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logo
x
바코드검색
BOOKPRICE.co.kr
책, 도서 가격비교 사이트
바코드검색

인기 검색어

일간
|
주간
|
월간

실시간 검색어

검색가능 서점

도서목록 제공

  • 네이버책
  • 알라딘
  • 교보문고
"걷는"(으)로 1,086개의 도서가 검색 되었습니다.
9791175010178

우리는 같은 통점이 된다

문학동인 공통점  | 걷는사람
10,800원  | 20251001  | 9791175010178
“나도 모르게 내 투명한 면을 꺼내고 당신은 무척이나 태연한 표정으로 내 문장을 오밀조밀 다듬는다“ 대신할 수는 없지만, 함께할 수는 있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느슨한 연대 “우리는 같은 통점이 된다.” 갈등과 분열의 시대, 서로의 통증을 ‘대신’하지 않되 ‘나눌’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대학 시절 속삭이듯 시를 나누던 작은 모임에서 출발해, 십 년 넘게 서로의 지옥과 골방을 읽어 주며 숲을 이룬 문학동인 ‘공통점’. 그들의 첫 동인 시집 『우리는 같은 통점이 된다』가 걷는사람 시인선 131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개별 시인의 고유한 목소리를 존중하면서도 ‘느슨한 연대’라는 공동의 감각으로 확장되는 집합적 시도의 기록이다. 공통점은 “타인의 삶과 고통에 대한 공감을 차단하지 않고 문학을 매개로 연대하겠다”는 약속에서 출발했다. 이름 그대로 ‘공-통점’(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통점으로 연결되는 지점)을 탐색하며, 시를 읽고 쓰고 엮는 일을 꾸준히 이어 왔다. 이번 동인 시집에는 여덟 명의 시인이 다섯 가지 주제(▲공통점과 차이점 ▲1990년대생의 정체성과 경험 ▲서로에게 부치는 시 ▲비경험 세대로서의 5·18 ▲기후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를 각각 맡아 쓴 작품들을 차례대로 엮었다. 시편 뒤에는 시인이 직접 쓴 짧은 산문이 이어져, 작품에 담긴 생각과 공통점이라는 공동체에 대한 성찰을 함께 전한다. 이 독특한 편집은 시와 산문이 교차하며 독자에게 한층 입체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추천의 말도 각별하다. 김소연 시인은 공통점의 작업을 “미래에서 날아온 시집 같다”고 평하며, “두터운 과거를 선명히 되살리고 미래를 경유해 부메랑처럼 현재로 되돌아오는 언어들”이 만들어 내는 유유(幽幽)하고 단단한 공동의 결을 주목한다. 나희덕 시인은 공통점을 “시가 내준 질문과 숙제를 포기하지 않는 학생들”, “고통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나눌 수는 있다고 말하는 드문 우정의 친구들”이라 부르며, 십여 년의 시간이 ‘지옥과 골방’을 ‘정원과 숲’으로 바꿔 온 과정을 증언한다. 서로의 고통을 통해 새로운 통점을 발견해 나가는 이들의 시도는, 동인이라는 오래된 문학적 전통 속에서 새롭고도 단단한 가능성을 보여 준다. 해설 「느슨한 연대를 향한 통각」에서는 이 시집의 핵심을 ‘연대의 기술’에서 찾는다. 김원경은 공통점의 시들이 모임·만남·기다림의 장면을 통해 “완전한 이해나 일치가 아닌, 어긋남과 지연 속에서” 성립하는 연대를 보여 준다고 읽는다. 말문이 쉽게 열리지 않는 자리에 머뭇거리며 앉아 있는 태도, 섣부른 위로나 확신을 보류하는 침묵, 서로의 박동에 맞추어 ‘함께 기다리는’ 시간. 이 느슨한 윤리가 바로 공통점이 실천해 온 연대의 몸짓이라는 것이다. 때로는 과거의 상처를 복원해 돌보는 뜰을 만들고(기억의 재배치), 때로는 각자의 믿음과 생각이 다름을 인정한 채 같은 동작을 수행하며(함께 있음의 리듬), 끝내 “우리는 무엇이든/어떻게든”(이서영, 「여름 환영」) 서로의 곁에 머물고자 하는 약속으로 나아간다. 동인을 대표해 기획자 윤소현은 이렇게 고백한다. “함께 시를 쓴다는 건 형용할 수 없던 슬픔을 자신만의 언어로 써낼 때까지 묵묵히 곁을 지켜 주는 이들이 있다는 의미”라고. 공통점은 환대와 보류, 응답과 기다림 사이를 건너며, “조금 늦더라도 나란히 걸을 때까지” 서로를 기다려 온 공동체다. 『우리는 같은 통점이 된다』는 단지 동인이라는 형식의 복원이 아니다. 타인의 고통을 ‘대신’하지 않되 ‘포기하지 않는’ 문학의 윤리, 개별에서 공동으로 건너가는 언어의 형식, 불길한 미래를 향한 믿음을 오늘의 시어로 갱신한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관계의 실패와 간극을 숨기지 않고 시간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성립하는 현대적 연대의 감각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완결이나 일치가 아닌, 겹침의 순간들……. 그 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같은 통점이 된다.
9791175010185

좋아하니까 말해 주는 거야

우은주  | 걷는사람
10,800원  | 20251017  | 9791175010185
대안 아닌 ‘머무름의 시학’ 이 시집은 온통 ‘좋아하니까 말해 주는’ 것들로 꽉 차 있다 살아 있음과 없음의 중간 어디쯤에서 건져 온, 돌과 바람과 달빛의 ‘말’들 “너를 좋아하니까 밤새 담벼락 아래 수많은 이야기가 그들의 놀라운 음악을 들려준다 표정이 말해 주었다” 우은주 시인의 시집 『좋아하니까 말해 주는 거야』가 출간되었다. 이 시집은 우리가 이미 지나왔다고 믿는 시간들을 다시 불러와, 그 곁에 조용히 앉아 잊지 않기 위해 듣는 일을 이어 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채워져 있다. 시인은 ‘말하는 자’이기 이전에 ‘듣는 자’로서의 화자를 세우며, 고통과 상실, 그리고 그 기억이 만들어 낸 여운을 머무름의 언어로 그려 낸다. 그래서 시인은 말한다. “좋아하는 마음을 멈춘 적 없어서/ 한 사람이면서 여럿, 하나면서 여러 이름이/ 있었던 사람, 언젠가 없을 사람들을 부른다”(「시인의 말」) 시집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4월」은 세월호 참사를 환기시키며, 말끔히 정돈된 도시의 이면에는 여전히 무수한 피가 흐르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시인은 고발하거나 재현하기보다, 그날 이후의 시간 속에 남은 사람들을 바라본다. “나는 여기 있고/ 나는 지나갔다”(「6월 29일」)는 문장은 살아남은 자가 감당해야 할 자리, 기억과 망각 사이의 경계를 고요히 지시한다. 우은주의 시는 사건의 중심이 아니라 그 주변을 맴돈다. 그곳에서 그는 침묵 속의 미세한 진동을 포착하며, 쉽게 위로하거나 결론짓지 않고 오래 듣는 윤리를 택한다. 이때 시는 누군가의 슬픔을 대신 말하는 언어가 아니라, 그 슬픔 곁에 머무는 시간이 된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깊이 도달하는 이 조용한 언어는 상처의 내부에서 새로 피어나는 온도의 감각을 전한다. ‘나에게 많은 건 망설임/ 이렇게 말해도 될까?/ 묻고 또 묻는 마음’으로. 「황색 트렌치코트」에서 화자는 낡은 옷 한 벌에 “바람을 막아 내던 날개는 찢어졌고 //(중략)// 코트 밑단에서 흰 재가 한 움큼씩 떨어진다”라고 쓴다. 사물에 스며든 한 생의 시간은 효용으로 환원되지 않고, 삶의 잔향과 상처의 무게로 다시 빛난다. 이처럼 시인은 사물의 내력에 귀 기울이며, 지나간 존재들의 목소리를 현재의 자리로 불러온다. 특히 시집의 2부에는 서로 맞닿은 시간과 인물들을 따라 이어지는 연작시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 연작들은 한 사건의 여러 층위를 비추듯, 한 사람의 목소리가 다른 사람의 기억과 맞닿는 순간들을 보여 주며, 시집 전체의 서사적 흐름을 이루어 간다. 「지원의 얼굴」에서는 ‘나’와 ‘너’의 경계가 사라진다. 화자는 관찰자의 자리에서 ‘너’를 바라보지만, 그 시선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넘어 상실을 경험한 모든 이들의 초상으로 확장된다. 우은주의 시적 언어는 사적이면서도 사회적이며, 개인의 감정이 공통의 감각으로 변모하는 순간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듣는 자의 윤리, 곁에 머무는 사람의 마음이 있다. 임지훈 문학평론가는 해설 「‘듣는 자’의 말하기, 혹은 과거로부터 미래를 발굴하기」에서 이 시집을 “대안이 아닌 머무름”의 시학이라 부른다. 그는 우은주의 시가 보여 주는 태도를 “과거로부터 미래를 발굴”하는 청취의 언어로 정의하며, 시인이 자신의 목소리를 앞세우지 않고 타인의 목소리 속에서 다중의 ‘나’와 ‘너’를 발견한다고 말한다. 그 다정하고 절제된 태도 속에서 시는 망각을 넘어서는 또 다른 윤리를 제시한다. 『좋아하니까 말해 주는 거야』는 사건과 사물, 개인과 사회, 말하기와 듣기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찾아가는 시집이다. 잊어서는 안 될 것들을 조용히 떠올리며, 기억은 머무는 일임을 보여 주는 이 시집은 슬픔과 윤리, 고요와 연대의 언어로 오늘의 시가 어디에 서야 하는지를 다정하게 묻는다. 시인은 다정한 목소리로 조심스레 손을 내민다. “나의 집에 와서 따듯하게 데워진 언어를 마시자”고.
9791175010086

2024 창작희곡 공모 선정작 (국립극단 희곡선)

김주희, 배해률, 윤지영  | 걷는사람
13,500원  | 20250926  | 9791175010086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희곡’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강과 상승을 반복하는 여성들의 이야기, 짐승이 되기로 선택한 자들의 연대, 세월을 건너 다시 전해진 한 세대의 고통… 국립극단 희곡선 『2024 창작희곡 공모 선정작』 출간 국립극단이 개최한 ‘2024 창작희곡 공모’를 통해 선정된 세 편의 수상작을 엮은 희곡집이 출간되었다. 국립극단의 창작희곡 공모는 1957년부터 한국연극의 중요한 레퍼토리들을 발굴해 온 역사 깊은 공모 프로그램으로, 2024년 새롭게 개편되어 “삶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는 언어로서의 희곡”을 다시 호출했다. 해당 공모에는 약 300편이 응모되었고, 3차에 걸친 심사를 통해 대상 1편과 우수상 2편이 선정되었다. 역사를 관통하는 기억, 바깥의 존재를 품는 상상력, 침묵 속 고통의 서사까지, 이 세 편의 희곡은 서로 다른 결을 지니면서도 모두 ‘동시대를 말하는 목소리’로 연결된다. 대상작 「역행기(逆行記)」(김주희)는 “작품의 길이, 상상적 공간의 스케일, 주제의 다층성 등을 고려할 때 ‘대작’이라 부를 만한 희곡”(심사 총평)으로 평가되었다. 수 세대에 걸친 여성들의 기억과 상처, 연대를 신화적 구조와 환상적 장치로 풀어낸 작품이다. 지하 세계를 향해 하강하고 다시 상승하는 구조를 통해 ‘기억의 복원’과 ‘공통된 몸의 시간’을 서정적으로 그려낸다. 김주희 작가는 이 희곡에 대해 “서로의 기억과 몸이 섞이는 시간 속으로의 여행”(작가의 말)이라고 밝히며, 삶의 ‘바닥 아래’로 내려가는 일은 결국 다음 세대를 위한 뿌리의 이양이기도 하다는 점을 조심스레 제시한다. 환상, 생태적 상상력, 신화적 서사가 결합된 독창적 희곡이다. 우수상 「야견들」(배해률)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그 시대의 어둠 속에서 성소수자, 사회적 소외자, 짐승처럼 살아야 했던 존재들을 통해 ‘경계 바깥의 삶’을 탐구한다. “짐승이 되기로 선택한 자들의 연대”(작가의 말)라는 이 작품은, 유머와 연민, 시적 리듬이 공존하는 서사로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낯선 시대와 낯선 삶에 대한 깊은 관찰을 풀어낸 이 작품은, 삶의 본질을 단순화하지 않으면서도 가볍지 않게 다루는 균형이 높이 평가되는 작품이다. 우수상 「그라고 다 가불고 낭게」(윤지영)는 여순 사건(여수·순천 10.19 사건)을 소재로, 죽음을 목전에 둔 노인이 12세 시절의 기억을 회상하며 그날의 참혹한 진실을 들려주는 희곡이다. 전라도 방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가족과 공동체, 이념과 생존 사이에서 끝내 울음을 삼켰던 세대의 침묵을 그려낸다. 역사적 침묵과 개인의 상처를 응시하는 깊은 정서가 돋보인다. 한 세대의 고통이 세월을 건너 다시 전해지는 방식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역사적 치유의 필요성을 호소한다. 삶의 끝자락에서 찾아오는 기억의 파동이 어떻게 자기치유의 과정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풀어낸 이 희곡은, 시대적 고통을 사적으로 끌어안는 서사적 진정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희곡집의 세 작품은 모두 말이 쉽게 허락되지 않는 시대,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을 응시하고 있다. 무대 위의 인물들은 삶을 구체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이면에 있는 보편성과 비명(悲鳴)을 끌어안는다. 이 세 편의 희곡은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 언어와 감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말할 수 없었던 역사와 감정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라는 동일한 질문을 관통한다. 국립극단 창작희곡 공모 희곡선은 앞으로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의 상상력과 실천을 기록하고, 한국연극이 나아갈 수 있는 다채로운 가능성의 출발점이 되어줄 것이다. ‘국립극단 창작희곡 공모’는 우리 시대의 고민을 담고 미래의 가능성을 제시할 독창적인 창작희곡을 발굴합니다. 이번 희곡선은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품들을 모아 더 많은 독자와 관객에게 소개하고, 한국연극의 다양성을 확장하는 밑거름이 되고자 합니다.
9791175010147

바다어 마음사전

한창훈  | 걷는사람
14,400원  | 20250926  | 9791175010147
바다가 품은 언어, 섬이 길러낸 마음 파도와 함께 건져 올린 삶의 이야기들…… 한창훈 에세이 『바다어 마음사전』 출간 바다와 섬의 언어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삶의 깊은 결을 만난다. 소설가 한창훈의 신작 『바다어 마음사전』은 바다를 삶의 원천으로 삼아온 한 작가가, 오랫동안 가슴에 묻어 둔 말과 기억을 꺼내어 엮어 낸 산문집이다. 저자 한창훈은 여수 거문도 출신으로, 바다와 섬의 환경 속에서 성장하며 이를 창작의 근간으로 삼아 왔다. 그에게 바다는 단순한 배경이나 풍경이 아니라 곧 삶의 방식이고, 언어의 원천이다. 섬에서 자란 소년이 도시로 떠났다가 다시 바다로 돌아오기까지, 그 과정에서 바다는 늘 한 발짝 앞서 그를 이끌고 지탱했다. 이번 책은 그런 시간의 축적 위에서 쓰였다. 『바다어 마음사전』은 그가 수십 년간 바다와 함께 살아오며 직접 보고 듣고 겪은 경험을 토대로 엮어 낸 책으로, 단순한 에세이집이 아니라 지역 언어와 공동체 문화를 담은 기록문학의 성격을 지닌다. 『바다어 마음사전』에는 섬사람들의 말과 생활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메 오메, 내 천금아”하고 아이를 맞이하던 할머니들의 목소리, 낚시 대신 다른 이에게 얻어온 생선을 빗댄 ‘갈매기 조법’, 돌담 위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던 노란 새의 고독한 울음까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쓰이는 방언과 표현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언어들은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정체성과 감정, 삶의 태도를 반영한다. ‘마음사전’은 단순히 언어의 풀이가 아니라, 말에 배어 있는 기억과 감정, 그리고 공동체적 삶의 결을 담아내고 있다. 책의 곳곳에는 바다와 섬이 들려주는 소리가 울린다. 어린 시절 어둠 속에서 들었던 ‘바다의 소리’, 바닷길 위로 떠오른 달빛의 장면, 태풍 뒤 끝에 몰아친 파도, 핵 오염수 방류로 인한 어촌의 위기 등 저자가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 사건들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바다는 단순한 자연 환경이 아니라 시대와 공동체, 인간의 삶을 동시에 비추는 거울로 제시된다. 저자는 그것들을 단순히 묘사하지 않는다. 바다의 파동과 울림을 삶의 언어로 옮기고, 그 언어를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던 마음의 차원을 환기시킨다. 『바다어 마음사전』은 지역적 소재를 다루면서도 보편적인 의미를 지닌다. 바다는 한국인의 삶과 정서를 형성해 온 중요한 환경이며, 저자의 기록은 우리가 놓치고 있던 공동체적 가치와 자연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바다가 죽어가는 현장, 핵 오염수 방류와 같은 위기 앞에서 무너져가는 어촌 공동체의 현실을 담담히 적는다. 그러나 이 기록은 절망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 속에서도 서로를 부둥켜안고 버텨내는 사람들의 마음, 무너져도 다시 일어서는 삶의 질긴 힘을 보여 준다. 바다라는 거대한 자연을 통해 우리는 오히려 인간의 연약함과 동시에 단단함을 읽는다. 『바다어 마음사전』은 단순한 풍경 묘사가 아닌, 바다와 섬을 중심으로 한 언어·문화·삶의 총체적 기록으로서 독자에게 다가간다. 바다를 따라 형성된 생활과 공동체, 그리고 그 속에서 길어 올린 마음의 언어를 통해, 현대 독자들은 자연과 인간, 지역과 삶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를 얻게 될 것이다. 마음사전 시리즈 ‘마음사전’은 지역과 시대, 삶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언어를 통해 한국인의 정서를 새롭게 바라보는 기획으로, 『바다어 마음사전』은 그 가운데서도 바다와 섬이라는 독특한 삶의 터전을 다룬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제주어 마음사전』(현택훈 作) / 『강원도 마음사전』(김도연 作) / 『충청도 마음사전』(박경희 作)
9791175010109

바다는 누가 올려다보나

허유미  | 걷는사람
10,800원  | 20250930  | 9791175010109
섬이 어디 있다는 거야? 내가 될 너밖에 안 보이는구나“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이어진 바다의 노래 삶의 고통과 희망을 길어 올리는 허유미 시인의 첫 시집 허유미 시인의 첫 시집 『바다는 누가 올려다보나』가 걷는사람 시인선 130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이 시집은 제주에서 나고 자란 시인이 온몸으로 경험한 삶과 역사, 그리고 그 속의 여성들을 담아낸 기록이다. 해녀들의 물질과 제주 4·3 사건, 제주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시적 언어로 새롭게 태어난다. 장은영 문학평론가는 시집 속 제주가 ”평면의 풍경이 아닌 우리 모두가 연루되어 있는 삶의 세계“를 담고 있으며, ”제주의 바다와 바람, 제주의 언어와 삶의 양식 그리고 역사적 사건이 그물처럼 얽힌 삶의 세계“를 보여 준다고 평했다. 바다라는 삶의 터전 허유미의 시에서 바다는 단순한 자연을 넘어선다. 바다는 그 자체로 삶의 무게와 투쟁을 담아내는 공간이다. 시인은 해녀들의 삶을 통해 바다가 ”바다 외에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다“(「수평선으로 가자」)는 진실을 응시한다. ”바다로 뛰어드는 불굴의 투지를/투자로 바꾼 자는 영웅이 되어/바다를 바닥처럼 내려다본다”는 「바다는 누가 올려다보나」의 구절처럼 시는 물질을 통해 삶의 고통과 희열을 동시에 겪어 내는 존재들을 묘사하며, 자본의 논리가 삶을 덮어 버린 현실을 날카롭게 응시한다. 시인은 “뿔소라는 수족관에 오래 두면/뿔이 사라져 버린다”는 「뿔소라 편지」의 구절을 통해 안온한 삶 대신 거친 바다에서 “견디고 애쓰는 힘”을 배우며 단단한 ‘뿔’을 돋우는 삶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이처럼 『바다는 누가 올려다보나』는 삶의 본질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드는 시집이다. 혈연을 넘어서는 어멍의 연대 『바다는 누가 올려다보나』의 가장 중요한 정서적 축은 어머니와 딸의 관계, 그리고 이를 확장한 ‘모성 공동체’에 있다. 시인은 모성이 단순히 숭고한 관념이 아니라 고통과 쾌락, 애정과 증오가 뒤섞인 양가적이고 비균질적인 사건임을 보여 준다. 「게우젓」에서 어머니가 아픈 자식에게 먹일 게우젓을 먼저 자신의 입에 넣는 행동은 모성 안에 숨겨진 강렬한 생의 욕구를 드러낸다. 이러한 모성은 혈연의 경계를 넘어선다. 시인은 “불턱”에서 서로를 ‘어멍(어머니)’처럼 품어 주는 해녀들처럼, 4·3 사건의 참혹한 역사 속에서도 삶을 지탱하게 해 준 것이 바로 서로를 돌보고 의지하는 공동체의 힘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모여 사네 가만히 들여다보니 서로의 의심과 미움 눈물이 모여 마을을 받치고 있네”라는 「빌레못굴」의 구절은 상처 입은 존재들이 서로를 보듬으며 만들어 내는 단단한 연대를 보여 준다. 고통을 딛고 피어나는 희망의 기록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삶의 연대’는 “오늘을 넘겨주면 내일을 넘겨받는 숨”(「끝없는 바람」)처럼 이어지는 생명의 흐름이다. 시인은 “발이 헛디뎌 넘어져도/푸른 물 밖을 벗어나지 않는”(「신비스러운 고독」) 삶의 안전망으로서의 모성 공동체를 이야기한다.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자식이자 어머니가 되어 서로를 돌보는 삶의 그물을 짜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허유미의 시는 모든 슬픔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 희망을 제시하며, 우리가 삶을 살아 내는 매 순간이 곧 역사와 사랑, 그리고 치유의 과정임을 묵직하게 증명한다.
9788968334931

수학의 숲을 걷다 (개념 나무를 따라 걷는 지적 탐험)

송용진  | 블랙피쉬
17,100원  | 20250325  | 9788968334931
“수학의 본질을 꿰뚫다!” 위상수학의 거장이자 수학올림피아드의 스승 송용진 교수와 떠나는 47번의 수학 개념 산책 ‘수학’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는가? 출구가 안 보이는 미로, 어렵지만 가까워지고 싶은 친구, 또는 재미있는 게임 등 사람마다 느끼는 바는 다를 것이다. 하나 분명한 것은 수학은 어려운 학문이라는 점이다. 간단해 보이는 개념과 기호들도 수많은 수학자들이 어렵게 깨닫고 정리한 것들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수학의 기초 개념은 쉽게 이해하고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학공부 때문에 마음고생을 한 경험이 있다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배우고 깨치기 어렵지만, 수학은 우리 삶에 필요한 학문이다. 학교 공부에서 필수 과목이고 경제 및 사회 현상이나 역사적 흐름 등을 설명하는 데도 빠질 수 없다. 수천 년간 인류 문명과 함께 발전해 온 유일한 학문이자 지적 유산이다. AI 시대에 더욱 필수적인 논리력, 사고력, 문제해결력을 키워 주는 학문이기도 하다. 꼭 이공계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수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이토록 중요한 수학을 우리는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팍팍한 경쟁 속에서 이해할 틈도 없이 공식을 외우고 문제 풀이에만 급급하지 않았던가? 빽빽한 나무 사이에서 헤매다 숲을 못 보고 지나오지 않았던가? 위상수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이자 국제수학올림피아드 한국대표단을 30년간 이끌어 온 송용진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수학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이 책 《수학의 숲을 걷다》를 썼다. 저자는 한평생 수학교육의 최전선에서 헌신하며 받은 수많은 질문들, 즉 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어려워하는 개념 원리 중 47개를 추려 소개한다. 실수, 집합과 함수, 극한과 미적분 등 수학의 핵심 개념들을 엄선하고 그 개념들의 진정한 의미를 적절한 비유와 사례를 들어 명쾌하게 설명한다. 수학을 전공하거나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뿐 아니라 수학에 호기심과 궁금증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 수학을 효과적으로 지도하는 방법과 통찰의 기회를 제공하므로 수학 교사 등 교육자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9791175010192

얼치기완두 길 잃기

김영경  | 걷는사람
10,800원  | 20251003  | 9791175010192
걷는사람 시인선 132 김영경 시집 『얼치기완두 길 잃기』 출간 끝없이 이어지는 환유의 연쇄, 타자를 예비하는 언어의 태도 “아보카도를 부화시켜 볼까요? 아보카도는 어떻게 형태를 유지하는 걸까요” 김영경 시인의 첫 시집 『얼치기완두 길 잃기』가 걷는사람 시인선 132번째 시집으로 출간되었다. 이 시집은 언어를 고정된 의미에 묶어 두지 않고, 끝없이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환유적 상상력을 통해 펼쳐진다. 시인의 언어는 은유의 동일성을 거부하고, 결여에서 출발하는 무한한 연쇄 속에서 타자를 향해 나아가는 윤리적 태도를 드러낸다. 총 4부로 구성된 이번 시집은 ‘아보카도’와 ‘펭귄’, ‘연두’와 ‘어둠’, ‘길’과 ‘죽음’처럼 서로 다른 기표들이 긴장 속에서 맞물리며 끝없이 이동하는 장면들을 보여 준다. 「아보카도 펭귄」에서는 “모방은 싫어요 모순으로 돌아서서”라는 선언을 통해, 은유적 동일성의 세계가 아니라 환유적 모순의 세계로 들어서는 시인의 태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연두 인사법」에서 ‘연두’는 단순한 색상이 아니라 성장과 소멸, 탄생과 퇴락이 교차하는 환유적 지점으로 확장되며, 언어는 곧 자연의 법칙과 맞닿는다. 시인은 이러한 환유적 태도를 통해 삶과 죽음, 주체와 타자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든다. 「머리에 꽃」에서는 “죽은 길이 되살아나 출렁거린다”라는 구절을 통해, 죽음의 정적 속에서도 되살아나는 출렁임을 환유적으로 드러낸다. 이때 화자의 정체는 특정되지 않고, 버려지고 떠돌며 끝없이 변주하는 존재인 ‘바리데기’의 모습과 겹쳐진다. 버림과 희생, 떠돎과 부활의 행위를 반복하는 바리데기는 고정된 의미망에 묶이지 않는 환유적 여행자로, 시인의 시적 태도를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얼치기완두 길 잃기』에서 주목할 또 하나의 축은 제주라는 공간이다. 「숨비소리」, 「ᄇᆞ롬밧」, 「순비기꽃」 같은 작품은 해녀의 물질과 숨비소리를 환유적 언어로 포착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매일 넘나드는 해녀의 숨소리는 시인의 상상력 속에서 바리데기와 겹쳐지며, 제주는 곧 고정된 의미를 벗어나 다른 세계와 접속하는 상징적 장소로 자리한다. 같은 맥락에서 바람, 자갈, 파도와 같은 주변 사물들 또한 독립된 이미지가 아니라 서로를 환기하는 기표군으로 등장하며, 시집 전체의 리듬을 형성한다. 이 시집의 환유적 상상력은 단순한 언어적 기교가 아니라 시인의 존재론이자 태도다. 의미의 고정에 저항하며 끝없이 다른 세계를 향하는 이 언어는, 궁극적으로 타자를 예비하는 시적 윤리로 귀결된다. 그래서 이 시집의 시선은 대상 위에 의미를 덧씌우기보다, 의미가 막 생겨나려는 문턱, 사물과 사물, 생과 사, 나와 당신 사이의 얇은 경계를 오래 바라보는 데 머문다. 그 응시가 만든 여백에서 독자는 “서로의 맛이 궁금”해지는 욕망의 이동, 곧 시가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조용한 속도를 체험하게 된다. 김영경의 시집 『얼치기완두 길 잃기』는 언어를 통한 끝없는 여행, 의미의 결박에서 벗어나 타자와 조우하려는 시적 분투를 담아 낸다. 환유를 시적 태도로 삼은 이번 시집은, 결여와 불화를 견디며 타자와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새로운 시의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동시에 다가올 궤적을 예감케 하듯, 고정된 상징을 벗어나 세계의 미세한 떨림을 언어로 번역하려는 꾸준한 의지가 분명하고 단단하게 드러난다.
9791175010208

엄마 손을 잡고 그 골목에 서 있네

양애경  | 걷는사람
10,800원  | 20251020  | 9791175010208
걷는사람 시인선 134 양애경 시집 『엄마 손을 잡고 그 골목에 서 있네』 출간 ”이렇게 헤어져서 무너지며 울려고 나와 엄마는 함께 그 세월을 버텨 왔을까“ 7년간의 ”독박 간병“을 통과한 딸이 모든 ‘돌봄 생존자’에게 건네는 절절하고 명랑한 자립 선언 양애경의 일곱 번째 시집 『엄마 손을 잡고 그 골목에 서 있네』가 걷는사람 시인선 134번으로 출간되었다. 7년간 간병한 어머니를 떠나보낸 경험을 담고 있는 이번 시집은 개인의 기록을 넘어 돌봄의 현실과 상실 이후의 삶을 응시한다. 시인은 간병의 고통과 고립감, 죄책감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도 특유의 명랑한 언어로 ‘돌봄 생존자’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 낸다. 『엄마 손을 잡고 그 골목에 서 있네』는 개인의 경험을 사회적 공감으로 확장하며, 상실과 회복의 과정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사랑의 지속 가능성을 탐색한다. ‘개인적 시련’이라는 말 뒤: 돌봄의 사회적 묵음을 깨다 이 시집은 돌봄의 고통이 더 이상 ‘개인적 시련’으로 가려져서는 안 된다는 시대의 문제의식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엉엉엉 나 어떡해 나 무서워/멀쩡한 사람은 못 견디니까요“(「쎄로켈」)라는 절규는 간병 현장에서의 절망과 두려움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원금을 다 갚은 빛의/이자를//영원히 지불하고 있는 것 같은/기분이 드는 것“(「효도」)이라는 구절 역시 ‘효도’와 ‘간병’이라는 이름 아래 세습되는 돌봄의 굴레를 간파한다. 『엄마 손을 잡고 그 골목에 서 있네』는 돌봄의 짐을 짊어진 이들이 느끼는 죄책감과 무력감의 정체를 직시하면서 인간의 유한함을 인정하는 태도 속에서 치유와 회복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죄책감과 인간적 한계: 슬픔을 넘어선 용서와 위로 양애경의 시는 사랑과 헌신으로 시작해 죄책감으로 이어지는 돌봄의 과정을 세밀하게 그린다. 시인은 ”내가 내 손으로 엄마를 요양원에 데려가/문을 쾅 닫고/혼자 돌아오다니!“(「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라고 쓰며 극한의 죄책감을 토로하고 어머니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시간을 견딘다. ”엄마 없이“(「긴 병」) 행복해져도 되는지 스스로 질문한 끝에 ”엄마는 마음에 묻고/나는 행복하게 살아야지“(「일곱 달하고 열하루째」)라 다짐하며 시인은 용서의 언어에 도달한다. ”‘사랑해요’보다/백만 배 무거운 말//엄마 집에 가자“(「면회 2」)라는 구절은 돌봄의 무게와 인간적 한계를 함께 보여 주며, 슬픔을 받아들이는 용서가 곧 위로의 시작임을 말한다. 고통을 넘어선 회복: 돌봄 이후의 삶을 재건하다 『엄마 손을 잡고 그 골목에 서 있네』에는 고통을 지나온 이가 다시 자신으로 서는 순간이 담겨 있다. 시인은 ”탈피하여 나비가 되어/훨훨 날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허름하긴 하지요」)는 자신을 발견하며 상실 속에서도 삶을 향한 의지를 되찾는다. ”다음 생엔 제 딸로 태어나세요/다 못해 드린 것들을 해 드리며 살게요“라는 시인의 고백에서 볼 수 있듯 갚지 못한 마음을 희망으로 바꾼다. ”나는 시인/어차피 사람은 철저하게 혼자란 걸 아는 영혼“(「왜 나는 트로트를 좋아하지 않을까」)이라는 구절은 간병인과 딸의 정체성을 넘어 다시 ‘시인’으로 서는 선언이자, 스스로의 존재를 회복하는 문장이다. 4부에 등장하는 ”평온한 날이다/환자도 없고/나도 안 아프다/행복하기까지 하다“(「평온한 날」)라는 시구는 긴 돌봄의 터널을 통과한 뒤 도달한 평온과 자유를 보여 준다. 『엄마 손을 잡고 그 골목에 서 있네』의 시구들은 돌봄과 상실의 경험을 지나온 모든 이들에게 조용하지만 단단한 위로를 남길 것이다.
9791175010154

제주어 마음사전 2

현택훈  | 걷는사람
14,400원  | 20251009  | 9791175010154
사라져 가는 말 속에, 여전히 살아 있는 제주의 얼굴들 현택훈 에세이 『제주어 마음사전2』 출간 “너미(너무) 펼치지 말앙 오므령 줴멍 헙서(오므리고 쥐면서 하세요).” 제주어 속에 스민 삶과 기억 제주 바다처럼 깊고, 감귤처럼 노란 언어의 빛을 되살리다 사라져 가는 언어는 곧 사라져 가는 삶의 기억이다. 걷는사람 에세이 29번째 도서로 현택훈 시인의 『제주어 마음사전2』가 출간되었다. 언어가 단순한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곧 ‘살아 있는 제주’라는 사실을 증언하는 책이다. 2019년에 출간된 『제주어 마음사전』의 두 번째 책으로,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제주어를 온몸으로 흡수해 온 시인 현택훈은 이번 책에서 다시 한번 제주어를 통해 기억과 삶, 자연과 역사를 불러낸다. 그는 작가의 말을 통해 “1권에 실은 제주어 낱말이 예순 개 남짓이다. 제주어는 아주 많으니까 이왕에 사전 형식을 취했으니 2, 3, 4, 5……. 꾸준히 내 보면 어떨까”라는 고백을 전한다. 단순한 후속편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제주어를 미래를 향해 이어가려는 시인의 의지다. 제주어는 지역 방언을 넘어, 곧 한 세대의 삶과 정신을 고스란히 담은 언어이기 때문이다. 사전의 형식을 빌려 쓰였지만, 사실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시이고, 한 편의 이야기다. 제주어 낱말 하나하나에 깃든 사연을 좇다 보면 제주의 마을과 들판, 바람과 파도, 그리고 그 속에서 살고 떠나간 이들의 얼굴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언어와 삶은 서로의 거울처럼 이어져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번 책에 담긴 낱말들은 단순히 뜻풀이로 끝나지 않는다. 시인의 개인적인 경험, 어린 시절의 기억, 제주의 풍경과 사람들, 그리고 4·3의 아픔까지 제주어와 겹쳐 살아난다. “꿩코”라는 단어에서는 어린 시절 형들과 함께 꿩을 잡으려다 헛걸음을 하던 장면이 떠오르고, “아이모른눈”은 눈이 내린 마당에 찍힌 첫 발자국을 가리키지만, 동시에 아이처럼 새로운 세상을 딛는 순간을 의미한다. 단어 하나가 곧 삶의 은유가 된다. 제주의 자연과 어린 시절의 체험은 제주어라는 매개를 통해 다채롭게 복원된다. 무엇보다도 ‘제주어는 곧 제주 사람들의 역사이자 삶의 기억’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4·3 당시의 비극적 장소와 잃어버린 마을을 노래하는 시편들, 해녀와 농부, 아이와 노인들의 언어 속에서 제주의 지난 세월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그 땅을 살아 낸 사람들의 발자취라는 점을 시인은 제주어로 증명한다. “살암시민 살아진다.” 제주 사람들이 자주 쓰는 이 말은 『제주어 마음사전2』 곳곳에서 되살아난다. “말장시(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오몽헌 사름(몸을 움직여 일하는 사람)”을 더 높이 치는 제주인의 가치관은 오늘날에도 울림을 준다. 힘들어도 부지런히 움직이고 서로 돕다 보면 살아진다는 믿음. 시인은 제주어 속에 이런 지혜가 숨어 있다고 말한다. 언어는 단지 낱말의 의미로 그치지 않고, 그 공동체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왔는지를 보여 주는 생활 철학이 된다. 현택훈은 말한다. “제주어 사전을 펼쳐 낱말을 보다 보면 기억이 떠오른다. 또 아주 생소한 낱말을 만나면 그 낱말을 종그는(좇아가는) 과정이 행복하다. 시인은 언어 탐구자이기에 내 몸, 내 마음 어느 한 부분에 전해 오는 제주의 옛이야기를 할 때야말로 언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제주어 마음사전2』는 그래서 단순히 언어 기록집이 아니다. 한 시인이 평생 몸에 밴 언어로 삶과 사람, 자연과 죽음을 사유하는 제주의 문화적 지도이며, 동시에 사라져가는 언어를 후대에 전하려는 뜨거운 기록이다. 그는 “앞으로도 먼물질을 나가는 마음으로 제주 바당에서 제주어를 캘 작정이다.”라고 말한다. 해녀들이 물속 깊이 들어가 전복과 소라를 캐오듯, 그는 언어의 심연으로 들어가 제주의 옛말을 캐내고, 그것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다. 언어의 힘, 언어가 지켜 낸 삶의 무늬를 확인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단단하고 따뜻한 사전이 될 것이다.
9791193412954

그늘흔

김성백  | 걷는사람
10,800원  | 20250609  | 9791193412954
걷는사람 시인선 125 김성백 시집 『그늘흔』 출간 “나는 아직도 그늘 속에서 유영하던 밤들을 살고 있다.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그림자들의 얼굴을 찾기 위해.” 스스로를 겨누는 언어의 윤리 존재하지 않는 얼굴을 위한 애도의 시 김성백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그늘흔』이 걷는사람 시인선 125번째로 출간되었다. “그늘 속에서 유영하던 밤들”(「시인의 말」)을 지나 비로소 내보이는 이 시집은, 어둠과 침묵의 시간을 견디며 ‘그림자뿐인 생’을 살아온 존재들의 언어 없는 고통을 비로소 ‘시’로 호명하는 작품이다. 김대현 문학평론가의 해설이 말하듯, 이 시집은 “자본에 내재된 구조적 모순과 이에 꾸준히 저항해온 이른바 노동시들의 계보와 친연성을 가지”면서도, 그것을 “내부에서 교란하는 낯섦”으로 전혀 새로운 정서적 국면을 연다. 『그늘흔』은 제목 그대로, 그늘에 남은 흔적이자 흔적에 머무는 그늘의 시학을 펼쳐 보인다. 여기서 ‘그늘’은 단순히 빛이 닿지 않는 곳이 아니다. 그것은 제도와 권력의 시야로부터 배제된, 사회가 관리하지 않는 존재들의 자리이다. 말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애초에 말해지지 않도록 설계된 비가시의 장소. 시인은 그 침묵의 장소를 언어로 옮긴다. 단정하거나 유려하지 않은, 뾰족하고 무거운 문장으로, 오히려 그늘의 윤리를 지키는 말들로, 김성백은 말한다. “다친 글자들이 서로의 허리와 팔다리를 그러쥐고 안간힘으로 폐허를 전하려”(「사량 思量」). 그의 시는 말해지지 않은 존재들의 고통을 다시 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던 그 침묵 자체를 끌어안는 언어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이 시집에서 ‘그늘’과 ‘그림자’는 반복적으로 소환되는 이미지이다. “우리의 삶을 훼손하고 있는 자본의 지배와 그에 수반하는 비참한 노동의 현실”(김대현, 해설)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도, 김성백의 시는 단순한 이분법에 갇히지 않는다. 그는 자본과 권력이 구축한 ‘말해지지 않는’ 존재의 조건, 곧 제도적 언어로 환원되지 않는 ‘얼굴 없는 이들’을 시의 감각으로 복원한다. “목이 부러진 스패너”, “고장 난 작업일지”, “그려진 비상 버튼”(「살고 싶은 아이」)은 단지 장치의 고장이 아니라 구조의 고발이다. 그렇기에 시집의 여러 시편은 사회적 약자, 특히 노동 현장에서 사라져 간 이들의 존재를 담담하고 절제된 언어로 직시한다. 「보기 중에 없음」에서 시인은 말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보기 중에 없어요”(「보기 중에 없음」). 이 세계는 정답지를 감추고, 해설 없는 문제만을 내던진다. 그 물음 앞에서 김성백은 ‘대답 없는 말’이 아닌 ‘묻는 말’로서의 시를 선택한다. 질문을 멈추지 않는 시인의 태도는 “그늘 속에서 유영하던 밤들”(「시인의 말」)의 기록을 가능케 한다. 김성백의 시는 그늘에 구획된 존재의 “오븐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던 많은 밤들”(「빵 나오는 시간」)에 주목하며, 하루의 가장 일상적인 장면들 속에 숨어 있는 생존의 최전선으로 시선을 침투시킨다. 「빵 나오는 시간」은 단순한 아침 풍경이 아니라, 온몸을 던져 구워낸 노동의 리듬이다. “여인이 방을 나오는 시간”은 오븐 앞의 시간으로 전환되고, 얼마간 생계를 견디는 온도로 철저하게 맞춰질 것이다. 그러한 여인의 마지막 얼굴도 계산대 옆에 남겨 두고서 머지않아 방을 떠나겠지만, 여인이 사라져도 빵은 제시간이 돌아오면 여지없이 나올 것임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우리가 뿌리내린 토양은 “식욕들이 줄을 서는 벌건 대낮” 아래에서 영원히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잉여숨」은 2023년 7월, 호우피해 실종자 수색작전 중 숨진 故 채수근 상병을 추모하며 쓰인 작품으로, 개인의 비극이 어떻게 공동체의 윤리적 과제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장화가 떠올랐다”는 첫 구절은 실종과 부재의 현실을 직면하게 하며, 이어 폭력적 제도, 감정이 배제된 무력한 구조로서의 물을 상징하며, 구조되지 못한 존재를 향한 시스템의 죄의식을 암시한다. 시인은 “손과 발을 잘라내도 손등과 발바닥이 가려운/둥근 죄”라는 구절로 육체의 소멸 이후에도 남는 감각과 고통, 그리고 그것이 되풀이되는 폭력의 구조를 형상화하며, 감정에 함몰되지 않은 채 상실을 응시한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인 “물에 녹았던 아이는 다시 아이로 돌아갈 수 없다”는 선언은 죽음을 목격한 세계 전체가 더 이상 예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음을 가리킨다. 그러나 시는 이 지점에서 “방향”을 얻으며, 비극을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너머로 나아가야 할 윤리적 행보를 시작한다. 마지막 구절 “세상의 모든 물은 아이가 녹은 물이다”는 고통의 기억이 개인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의 기억으로 재구성되는 과정을 면밀하게 보여준다. 김성백은 이 시를 통해 죽음 이후에도 지속되는 존재의 감각, 그리고 그 감각을 감당해야 할 공동체의 윤리를 환기시키며, 애도라는 말로는 부족한 문학의 윤리적 목소리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고립계」에서는 이와 같은 종류의 죽음과 장례를 통해 잊힌 존재들의 존엄에 대한 사유를 가능케 한다. ‘독수리 한 마리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멀리서 이승을 더듬거렸다’는 시의 문장은, 이 시를 관통하는 윤리의 출발점이다. 이는 “업을 이어받은 소년은 아비의 몸을 조각조각 잘라 독수리 무리에 던져 주었다 원래 저들 것인 양”이라는 시적 순간을 포착함으로써, 단순한 시적 상징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으로 제거된 자, 구조화되지 못한 슬픔, 의례의 무력함을 드러낸다. 죽음이 개인의 소멸이 아니라 집단의 무관심과 무례 속에서 지속되는 고립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김성백은 아주 조용하고 차가운 언어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그늘흔』 시집의 정서적 축과도 닿아 있다. 애도되지 못한 얼굴들을 기억하고, 잊힌 자들의 흔적을 언어로 복원하는 일. 김성백은 ‘말해지지 않았던 존재들’을 고립의 영역에서 끌어올려 ‘기억의 윤리’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김성백의 시는 “한 번 더 태울까요/그대로 박제라도 할까요”(「일인용」)라며 사라진 존재들의 육체가 아닌, 그 이름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묻는다. 기억이란 단순한 회고가 아닌, 지금 이 순간에도 반복되는 억압의 구조를 인식하고 말해내는 실천으로 확장해 나간다. 이에 시인은 “이 세계에 서명하지 않는”(「끝과 미안」) 방식으로 삶의 가장 어두운 자리에서 언어를 불러낸다. “심장보다 더 뜨거운 언어”(「손잡이」)를 통해서 말이다. 지금, 우리가 시를 읽는 일은 곧 얼굴을 찾아주는 일이다. 김성백의 『그늘흔』은 그렇게 지워진 얼굴들 곁에서, 침묵을 잃지 않는 언어로, “흐릿한 기척을 부여잡고”(「시인의 말」) 끝내 “그 손을 누가 좀 잡아 줬으면 하”는 마음을 조용히, 그러나 끝내 포기하지 않고 건네는 시집이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한 순간들. 그런 순간에도 말이 남아야 한다면, 그 말은 아마 이런 시였을 것이다.
9791175010116

빗물 그 바아압

권일혁  | 걷는사람
10,800원  | 20250922  | 9791175010116
걷는사람 테마 시선 15 권일혁 『빗물 그 바아압』 출간 30여 년간의 노숙 생활, 흉터와 굶주림 속에서 터져 나온 삶 그 자체의 언어 도서출판 걷는사람의 테마 시선 시리즈로 권일혁 시집 『빗물 그 바아압』이 출간되었다. 이 시집은 1952년 부산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중퇴하고, 30여 년 동안 거리와 쪽방촌을 떠돌며 노숙인으로 살아온 시인의 삶에서 길어 올린 언어다. 서울역 등지를 거점 삼아 방황하던 시인은 성프란시스대학의 노숙인 인문학 과정을 통해 시를 만나고, 수천 편에 달하는 습작을 쏟아내며 마침내 첫 시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빗물 그 바아압』이라는 제목은 시인의 발음 그대로 옮겨 쓴 말이다. ‘밥’이라는 단어 안에 살아가는 사람의 체온과 의지를 담았고, 시인은 그것을 그대로 발음하고, 그대로 적었다. 이 시집에는 문법적으로 매끄럽지 않은 표현들도 날것 그대로 실려 있다. 고쳐 쓰지 않은 이유는 명확하다. 그가 쓴 시는 교정의 대상이 아니라, 그의 삶의 언어 자체였기 때문이다. “걸레가 되어 간다/(중략)/찬란한 걸레가 될 때까지”(「걸레」)라고 노래하는 그의 시는 고통을 단순한 비탄으로 흘려보내지 않는다. 삶의 밑바닥에서 길어 올린 언어는 쓰라리면서도 빛나고, 절망을 통과했기에 더욱 강렬하다. 「빗물 그 바아압」에서 그는 배식 줄에 서서 “빗물 반 음식 반 그냥 부어 넣는 것”을 기록하면서도, 그 속에서 여전히 살아남아야 하는 생명의 본능을, 그리고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보여준다. 이 책은 총 5부 80여 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역」, 「쪽방촌 사람들」, 「노숙자」 같은 작품들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담는다. 그러나 동시에 「걸레」, 「밥처럼 살자」, 「꽃의 질문」과 같은 작품들은 고통의 자리를 넘어서는 인간적 존엄을 길어 올린다. “아프다는 것, 간절한 필요를 배우는 시간”(「아프다는 것」)이라 적은 구절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시는 고통조차 배움의 자리로 전환한다. 권일혁의 시가 특별한 것은 그 언어가 철저히 현장의 언어라는 점이다. 그의 시는 거창한 수사가 없다. 문학적 기법보다는 말의 리듬과 감정의 온도가 먼저 온다. 그는 누군가를 대변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몸으로 겪은 굶주림, 외로움, 차별, 절망을 그대로 꺼내놓는다. 하지만 그 언어는 ‘증언’에 머물지 않고, 어느 순간 노래로 치환된다. 『빗물 그 바아압』은 기록과 시, 현실과 상징,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현장이며, 동시에 경계 밖의 삶이 문학 안으로 들어오는 사건이다. 『빗물 그 바아압』은 권일혁 시인의 첫 시집이자, 그가 언어로 세워 올린 집 그 자체다. 누군가는 고정된 주소와 우편함을 집이라 부르겠지만, 이 시집은 언어로 지은 집이며, 누구든 머물 수 있는 집이다. 시인은 말한다. “성곽이 필요 없는 모두의 평화의 궁전을 짓자”(「평화의 궁전」)고. 더 늦기 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시집을 만나기를 바란다. 『빗물 그 바아압』은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이 도시의 뒷면을 고스란히 담아낸 귀중한 기록이자, 우리 문학이 더 많은 목소리를 담을 수 있다는 가능성의 증거다. 30여 년간 경계 밖에서 살아온 이의 기록이자, 문학을 통해 삶의 존엄을 다시 확인하는 사건이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했던 삶이 이제 한국 문학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이며, 동시에 우리가 외면해온 사회적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는 목소리다.
9791175010000

밤이 고요한 것은

홍명진  | 걷는사람
14,400원  | 20250730  | 9791175010000
고요히 소멸하며 타자를 감각하는 존재들, 응시의 윤리로 직조된 여덟 개의 이야기 “그녀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조금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홍명진 작가의 소설집 『밤이 고요한 것은』이 출간되었다. 이번 작품집은 우리가 익히 아는 목소리가 아닌, 잘 들리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감각에 천착한다. 작가는 이질적이거나 주변부에 있는 존재들을 향해 다가가고, 그들이 머무는 공간에 자신을 조용히 놓는다. 이 소설집은 그렇게 말 많은 서사가 아닌, 들리지 않는 감각을 감지하고자 하는 문학적 태도에서 시작된다. 표제작 「밤이 고요한 것은」은 이러한 태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밤이 고요한 것은」은 돌발성난청을 앓는 화자가 이웃의 돌연한 죽음을 마주하며 세계의 불안을 감각하는 이야기를 통해, 일상의 균열과 침묵의 진동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돌발성난청으로 인해 감각의 단절을 겪는 주인공은 공공도서관에서 단기 계약직으로 일하며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삶은 점점 예기치 않은 사건들로 흔들리는데, 다세대주택 위층에 사는 분홍 여사가 사라졌음을 인지하면서 화자는 세상의 고요 속에 숨어 있는 불안을 감지하게 된다. 밤이 고요한 것은 어쩌면 들리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도 많은 신호가 겹쳐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세계가 소음이 아닌 침묵의 밀도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예민하게 환기시킨다. 이러한 태도는 소설집 전반을 관통한다. “답례 없는 순수 증여”로 존재를 구성하는 인물들, 삶의 가장자리에 머물며 끝내 중심으로 나아가지 않는 인물들, 연약함을 껴안고 스스로를 비워가는 인물들이 각 작품 속에 조용히 놓여 있다. 수록작 「장귀자 아카이빙」은 특히 이 소설집의 핵심 문제의식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주인공 기란이 ‘장귀자’의 생애를 기록하며 타자의 삶을 조명하는 아카이빙 서사로, 사라져가는 존재의 흔적을 담담하게 복원해 낸다. 작가는 이를 ‘말하지 않고, 중심에 서지 않으며, 타자의 삶을 조용히 감각하는 태도’로 표현한다. 존재를 드러내기보다 사라지는 쪽에 가까운 이들을 향한 시선이 머물며, 다만 타자의 몫을 감각하는 자의 윤리를 정초한다. 이 외에도 소설집에는 다양한 삶의 변두리에서 고요히 존재를 감당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마지막 산책」은 병든 아내를 홀로 간병하는 노년 남성의 고독한 일상을 그린다.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을 스스로 끊는 그의 선택은, 존엄을 지키기 위한 조용한 결단으로 그려진다. 「모자」는 과거 인연의 부고 소식을 듣고도 집을 나서지 못하는 ‘나’의 정서를 다룬다. 고립된 삶의 무게로 나와 타자 간의 관계를 응시한다. 「미조」는 과거 동료 ‘미조’의 죽음을 상기하며, 공동체의 상흔과 죄의식이 시간의 틈에서 되살아난다. 「그들의 내력」은 조카의 죽음을 계기로 오랜 침묵과 갈등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는 이야기다. 장례식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눌러두었던 가족 간의 감정들을 마주하게 되며, 각자의 내밀한 내력이 서서히 드러난다. 「마술이 필요한 순간」은 중년 여성 화자가 연극을 시작한 딸과의 교감을 통해 삶을 돌아보는 서사다. 세대 간의 소통과 재생의 가능성을 따뜻하게 포착한다. 「불면」은 갱년기의 불면과 감각 과민 속에서 고립감을 견디던 주인공이 대낮에 오작동으로 울린 화재경보음을 계기로 불안을 선명히 감각하고 일상의 위태로움과 마주하게 되는 순간을 그린다. 『밤이 고요한 것은』은 드러나는 이야기보다 드러나지 않는 감각에, 중심이 되는 인물보다는 중심을 비껴 선 존재들에 집중한다. 이 소설집에서 말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말의 여백, 침묵의 결, 그리고 사라져가는 존재들을 향한 조용한 감각이다. 고요히 밤을 견디는 사람들, 끝내 고요 속으로 사라지는 존재들, 하지만 그들의 몫을 기억하고 기록하려는 조심스러운 시선. 홍명진 작가는 말없이 남겨지는 것들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단단하면서도 조용한 문장으로 응답하고 있다.
9791175010093

아득하게 멀고 넓어서 끝이 없는

양기창  | 걷는사람
10,800원  | 20250919  | 9791175010093
걷는사람 시인선 129 양기창 시집 『아득하게 멀고 넓어서 끝이 없는』 출간 고통은 가두어도 사라지지 않고, 언어는 그 안에서 더욱 또렷하게 솟아난다 “세상은 초승달 같아서 보이는 만큼이 전부가 아니었는데” 양기창 시인의 시집 『아득하게 멀고 넓어서 끝이 없는』이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감된 기간에 집필된 옥중 시편들을 중심으로, 시인이 걸어온 삶과 사유의 궤적을 집약한다. 청년 시절 광주에서 문학을 시작해 노동 현장으로 뛰어들었던 그는, 감옥의 좁은 쪽창을 통해 오히려 더 넓은 세계를 향한 시선을 열어젖혔다. “감옥에 갔더니 책이 잘 읽혀라우. 시를 쓰려고 안 해도 저 혼자 막 나와부러요.”(「발문 」)라는 고백처럼, 이번 시집은 구호와 이념을 넘어선 내밀한 언어의 결실이다. 총 3부로 구성된 시집은 옥중에서 견딘 일상의 기록, 자화상 연작을 통한 고독한 성찰, 그리고 고향과 자연 풍경 속에서 되살아난 공동체적 감각으로 이어진다. “도저히 측정되지 않는/설날 아침의 n 헤르츠”(「다시 이명」)라는 구절에서처럼, 시인은 신체와 감각을 통해 시대와 사회가 남긴 상흔을 기록한다. “물앵두꽃 터지듯이는 아니겠지만”(「춘분 지나」)은 고통과 희망이 교차하는 순간을 압축하고, 「자화상6」, 「자화상9」에서는 감옥의 고독을 응시하면서 체제 바깥의 삶을 새로이 상상하려는 태도가 드러난다. 무엇보다 이번 시집은 ‘노동’과 ‘영성’을 동시에 품는다. 「나의 살던 고향은」, 「물푸레나무」 같은 작품은 어린 시절 광주의 풍경과 가족의 기억, 자연의 생명성을 통해 ‘대지적 생명’과 ‘공동체적 영혼’을 되살려 낸다. 노동자의 시선으로 시작된 언어가 인간 전체의 감정과 사유로 확장되는 지점이 이 시집의 특징이다. 김형수 시인은 발문에서 “양기창의 언어들은 근대적 사유의 산물인 ‘데생’이 아니라 ‘마음’을 포착한다”라고 평하며, 이번 시집을 “노동자 시인의 우정 어린 저항”으로 정의한다. 『아득하게 멀고 넓어서 끝이 없는』은 시대적 맥락을 선명히 드러내면서도 단순한 기록에 머물지 않는다. 감옥과 노동의 풍경은 시인의 손을 거쳐 보편적 인간의 시간으로 변모한다. 독자는 그 속에서 억압과 절망을 뚫고 솟아오르는 언어의 불씨를 만나게 된다. 날카로운 고발 대신 담백한 진술과 절제된 묘사로 시적 힘을 일구어 내며, 오히려 그 담백함이 작품의 진정성을 더욱 깊게 각인시킨다. 양기창의 시는 직접적인 구호를 넘어선다. 감옥과 노동 현장, 고향과 자연을 통해 세계를 다시 바라보는 ‘마음의 언어’를 구축하며, 고통을 재현하기보다 고요하게 견딘다. 때로는 기도처럼, 때로는 고백처럼 다가오는 이 시집은 시대의 억압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언어의 힘을 보여 주는 동시에, 노동과 삶, 인간과 자연을 잇는 새로운 시적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9791175010062

사막여우가 우는 저녁

초(정솔)  | 걷는사람
10,800원  | 20250912  | 9791175010062
사막여우의 울음이 멎은 자리, 다정한 생의 기척이 피어난다 “사막을 한 삽씩 퍼 올리며 모래 먼지를 만든다 그렇게 나를 평정해 가는 사막이 눈앞에 펼쳐진다” 정솔 시인의 시집 『사막여우가 우는 저녁』이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은 거대한 힘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에, 시가 어디에 발을 디뎌야 하는지를 다시 묻는다. 패권의 언어와 독단적인 시선이 만연한 현실 속에서 시인은 오히려 작은 존재와 사소한 사물에 눈을 돌리며, 그 안에서 다정한 관계와 새로운 깨달음을 찾아낸다. 해설을 쓴 유종인 시인은 정솔의 시를 두고 “자아에 갇히지 않고 자기 응시의 정성스러움으로 나아가려는 용기”라고 말한다. 그의 시는 자기중심적인 울타리에서 벗어나 곤충, 식물, 사물 같은 타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자벌레」에서 작은 벌레에게 인품을 평가받는 화자의 모습은 인간이 더 이상 우월한 위치에 서 있을 수 없음을 보여 주며, 「수작」에서 땅콩 세 알이 각기 다른 길을 가는 장면은 생명이 서로의 선택과 만남 속에서 이어지고 있음을 일깨운다. 정솔의 시선은 거대하고 특별한 것에 머무르지 않고, 작고 평범한 존재들의 움직임에서 세계의 진실을 길어 올린다. 이 시집의 또 다른 힘은 일상의 사물과 풍경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데 있다. 버려진 종이컵과 꽃잎을 마주한 「공즉시색 색즉시공」에서 시인은 “입술은 색이고 컵은 공이다”라는 직관을 끌어내며, 고정된 관념을 유연하게 풀어낸다. 덧없는 시간을 사고파는 「시간 마켓」에서는 “갓 구운 빵 냄새, 주말여행, 파도 소리, 자전거 하이킹” 같은 순간들이 새로운 삶의 구성 요소가 되어, 시간조차도 함께 나누고 다시 살아낼 수 있는 대상으로 바뀐다. 이렇게 사소한 사물과 장면 속에서 시인은 삶을 새롭게 조립할 수 있는 힘을 발견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도 정솔의 시는 멈추지 않는다. 「소망」은 죽음을 앞둔 어머니와 아들의 대화를 통해 애틋한 어스름의 시간을 그려내고, 「순수의 기척」에서는 신생아의 웃음을 바라보며 “일생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웃고 싶은데”라는 고백을 들려준다. 웃음을 되찾고자 하는 이 소망은 삶의 무게를 견디는 근원적인 힘으로 이어진다. 시인은 무거운 주제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 속에서 다정한 회복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독자와 나누려 한다. 동시에 그는 오늘의 사회와 생태를 응시한다. 「포노 사피엔스」에서는 스마트폰과 배달 문화에 길든 인간형을 새로운 이름으로 불러내며, 편리함 뒤에 숨어 있는 고립과 중독을 드러낸다. 「손」에서는 곶자왈의 덩굴을 가져와 돌보려 하지만 끝내 시들어버리는 순간을 기록하며, 인간의 욕망이 자연과 맺는 불안한 관계를 예리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시집의 「신성리 갈대숲」은 흔들림을 두려움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힘으로 바꾸어내며, 깨어 있는 존재의 태도를 전한다. 『사막여우가 우는 저녁』은 이처럼 작은 곤충과 씨앗, 종이컵과 웃음, 갈대숲과 덩굴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눈길이 닿는 모든 것들을 새로운 빛으로 되살려낸다. 거대한 패권의 논리를 거부하고, 미세하고 사소한 것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우리에게 잊고 있던 감각을 다시 불러낸다. 조용하지만 단단한 울림 속에서, 정솔의 시는 독자에게 서로를 바라보고 함께 살아갈 힘을 건네며, 일상의 풍경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9791175010055

고르구드 아버지의 영웅서사시 (투르크계 오구즈 부족의 이야기)

유수진 외 옮김, 방민호 감수  | 걷는사람
14,400원  | 20250829  | 9791175010055
고대 유라시아의 영웅서사시, 『고르구드 아버지의 영웅서사시』 한국어 첫 출간 한국과 아제르바이잔을 잇는 문화의 다리 용기와 우정, 공동체의 지혜가 오늘의 독자에게 되살아나다 아제르바이잔을 대표하는 고전 서사시 『키타비-데데 고르구드』가 『고르구드 아버지의 영웅서사시』라는 제목으로 한국어판 출간의 결실을 맺었다. 이번 번역은 유수진, 마심리 레일라 두 번역가가 맡고,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방민호 교수가 감수하여 완성되었다. 이는 아제르바이잔 판본의 최신 연구 성과를 반영한 최초의 한국어 번역본이라는 점에서 문학·문화 교류사적 의의가 크다. 『고르구드 아버지의 영웅서사시』는 투르크계 오구즈족 사이에서 구전으로 전승되다가 문자로 정착된 작품이다. 총 열두 개의 이야기 가운데 이번 한국어판에는 여섯 편이 실렸다. 현자 고르구드 아버지를 중심으로 베이래크, 우루즈, 바사트, 가잔 칸 등 영웅들의 모험과 시련이 펼쳐지며, 용기·우정·정의·공동체적 연대를 노래한다. 아제르바이잔 국립 과학 아카데미 이사 하비브바일리 회장은 축사에서 이번 출간을 “한-아제르바이잔 문학·문화 교류의 새로운 장”이라 평하며, 이 책이 국경을 넘어 두 나라를 잇는 다리가 되기를 기대했다. 공동 번역자 유수진 작가는 이번 작업을 “초원을 달리며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모험”에 비유했다. 그는 특히 「바사트가 외눈박이 테패괴쥐를 물리친 이야기」를 언급하며, “사건의 배경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서사 방식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유수진 작가는 “세심한 고민과 작은 용기가 모여 역사가 되고 시가 된다”는 메시지를 한국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함께 번역한 레일라 박사는 어린 독자들에게 특별히 따뜻한 당부를 전한다. “영웅은 초능력을 가진 특별한 존재만이 아니라, 용기와 사랑으로 세상을 바꾸는 모든 사람”이라며, 『고르구드 아버지의 영웅서사시』가 어린이와 청소년 독자들에게 꿈과 도전의 힘을 북돋워 주기를 바랐다. 방민호 교수는 감수의 말에서 “사랑과 이별, 싸움과 용서, 떠나고 돌아오는 드라마틱한 이야기 속에서 한국인과 아제르바이잔인의 마음이 하나로 만나는 연못을 발견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이 이야기들이 “더 드넓고, 모험에 차 있으며, 리드미컬한 노래를 품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초원을 잃어버린 우리가 지금 꼭 읽어야 할 이유”를 독자들에게 전한다. 이번 번역은 아제르바이잔 국립과학아카데미 바디르칸 아흐마도브 교수, 바쿠 국립대학교 와기프 술탄리 교수의 조언과 자료 제공 덕분에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또한 아제르바이잔 디아스포라 재단의 지속적 후원이 책의 출간을 가능하게 했다. 『고르구드 아버지의 영웅서사시』는 단순히 외국 고전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이는 고대 민족의 집단적 기억이자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오늘날 한국 독자들에게도 깊은 감동과 지혜를 전한다. 용기와 정의, 공동체 정신을 담은 이 서사시는 어린이에서 성인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삶의 용기를 북돋우는 거울이 될 것이다. 이번 한국어판 출간은 한·아제르바이잔 문학 교류의 새로운 이정표이자, 동서양의 고대 영웅 서사가 오늘의 독자와 다시 만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뜻깊은 순간이다.
최근 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