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91189171971
· 쪽수 : 404쪽
· 출판일 : 2026-08-14
책 소개
목차
이 책을 추천하며
책머리에
이 책의 구성
채만식
논 이야기
미스터 방
민족의 죄인
김동리
역마
손창섭
비 오는 날
잉여인간
저자소개
책속에서
독립?
신통할 것이 없었다.
독립이 되기로서니, 가난뱅이 농투성이가 별안간 나으리 주사 될 리 만무하였다. 가난뱅이 농투성이가 남의 세토 얻어 비지땀 흘려 가면서 일 년 농사지어 절반도 넘는 도지 물고, 나머지로 굶으며 먹으며 연명이나 하여 가기는 독립이 되거나 말거나 매양 일반일 터이었다.
공출이야 징용이야 하여서 살기가 더럭 어려워지기는, 전쟁이 나면서부터였었다. 전쟁이 나기 전에는 일 년 농사지어 작정한 도지, 실수 않고 물면 모자라나따나 아무 시비와 성가심 없이 내 것 삼아 놓고 먹을 수가 있었다.
징용도 전쟁이 나기 전에는 없던 풍도였었다. 마음 놓고 일을 하였고, 그것으로써 그만이었지, 달리는 근심 걱정될 것이 없었다.
전쟁 사품에 생겨난 공출이니 징용이니 하는 것이 전쟁이 끝이 남으로써 없어진 다음에야 독립이 되기 전 일본 정치 밑에서도 남의 세토 얻어 도지 물고 나머지나 천신하는 가난뱅이 농투성이에서 벗어날 것이 없을진대, 한갓 전쟁이 끝이 나서 공출과 징용이 없어진 것이 다행일 따름이지, 독립이 되었다고 만세를 부르며 날뛰고 할 흥이 한생원으로는 나는 것이 없었다.
국가란 무엇인가, 냉소 속에 담긴 뼈아픈 질문
태우 그래서 한생원이 마지막에 ‘만세 안 부르길 잘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처음에는 그 말이 너무 매국노 같은 발언이라고 생각했는데, 설명을 듣고 나니 이해가 가요. 한생원 입장에서는 나라가 자신을 도와주기는커녕 또 다른 도둑처럼 느껴졌을 테니까요.
선생님 맞아. 그래서 모두가 만세를 외치는 순간에 홀로 냉담했던 자신의 태도가 오히려 옳았다고 생각하지. 이건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국가와 개인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졌다는 선언에 가까워. ‘나라가 나에게 해 준 게 무엇인가?’라는 한생원의 항변에는, 국민의 삶을 책임지지 못하는 국가는 존재 이유가 없다는 작가의 통렬한 문제의식이 담겨 있어.
지현 저는 그 장면에서 작가의 시선이 참 차갑다고 느꼈어요. 한생원을 감싸 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새 나라를 찬양하지도 않잖아요. 그냥 모두를 비판하는 느낌이었어요.
선생님 그렇지. 바로 그 ‘거리 두기’와 ‘냉소’가 채만식 문학의 핵심적인 특징이야. 작가는 한생원의 무능과 도덕적 해이도 비판하고, 혼란을 틈타 이득을 취하는 영남 같은 기회주의자도 비판해.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인 재산을 국가가 관리하고 다시 팔 수 있다는 상황으로 농민들을 절망에 빠뜨린 국가를 가장 날카롭게 겨누고 있지. 어느 한쪽 편을 드는 대신, 현실의 모순을 그대로 드러내 독자가 판단하게 만드는 전략이야.
수지 그러면 이 소설은 결국 ‘나라가 독립했느냐’보다 그 나라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느냐를 묻고 있는 거네요. 한생원의 말이 불편하게 들리는 이유도, 그 질문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선생님 아주 잘 봤어. 이 작품이 불편한 이유는, 한생원의 냉소가 단순한 투정이 아니라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질문이기 때문이야. 국가는 이름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민중의 삶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 국가는 과연 누구의 것인가. 채만식은 이 질문에 답을 주지 않아. 대신, 웃음과 냉소 속에 그 질문을 그대로 남겨 두지.
내가 보기엔, 조선 여자의 옷이 퍽 아름답고 점잖스럽던데, 어째서 양장들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S소위가 물었다. 미스터 방은, 여자들이 서양 사람한테로 시집을 가고파서 그런다고 대답하였다.
서울역을 비롯하여 거리에 분뇨가 범람한 것을 보고, 혹시 조선 가옥에는 변소가 없느냐고 S소위가 물었다. 미스터 방은, 있기야 집집마다 다 있느니라고 대답하였다.
썩 좋은 조선 그림을 한 장 사고 싶다고 하여서, 문지방 위에다 흔히들 붙이는, 사슴이 불로초를 물고 신선이 앉았고 한 것을 오 원에 한 장 사주었다.
제일 재미있고 유명한 소설이 무엇이냐고 물어서, 『추월색』이라고 대답하였고, 그럼 그것을 한 권 사고 싶다고 하여서, 여러 날 사러 다니다 못해 동네 노마네 집에 치를 이 원에 사주었다. 이 밖에도 미스터 방은 S소위에게 조선을 소개한 공로가 여러 가지로 많으나, 대강은 그러하였다.
그 공로에 정비례해서, 미스터 방은 나날이 훌륭하여져 갔다. 8ㆍ15 이전에 어떤 은행의 중역의 사택이라던 지금의 이 집으로, 현저동 그 집에서 옮아오기는 S소위의 통역이 되는 사흘 후였었다. 위아래층을 다, 양식 절반 일본식 절반으로 꾸민 호화스런 저택이었다. 정원엔 때마침 단풍과 가을 화초가 아름다웠고, 연못에선 잉어가 뛰놀고 하였다.
시방 주객이 앉아 술을 마시는 방은, 앞은 노대가 딸리고, 햇볕 잘 들고 밝아서, 여러 방 가운데 제일 좋은 방이었다. 그러나 방 안에는 벽에 그림 한 장 붙어 있는 바 아니요, 방에 알맞은 가구 한 벌 놓여 있는 바 아니요, 단지 방일 따름이어서, 싱겁게 넓기만 하였다. 그렇지만 미스터 방은 실내의 장식 같은 것쯤 그다지 관심할 줄을 아직은 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