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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설 탐구 2

우리 소설 탐구 2

(같은 시대를 다르게 읽다)

김동인, 채만식, 김유정, 현진건, 유진오, 이효석, 이태준, 염상섭 (지은이), 오렌지서재 편집부 (기획)
오렌지서재
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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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설 탐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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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우리 소설 탐구 2 (같은 시대를 다르게 읽다)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
· ISBN : 9791199913387
· 쪽수 : 268쪽
· 출판일 : 2026-07-01

책 소개

2022 개정 교육과정 고등 국어·수능 문학 대비를 위한 문학 탐독서다. 1930년대부터 해방 직후까지의 대표 단편 9편을 수록하고, 시대사 개설과 원문 주석을 더해 작품의 맥락과 문학적 시선을 스스로 읽어 내도록 구성했다.

목차

한눈에 보는 한국 근현대 소설 - 한국 현대 소설과 시대 현실 이해하기
: 1930년대부터 해방 공간까지

광염 소나타 • 김동인

레디메이드 인생 • 채만식

금 따는 콩밭 • 김유정

운수 좋은 날 • 현진건

김 강사와 T 교수 • 유진오

산 • 이효석

치숙 • 채만식

해방 전후 • 이태준

미스터 방 • 채만식

두 파산 • 염상섭

저자소개

김동인 (지은이)    정보 더보기
평양 진석동에서 출생했다. 평양숭덕소학교와 숭실중학교를 거쳐 일본의 도쿄 학원, 메이지 학원, 가와바타 미술학교 등에서 공부하였다. 1919년 전영택, 주요한 등과 우리나라 최초의 문예지 [창조]를 발간하였다.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시작으로 「목숨」, 「배따라기」, 「감자」, 「광염 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광화사」 등의 단편소설을 통하여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 혁신에 공헌하였다. 1923년 첫 창작집 『목숨』을 출판하였고, 1930년 장편소설 『젊은 그들』 「광염 소나타」, 1932년 「발가락이 닮았다」, 「붉은 산」을 발표했다. 극심한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소설 쓰기에 전념하다 마약 중독에 걸려 병마에 시달리던 중 1939년 ‘성전 종군 작가’로 황국 위문을 떠났으나 1942년 불경죄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48년 장편 역사소설 『을지문덕』과 단편 「망국인기」를 집필하던 중 생활고와 뇌막염, 동맥경화로 병석에 누우며 중단하고 1951년 6·25 전쟁 중에 숙환으로 서울 하왕십리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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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지은이)    정보 더보기
탁월한 언어로 한국 문학사의 큰 발자취를 남긴 김유정은 1908년 2월 12일(음력 1월 11일)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증리에 서 아버지 청풍 김씨 춘식과 어머니 청송 심씨 사이에서 이남 육녀 중 일곱째로 태어난 후 서울 종로구 운니동으로 가족 모두 이사를 오고 재동공립보통학교와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진학하지만 중퇴한 후 고향 춘천 실레 마을로 내려가 금병의숙을 세워 문맹퇴치운동을 벌이고 금광에 손을 대기도 했다. 그러다 다시 서울로 올라와 본격적으로 문학에 대한 열정을 품고 금광 생활에서 얻은 경험과 고향에서 보고 느꼈던 농촌 배경의 토속적 정취를 녹여낸 〈산골 나그네〉, 〈총각과 맹꽁이〉를 발표하고 채만식·박태원·이상 등과 교류 하며 〈금 따는 콩밭〉 〈노다지〉 〈금〉 〈떡〉 〈만무방〉 〈봄봄〉 〈안해〉 등 열한 편의 소설과 수필 세 편을 발표해 문단의 찬사를 받고 후기 구인회 동인으로 참여한 후 이태준, 이상과 깊은 친분을 쌓는다. 그는 이때쯤 치질과 늑막염이 악화한 상태로 병원에서 폐결핵 진단까지 받고 고통으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 후 농촌에서 우직하고 순진하게 살아가는 하층민의 비참한 생활 실상을 특유의 해학적 수법으로 표현한 단편 〈봄과 따라지〉 〈가을〉 〈두꺼비〉 〈봄밤〉 〈이런 음악회〉 〈동백꽃〉 〈야앵호〉 〈옥토끼〉 〈정조〉 〈슬픈 이야기〉와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 〈어떠한 부인을 마지할까〉 〈전차가 희극을 낳아〉 〈길〉 〈행복을 등진 정열〉 〈밤이 조금만 짤렀드면〉 등을 발표하고 미완의 장편 〈생의 반려〉를 연재하기도 했다. 그는 불과 이 년 남짓한 작가 생활 동안 삼십여 편의 단편과 한 편의 미완성 장편, 두 편의 번역 소설, 열두 편의 수필과 편지와 일기 여섯 편 등 왕성한 창작 의욕을 보이다 지병인 폐결핵에 시달리다 1937년 3월 29일 꽃다운 스물아홉의 나이로 요절했다. 그의 유해는 친구, 형제, 조카들에 의해 화장한 후 한강에 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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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7년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서 태어난다. 중인 계층의 서울 토박이라는 계층적 특징은 염상섭 문학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 그의 소설에서는 풍부한 서울말의 흔적과 근대적 삶에 대한 예민한 현실 감각을 찾아볼 수 있다. 관립 사범 학교를 중퇴하고 보성학교 중학 과정을 수학하던 중 1912년 염상섭은 일본 유학을 떠난다. 일본군 육군 중위였던 맏형의 도움으로 교토(京都)부립 제2중학을 마치고 이후 게이오의숙대학(慶應義塾大學) 예과 1학기를 다니다 자퇴한다. 그러던 중 조선에서 발생한 3·1 운동의 소식을 듣게 되고, 이에 3월 19일 오사카 덴노지(天王寺) 공원에서 단독적으로 독립 선언을 주재했으나 거사 직전 검거된다. 약 3개월간의 수감 후에는 요코하마의 복음(福音)인쇄소에 취직해 직공 노릇을 한다. 이 시기 경험한 양가적 경험, 즉 ‘근대 그 자체로서의 일본(문학)에 대한 의식’과 ‘제국 일본과 식민지 조선의 문제’는 이후 염상섭 문학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구체화된다. 1920년 1월 ≪동아일보≫ 기자로 임명된 염상섭은 귀국해서 정경부 기자로서 활동하다 1920년 7월 사직한다. 염상섭은 ≪폐허≫ 창간호 동인으로 활동하는 한편, 1920년 하반기부터 1921년 봄까지 오산학교에서 교직 생활에 몸담기도 한다. 1921년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하고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1924년 ≪시대일보≫에 발표된 ≪만세전≫은 염상섭 문학의 전환점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러한 문학적 성취는 1926년에서 1928년 사이에 이뤄진 두 번째 일본 유학과 결부되어 보다 심화된 문제의식으로 나아간다. 일본 유학 중에도 염상섭은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으며 일본인과 조선인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의 문제(혈통, 혼혈)를 밀도 있게 다룬다. 1928년 2월 귀국해서 ≪이심≫, ≪광분≫ 등을 연재하는 것에 이어 마침내 1931년 ≪삼대≫를 발표한다. 1920∼1930년대 발표된 염상섭의 작품들은 식민지 근대의 문제를 탐구하며, 식민지 조선의 정치·경제·사회·문화·사상에 관한 사유를 전개하고 있다. 역사와 사회·현실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며 이를 깊이 있는 문제의식으로 구체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리얼리즘적 성격을 나타낸다. ≪삼대≫ 이후 염상섭은 ≪백구≫, ≪모란꽃 필 때≫, ≪불연속선≫ 등의 장편 소설을 발표하지만, 이들 작품은 앞선 시기의 작품들에 비해 통속화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가운데 1930년대 중반 염상섭은 돌연 만주행을 선택한다. 진학문의 권유로 ≪만선일보≫의 편집국장으로 근무하며, 1939년 만주 안동 대동항 건설 사업 선전에 종사한다. 이 기간 중 염상섭은 장편 소설 ≪개동≫을 집필하고, 안수길·박영준 등의 창작집 ≪싹트는 대지≫와 안수길의 창작집 ≪북원(北原)≫ 등의 서문을 쓴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창작 활동을 보이지 않는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하기까지 약 10여 년의 기간 동안 그는 일종의 ‘문학적 단절’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해방된 서울로 돌아온 염상섭은 <해방의 아들>을 발표하며 다시금 문학 활동을 이어 가고, ≪경향신문≫ 창간 당시 편집국장으로 근무하기도 한다. 해방의 감격과 함께 곧이어 마주하게 된 ‘해방 이후’ 식민지의 모순, 미소 분할과 신탁 통치, 남북 분단 등의 혼란한 사회 현실의 모습을 <엉덩이에 남은 발자국>, <삼팔선>, ≪효풍≫ 등의 작품을 통해 세밀하게 그려 낸다.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이 발발하지만 염상섭은 피난을 떠나지 못한다. 9·28 서울 수복, 10·25 중공군 개입, 1951년 1·4 후퇴의 혼란 속에서, 염상섭은 윤백남, 이무영 등과 함께 해군에 입대해 1951년부터 1953년까지 부산과 서울 정훈감실에서 해군 소령으로 복무한 뒤, 1954년 5월 임시 중령으로 전역한다. 전쟁의 발발과 폐허가 된 전후(戰後)의 현실 등과 같은 역사적 비극 앞에서, 염상섭의 소설은 일상적 삶의 감각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1950년대 중후반 이후 발표되는 일련의 후기 작품들은 주로 남녀 연애담에 기반한 결혼과 가족의 문제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염상섭은 1963년 3월 14일 서울 성북동에서 타계한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의 삶은 서울에서 마무리된다. ‘작가’ 염상섭이 남긴 빛나는 작품들은 여전히 여기에 남아 있다. 염상섭은 평생에 걸쳐 작품 창작에 임하고, 소설을 쓴다는 것의 의미를 붙들었던 작가였다. 그가 보여 주는 치열한 소설 쓰기의 모습은 시대를 헤쳐 나가는 염상섭이라는 한 개인의 역사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거대한 물줄기로서 정립되어 가는 한국 문학사 그 자체의 역사와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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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오 (지은이)    정보 더보기
경성제1고등보통학교와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했다. 1932년 보성전문학교 강사(헌법, 행정법, 국제법)를 시작으로 보성전문학교 법과 과장, 고려대학교 교수, 정법대학장, 총장을 역임하였다. 법학자, 교육자, 교육행정가, 문학가, 정치가로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으며, 특히 헌법을 초안하는 등 대한민국의 기초를 세우는 데 이바지했다. 고려대학교 제2·3·4대(1952-1965) 총장으로서 교색(크림슨), 교훈(자유·정의·진리), 교장(校章), 교기, 교가를 제정하는 등 고려대학교 현대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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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 (지은이)    정보 더보기
일제강점기 「오몽녀」, 「아무일도 없소」, 「돌다리」 등을 저술한 소설가 아버지 이문교는 개화파 지식인으로서 함경남도 덕원감리서(德源監理署)에 근무한 지방관원이었는데, 당시 한말의 개혁파의 운동에 가담하였던 듯 수구파에 밀려 블라디보스톡 등지로 망명하다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가정형편으로 인하여 이태준은 어려서부터 어렵게 수학하였다. 1920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당시 그 학교의 교원이었던 이병기(李秉岐)의 지도를 받아 고전문학의 교양을 쌓았다. 그런데 학교의 불합리한 운영에 불만을 품고 동맹휴학을 주도한 결과 퇴교를 당하였다. 1926년 일본 도쿄에 있는 조오치대학[上智大學] 문과에서 수학하다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1929년에 개벽사(開闢社) 기자로 일하였고, 이화여자전문학교 강사, 조선중앙일보 학예부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1933년 친목단체인 구인회(九人會)를 이효석(李孝石)·김기림(金起林)·정지용(鄭芝溶)·유치진(柳致眞) 등과 결성하였다. 이어 순수문예지 『문장(文章)』(1939.2∼1941.4.)을 주재하여 문제작품을 발표하는 한편, 역량 있는 신인들을 발굴하여 문단에 크게 기여하였다. 단편소설 「오몽녀(五夢女)」(1925)를 『시대일보(時代日報)』에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또, 「아무일도 없소」(東光, 1931.7.)·「불우선생(不遇先生)」(三千里, 1932.4.)·「꽃나무는 심어놓고」(新東亞, 1933.3.)·「달밤」(中央, 1933.11.)·「손거부(孫巨富)」(新東亞, 1935.11.)·「가마귀」(朝光, 1936.1.)·「복덕방(福德房)」(朝光, 1937.3.)·「패강냉(浿江冷)」(三千里文學, 1938.1.)·「농군(農軍)」(文章, 1939.7.)·「밤길」(文章, 1940·5·6·7합병호)·「무연(無緣)」(春秋, 1942.6.)·「돌다리」(國民文學, 1943.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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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7년 강원도 평창에서 한성사범학교 출신의 교사였던 아버지 이시후의 1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평창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상경,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 후 일생의 벗이자 문학적 동지였던 현민 유진오를 만나면서 그와 더불어 문학에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경성제국대학에 함께 진학하여 더욱 활발한 문학 활동을 펼쳤다. 그는 대학 재학 중인 1928년 『조선지광』에 단편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유진오 등과 함께 경향소설을 쓰며 동반자 작가로 불리기도 했다. 이효석이 작품 세계에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경성농업학교 교사로 재직할 무렵이었다. 이후 평양으로 직장을 옮긴 그는 안정된 집필 환경 속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벌였고,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도 이 시기에 발표되었다. 해마다 10여 편의 소설을 발표하던 그는 1940년 아내와 아들의 잇단 죽음으로 실의에 빠져 잠시 만주 등지를 방랑하다가 돌아왔으며, 다시 창작에 대한 의욕을 불태웠지만 뜻을 펼치기도 전에 1942년 결핵성 뇌막염으로 35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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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 (지은이)    정보 더보기
호는 백릉이며, 1902년 전라북도 옥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서당에서 한문을 익혔으며 1914년 임피보통학교(臨陂普通學校)를 졸업하고, 1918년 경성에 있는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다. 재학중에 집안 어른들의 권고로 결혼했으나 행복하지 못했다. 1922년 중앙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일본 와세다 대학(早稻田大學) 부속 제1고등학원 문과에 입학하지만 이듬해 공부를 중단하고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했다가 1년여 만에 그만둔다. 1924년 단편 〈세 길로〉가 ‘조선문단’에 추천되면서 문단에 등단한다. 그 뒤 〈산적〉을 비롯해 다수의 소설과 희곡 작품을 발표하지만 별반 주목을 끌지 못했다. 1932년 〈부촌〉, 〈농민의회계〉, 〈화물자동차〉 등 동반자적인 경향의 작품을, 1933년 〈인형의 집을 나와서〉, 1934년 〈레디메이드 인생〉 등 풍자적인 작품을 발표하여 작가로서의 기반을 굳힌다. 1936년에는 〈명일〉과 〈쑥국새〉, 〈순공있는 일요일〉, 〈사호일단〉 등을, 1938년에는 〈탁류〉와 〈금의 열정〉 등의 일제강점기 세태를 풍자한 작품을 발표한다. 특히 장편 소설 〈태평천하〉와 〈탁류〉는 사회의식과 세태 풍자를 포괄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또한 1940년에 〈치안속의 풍속〉, 〈냉동어〉 등의 단편 소설을 발표한 그는 1945년 고향으로 내려가 광복 후에 〈민족의 죄인〉 등을 발표하지만 1950년에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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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 (지은이)    정보 더보기
일제강점기 조선 문단을 대표하는 사실주의 소설가이자 언론인으로, 식민지 현실을 날카롭게 포착한 문학적 성취와 더불어 민족적 저항의식을 실천한 지식인이다. 1900년 대구에서 개화파 계열의 집안에 태어나 일본 도쿄 세이조중학교에 이어 상하이 후장대학 등에서 유학하며 국제 정세와 민족 문제에 눈을 떴다. 이러한 해외 경험은 그의 문학관과 민족의식 형성에 중요한 토대를 제공했다. 1920년 《개벽》에 <희생화>를 발표하며 등단한 이후 <빈처>,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 <고향> 등 여러 단편을 통해 폐색된 식민지 일상, 궁핍과 부조리에 직면한 소시민과 지식인의 삶을 예리한 구성과 간결한 문체로 형상화했다. 일제에 끝까지 저항했기 때문에 말년에는 경제적 어려움이 극심했으나 한결같이 친일 노선과 거리를 두고 창작을 이어갔으며, 1943년 지병으로 별세했다. 현실의 비극을 정면으로 끌어와 독자에게 윤리적 자각을 환기하는 그의 단편들은 한국 근대 단편소설 형식의 성숙을 이끌었다고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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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서재 편집부 (지은이)    정보 더보기
어린이 · 청소년 독자를 위한 책을 기획 · 편집하는 일을 합니다.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힘과 읽는 즐거움이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펴낸 책으로 《문어잼》 시리즈와 《우리 소설 탐구 1, 2, 3》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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