그저 자기 혐오감을 증식하는 수단이 될 뿐이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들여다볼 여지를 주지 않는다. 기성세대는 스스로의 역할을 뒤돌아보는 대신 그저 청년의 노력을 심사하는 엄격한 평가자가 된다. 결국,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시대적 계발의 논리는 기성세대를 위한 것도, 청년 세대를 위한 것도 아니다. 그저 지금의 세대 갈등을 더욱 심화하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혼자 할 일 없는 놈”)
뿌듯함은 잠시이고 부끄러움, 아쉬움, 안타까움, 이런 감정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A와 관련한 연구에 세 번 정도 내 석사학위논문이 피인용된 것을 보기는 했으나 그것이 확인했을 내 한계에 그저 민망하다. 하지만 연구소에서 밤새 시공간을 넘나들며 ‘그들’과 대화하던 석사 시절의 경험은 너무도 행복하고 소중한 것이고, 지금도 나를 버티게 해주는 가장 큰 힘이다. 내가 대학이라는 제도권을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도 A를 주제로 몇 편의 논문을 쓰고 있다. 누구나 정규직을 원하고, 교수가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연구자가 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러한 꿈을 이루기까지는 계속…… 대학에 있을 것이다. (“걔들도 힘들었대, 하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교학상장’이라는 단어를 기억해냈다. “가르침과 배움은 함께 성장한다”라는 의미의 사자성어다. 나는 이 단 어를 고등학교 시절에 도서반 선생님께 들었다. 선생님께서 오늘은 내가 배웠다, 하고 나에게 말씀하셨는데 나는 당돌하게도 선생님이 학생에게 배우는 게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선생님은 빙긋 웃으며 언제나 교학상장이란다, 하고 답했다. 교사는 가르치고, 학생은 배우는 것, 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그 단어는 무척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곧 자연스레 기억에서 지워졌는데, 강단에 직접 서보고서야 비로소 그것이 현실에서 의미화될 수 있음을 알았다. 강의실에서 교수자와 학생은 서로의 발전을 추동하는 관계였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가르치기 위해서, 동시에 배우기 위해서 강의실에 섰다. (“여러분은 저보다 더욱 좋은 선생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