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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근대개화기
· ISBN : 9791198762986
· 쪽수 : 280쪽
· 출판일 : 2025-08-13
책 소개
목차
서문 - 당한 역사만 있는가, 일격을 가한 역사도 있다
제1장 동학혁명과 그 이후
01. 조선 왕실의 관료, 명성황후 시신을 불태우다
- 을미사변과 고종 폐위에 관여하고 12년 동안 일본 망명 생활을 한 구연수
02. 왕의 포박령, 빚더미, 그리고 잃어버린 작위
- 일본으로 도주한 ‘중전 살해 4인방’ 조희연의 굴곡진 친일 행적
03. 친일 총리, 길거리에서 맞아죽다
- 영화의 한 장면처럼 쓰러진 김홍집
04. 오적암살단의 육혈포가 불을 뿜었지만…
- 일제에 오래오래 충성했지만 아우에게 의절당한 권중현
05. 두 번의 암살 시도, 그러나 그의 명줄은 길었다
- 몸종과 취객에게까지 봉변당하고 암살 시도에 벌벌 떨었던 을사오적 이근택
06. 새를 잡았으니 활은 꺼져라?
- 대한제국 군대해산에 이바지한 ‘친일 2관왕’ 고영희의 굴욕
제2장 3 · 1운동과 그 이후
07. 광란의 총질, 만세 시위 군중 53명을 살상하다
- 3 · 1 운동 단 하루의 악독한 행위로 영원히 ‘친일파’로 박제된 강병일
08. “임시정부의 명령으로 너를 죽인다!”
- 만세 시위를 비웃다가 대한독립단에 의해 총살된 최병혁
09. 안중근과 한용운도 속인 더러운 가면의 사나이
- 독립운동가 행세하다 밀정임이 들통나 세상의 이목을 피한 엄인섭
10. 신일본주의 외치다 제국호텔에서 칼에 찔리다
- ‘무늬만 참정권’ 운동을 벌이다 의로운 칼에 고꾸라진 민원식
11. 칼에 찔리고, 집은 불타고, 손자와 며느리는 사기를 치다
- 살아생전 독립투사들의 표적이 되고, 죽어서도 망신당한 이완용
12. ‘감자’와 ‘고구마’ 사이, 순수문학에서 황국문학으로
- 황군위문단을 자청했다 퇴짜 맞은 김동인
13. 1919년의 ‘민족대표’, 1944년에는 ‘친일대표’가 되다
- 교계 쿠데타를 만난 정춘수
제3장 해방과 그 이후
14. 일왕의 항복 방송에 눈물이 방울방울
- 일제 패망 시에도 일본을 위해 동분서주하다 공개 면박을 당한 김대우
15. 건준으로 갈아탄 친일파, 한여름밤의 꿈을 꾸다
- 해방 다음 날 총독부 기관지를 접수하려다 실패한 양재하
16. 명태 100마리 선물했지만 소련군 포로 신세가 되다
- 정보원에게 뒤통수 맞고 부하들 손에 암살당한 친일 군인 김창룡
17. ‘이상하게도’ 일제의 육군 중장이 된 한국인의 최후
- 일본의 군대에서 출세했으나 일제에게 버림받고 처형된 홍사익
18. 친일파들이여, 한민당으로 어서들 오시오!
- 해방 후 새로운 친일 세상을 구축하다 독립투사들의 총에 쓰러진 장덕수
19. 100년 전 K-무용의 전설, 일왕을 위해 춤을 추다
- 남에서 친일하고 북에서 숙청당한 최승희
제4장 반민특위와 그 이후
20. 생선 한 마리로 시작한 친일, 군함과 비행기로 덩치를 키우다
- 죽을 죄를 지었다며 머리 조아린 문명기
21. 카프문학의 기수, 황국문학으로 투항하다
- 세종문화회관 별관 앞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김기진
22. 어느 친일 판사의 행방불명
- 일제에 부역하고도 반민특위는 피했지만 납북을 당한 강동진의 최후
23. 4 · 19 때 ‘모국’으로 쫓겨난 친일 판사
- 3 · 15 부정선거의 원흉으로 국회의원 제명된 장경근
에필로그 - 친일 문제는 어찌보면 승리의 역사다
참고문헌 및 참고자료
저자소개
책속에서
국권침탈 얼마 뒤부터 그는 불어나는 채무를 감당하지 못해고, 재산까지 압류당하는 지경에 빠졌다. 그래서 전 황제인 순종이 이 때문에 특별 하사금 2,500원을 내려주기까지 했다. 조희연은 순종을 황제 자리에서 내쫓는 데 기여했다. 그런 인물이 염치없게도 순종의 돈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2,500원이라는 큰돈도 언 발에 오줌누기였는지, 조희연의 재정 상태는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 결국 귀족 작위도 잃었다.
『친일인명사전」은 “계속되는 채무로 재산을 탕진해 작위 유지가 어렵게 되자, 조선총독부는 체면 유지를 위해 작위를 반납하도록 종용”했다고 말한다. 결국 그는 죽기 두 달 전에 남작 작위를 반납했다. 일본 귀족의 체면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빚더미에 올라앉은 결과였다.
형식상으로는 작위 ‘반납’이지만 사실상 작위 ‘박탈’이었다. 그것은 일본의 독촉을 받은 결과였다. 금전적 이유에 기인한 것이기는 하지만, 자신이 충성을 바친 일본의 압력을 받고 작위를 빼앗긴 것은 친일파인 그의 입장에서는 굴욕이었을 것이다.
(<조희연> 편에서)
고종은 김홍집 등을 해임하면서 포박령도 내렸다. 이로 인해 그야말로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극적인 장면들이 연출됐다. 왕명에 따라 순검이 그를 체포했지만, 그를 관아로 끌고 가지는 못했다.
관아로 가는 도중에 뜻밖의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순검에 의해 끌려가는 그를 도중에 가로챈 이들이 있었다. 거리의 민중들이었다. 양력으로 고종 33년 2월 11일자 『고종실록』에 따르면, 김홍집은 “민중에 의해 살해됐다.” 송치 도중에 길거리에서 맞아 죽었던 것이다.
파멸은 김홍집 한 사람에게 국한되지 않았다. 김홍집 내각 자체가 동일한 운명에 처해졌다. 농상공부대신 정병하 역시 길거리에서 죽음을 당했다. 권영진 · 유길준 · 이진호· 우범선 · 장박 · 조희연 등은 일본으로 달아났다. 친일 내각 전체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그 정도로 무섭게 표출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