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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일제치하/항일시대
· ISBN : 9791199432055
· 쪽수 : 268쪽
· 출판일 : 2026-04-11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01. 아관파천 뒤에서 암약한 ‘왕의 남자’
- 고종을 섬긴 내시 강석호의 은밀한 항일운동
02. 구한말 ‘강남좌파’, 항일투쟁의 선봉에 서다
- 왕이 없는 세상을 꿈꾼 동학교주 김개남
03. “이것은 명성황후를 위한 복수다!”
-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친일매국노를 처단한 고영근
04. 일본의 ‘부동산 싹쓸이’를 막아내다
-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막아낸 송수만
05. 실록은 그를 ‘난의 수괴’로 기록했지만……
- 시흥군청 습격 사건을 이끈 민용훈
06. 죽지 마세요, 일제에 복수하세요!
- 일제 강점기의 ‘통쾌한 복수대행업체들’, 을사오적 암살단
07. 민간인 학살을 목격한 선교사, 눈 감고 귀 막지 않았다
- 한국인 돕다가 추방된 엘머 케이블
08. 수상한 ‘만주국 이사관,’ 친일파로 오해받다
- 2·8독립선언 주도하고 여운형의 정보원으로 일한 최근우
09. 넝마주이로 둔갑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 ‘홍길동’이라 불린 전설의 독립운동가 이관술
10. 독립 만세를 외친 9인조 머슴, 90대의 매질을 당하다
- 산에 올라 횃불을 들고 만세를 부른 김천군 머슴들
11 . 일왕이 내린 과자는 먹지 않겠소
- 일왕 생일에 재를 뿌린 이태형·김정식과 경성여고보 학생들
12. 500리 숲길로 운반한 체코 무기, 청산리에서 불을 뿜다
- 청산리대첩을 도운 체코 군단과의 숨은 인연
13. 일본 제국주의 귀신은 썩 물러가라!
- 제주 3·1운동을 이끈 김장환
14. 씨름하다 심판 때린 일본 배 선원, 한국인 가슴에 불 질렀다
- 제주에서 일제의 어업 침탈에 맞선 고은삼
15. 7인의 독립군, 일본 경찰에게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
-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차련관 전투의 주인공들
16. 흑연 광산 파업, 마을 축제가 되다
- 민족 차별에 맞선 영흥 파업을 승리로 이끈 사람들
17. 84일간의 역사적 총파업, 노동의 승리였다
- 일본의 차별과 구타에 맞서 총파업을 벌인 원산 노동자들
18.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땅문서를 나눠준 도련님
- 적박단과 신간회, 형평사 운동에 평생을 바친 안병희
19. 이봉창의 폭탄 주머니는 누가 꿰맸나
- 한인애국단원이자 김구의 수행비서였던 이화림
20. 일본 비행기 탈취하여 하늘로 탈출하다
- 일제의 공출, 부역, 징용을 모두 거부한 임도현
21. 전투모를 벗어던진 이유, 또 하나의 졸업 앨범을 만든 이유
- 춘천사범학교 학생들의 치열한 항일투쟁
22. 해방 전에는 일제에 맞서고, 해방 후에는 친일 세력과 맞서다
- 죽음을 불사하고 지독하게 항거한 최덕지 전도사
23. 친일파의 딸, 대한독립의 기관총을 쏘다
- 만주 항일유격대에서 기관총수로 활약한 허성숙
24. “고향 생각나죠? 오늘밤도 잘 자요”
- 일본군이 진저리를 치게 만든 선전전의 귀재 김학철
25. 능금 따던 청년들, 일제와 헤어질 결심을 하다
- 강제징용 거부하고 항거를 택한 29명의 결심대원
26. 해방 이후의 최강력 계엄령을 불러오다
- 대구 10월 항쟁 뒤의 혁명가 윤장혁
27. “국회의원부터 ‘친일파’ 전수 조사 합시다!”
- 제헌국회 내의 친일청산을 시도한 국회의원 김명동
28. 그 독립운동가는 왜 이승만을 쏘았나?
- 독립운동 2라운드에 용감히 나선 의열단원 유시태
29. 독립운동가 무료 변호하고, 친일청산을 지휘한 검찰총장
- 초대 검찰총장 권승렬이 걸어간 길
에필로그
참고문헌 및 참고자료
사진 출처
저자소개
책속에서
고종은 을사늑약의 무효를 알리고자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헐버트와 더불어 3명의 밀사를 파견하기로 했다. 이준, 이상설, 이위종이 그들이었다. 네덜란드 헤이그까지 먼 길에 소요되는 여비가 필요했다. 아관파천에서 고종의 뜻을 받들어 일본의 기세를 꺾는 데 기여한 강석호는 이번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 역할을 했다. 헤이그로 떠나는 이준에게 여비 10만 원을 건넨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실은 헤이그 밀사에게 여비를 건네준 것을 빌미로 강석호를 협박하여 돈을 갈취했던 친일파가 체포되는 바람에 알려졌다. (중략) 독립운동가 신채호는 1905년에 「황성신문」에 입사했는데 당시 논설위원 월급이 30~40원이었다. 강석호가 이준에게 건넨 10만 원은 「황성신문」 논설위원 2,500~3,000명의 한 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거금이었다.
우범선은 명성황후 시해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자신이 시해를 주관했다고 떠벌렸다. 일본이 시켜서 한 일을 자기가 주관한 듯이 자랑했던 것이다. “신하로서는 차마 들을 수 없는 말”을 들은 윤효정은 가슴이 서늘해지고 간담이 떨렸다. 그는 결심했다. 이 역적을 반드시 죽이고 말겠다고. 그리고 고영근을 찾아가 기회를 보아 우범선을 죽이기로 서로 약속했다. 이번에는 고영근이 구실을 만들어 우범선에게 접근했다.
“집을 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범선이 적당한 집을 구해주었다. 고영근이 감사를 표했다.
“집으로 한번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우범선을 집으로 초대하여 그 자리에서 칼로 목과 턱을 찔렀다. 우범선을 살해한 고영근은 바로 일본 경찰에 자수했다. 1903년의 이 거사로 일본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대한제국의 ‘자국민 보호’에 힘입어 1909년에 국내로 송환되고 2년 뒤에는 사면되었다.
자신회가 벌인 첫 사업은 을사오적 처단이었다. 을사오적 5명을 한꺼번에 처단한다는 전대미문의 계획을 실행하기로 약속한 자신회 회원들은 1907년 3월 25일 아침 8시경, 각자 지정된 장소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경복궁 동십자각에서는 나인영과 오기호가 용사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들의 목표는 참정대신 박제순. 광화문 해태석 앞을 지날 때 처단하기로 했다. 돈의문(서대문) 안쪽에서는 이완용을 기다리는 요원들이 새벽부터 자리를 지켰다. 사동(인사동) 입구에서는 권중현을 노리는 팀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다른 2명의 오적을 향한 자객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그 순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자신회의 의거는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동십자각에서 대기하던 요원들은 박제순이 교자를 타고 지나가는데도 주저주저하다가 그만 놓치고 말았다. 한양 서대문인 돈의문 안쪽에서 새벽부터 대기했던 요원들은 이완용이 10시가 넘도록 나타나지 않자 잠시 목 좀 축이자며 길가 술집에 들어갔다가 그때 마침 이완용이 지나가는 바람에 놓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