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logo
x
바코드검색
BOOKPRICE.co.kr
책, 도서 가격비교 사이트
바코드검색

인기 검색어

실시간 검색어

검색가능 서점

도서목록 제공

  • 네이버책
  • 알라딘
  • 교보문고
"걷는"(으)로 1,035개의 도서가 검색 되었습니다.
보도지침

보도지침

오세혁  | 걷는사람
14,400원  | 20240701  | 9791193412381
도서출판 걷는사람의 세 번째 희곡집으로 오세혁 희곡작가의 『보도지침』이 출간됐다. 『보도지침』은 오세혁 작가의 두 번째 희곡집으로 「보도지침」 「지상 최후의 농담」 「괴벨스 극장」 「전선의 고향」 「분장실 청소」등 다섯 작품이 실려 있다. 이번 희곡집에 실린 작품의 특징은 상상력이 기반되는 모티프보다는 우리가 겪어 왔던 시대의 사건을 재구성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1986년 제5공화국 시절 한국일보 기자가 월간 『말』지에 정부의 보도지침을 폭로한 사건을 법정 드라마로 풀어낸 「보도지침」을 포함해 독일 나치 정권의 선전장관인 파울 요세프 괴벨스의 이야기를 담아내어 대중선동과 권력의 관계를 파헤친 정치풍자극 「괴벨스 극장」, 제주 ‘4?3사건’이 한창이던 때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처형당한 여수의 14연대 부대원들을 찍은 한 장의 사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지상 최후의 농담」등 굵직한 사건들을 재조명하며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부조리함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장편소설가 되기

장편소설가 되기

존 채플린 가드너 주니어, 레이먼드 카버  | 걷는책
14,400원  | 20180801  | 9788993818932
나는 작가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작가가 될 수 있을까? 레이먼드 카버의 스승, 존 가드너가 창작 교사 활동 20여 년의 경험을 자신이 세상을 떠나기 몇 주 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소설·글쓰기 길잡이의 고전! 이 책에서 나는 소설가의 삶이 어떠한지, 소설가가 안팎으로 경계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대체로 기대치를 어느 수준에 두는 게 적정한지, 대략 어떤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밝혀줌으로써 그들에게 합당한 안도감을 안겨주려고 노력했다. 이 책은 장편소설 쓰기를 찬양하고, 만일 당신이 진지하게 소설가가 될 마음을 먹었다면 그 길을 가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책이다. _ 존 가드너 내가 글 쓸 공간이 없어서 애 먹고 있고, 비좁은 집에서 애들과 함께 지낸다는 것을 알게 된 가드너는 내게 자기 사무실 열쇠를 주었다. 지금에 와서야 나는 그때가 전환점이었다고 느낀다. 그가 그 열쇠를 무심코 건네준 게 아니었으므로 나도 일종의 명령으로 그것을 받아들였다. …… 나는 그에게 큰 빚을 졌으며 이 짧은 글에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길은 없다. 그가 말할 수 없이 그립다. 그렇지만 그의 꾸지람과 너그러운 추임새를 받았으니 나는 최고로 운 좋은 사람이다. _ 레이먼드 카버
회복하는 가족

회복하는 가족

오에 겐자부로  | 걷는책
13,320원  | 20190201  | 9788993818956
“나의 가장 본질적인 주제는 평생에 걸쳐 장애를 지닌 아들과 가족이 어떻게 공생할까 하는 것” 실천하는 지성,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성찰한 가족과 회복의 의미 소설가로서 막 주목받기 시작할 무렵, 오에 겐자부로의 큰아들 히카리(光)가 장애를 안고 태어난다. 아이는 어려운 수술을 거쳐 간신히 목숨은 건지지만 평생 지적 장애를 벗어날 수 없는 처지가 된다. 히카리의 존재, 히카리와의 공생은 그 이후 아버지이자 소설가인 오에 겐자부로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함께 마주해야 할 운명이 된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장애를 지닌 아들, 치매에 빠진 장모와 수십 년 동안 함께 살며 깨달은 회복과 재생, 치유와 공생의 깊은 의미를 담백하면서도 유장한 문체로 묘파해 보인다.
보들레르와 고티에 (아름다움을 섬긴 두 사제)

보들레르와 고티에 (아름다움을 섬긴 두 사제)

테오필 고티에, 샤를르 보들레르  | 걷는책
14,400원  | 20200310  | 9791189716035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창했던 두 거장, 고티에와 보들레르가 상대의 삶과 작품을 말한다 귀한 줄 모르고 너무 흔하게 소비되어 닳아버린 이름들. 서로에 대한 깊은 존경과 애정이 담긴 글을 통해 만나는 두 거장은 여전히 우리 가슴을 흔드는 신선한 생명력을 내뿜는다. 이 책은 19세기 중·후반 프랑스 문단에서 시인이자 소설가, 비평가로 이름 높았던 두 거장, 테오필 고티에와 샤를 보들레르가 서로에 대해서 쓴 전기 겸 작품론을 함께 묶은 책이다. 여기에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보들레르에게 보낸 편지가 보들레르의 글 앞에 서문 격으로 들어가 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창하여 당시 문단에 파란을 일으킨 테오필 고티에,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현대 프랑스 문학사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 시집 《악의 꽃Les Fleurs du mal》(1857)의 저자 보들레르. 동시대를 살았던 이 두 사람은 10년이라는 제법 큰 나이 차가 있었는데도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깊이 존경하며 꾸준히 교유하는 친구 사이가 된다. ‘마음이 서로 통하는 친한 벗’, 지음(知音)의 경지가 무엇인지 이 책에 실린 두 편의 글이 여실히 보여준다.
닮은 건 모두 아프고 달리아꽃만 붉었다

닮은 건 모두 아프고 달리아꽃만 붉었다

권기덕  | 걷는사람
10,800원  | 20250711  | 9791193412992
“우리 사이에서 꽃은 그대로였고 우리의 절반만 각자의 빛깔로 퇴색되고 있었다” 달리아꽃의 붉은 빛깔에서 시작된 어긋난 감각, 뒤엉킨 시간의 조각들이 다시 피어난다 권기덕 시인의 시집 『닮은 건 모두 아프고 달리아꽃만 붉었다』가 걷는사람 시인선 126번째 시집으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라디오에서 외계外界의 말을 듣다가 세상을 떠난다는 너의 말은 오히려 도시의 작은 화분이 되고 싶다는 것처럼 들려”(「수목장」)라는 구절처럼, 죽음을 단순한 상징이 아닌 언어와 감각의 새로운 조율 방식으로 제시한다. 죽음은 여기서 삶의 종말이 아니라, 삶을 닮은 또 하나의 질서이자 반복되는 감각의 기입이다. 문학평론가 김익균은 이 시집을 죽음은 이번 시집 전체를 통어하는 상징의 차원으로 올라선 작품이라 평하며, 시적 반복과 어긋남, 실패한 문장이 만들어내는 언어의 리듬과 긴장에 주목한다. 삶은 이 시집에서 더 이상 본래적인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꽃 모양을 흉내”(「겨울 해변의 늪」) 내는, 흉내와 반복의 언어적 상태다. “지난 계절의 이팝나무를 보면서 죽은 사람도 사람이라 국어사전을 뒤적거렸다.”(「장마」)라는 시구처럼, 살아 있음이란 죽음의 반대가 아니라 죽음을 ‘닮은’ 상태다. 이 닮음은 정확한 재현이 아니라 어긋난 반복, 실패한 흉내이다. “순대국밥을 먹다가 네 부고를 전해 받았다. 온종일 비가 내렸다. 신을 모르면서 신인 척, 의자를 모르면서 의자인 척, 부추를 먹는다.”라는 고백에서처럼, 살아 있음은 언제나 죽음과 맞닿은 색조를 가진다. 권기덕의 문장은 종종 주어와 술어가 맞지 않고, 시간과 논리가 단절된다. “트랙 위에서 그림자가 돈다 묻은 것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심장으로 변해 간다”(「오르골」)는 풍경이 아니라 감각 그 자체의 기형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부적절한 주술관계는 오류가 아닌 의도된 파열이며, 그 틈에서 독자는 다시 말을 시작할 가능성과 마주하게 된다. 많은 시편에서 말보다 침묵이 앞선다. “잎사귀와 잎사귀를 흔들며 죽은 새를 묻어 준다 나무는 겨울이 채 오기 전에 가벼워져 어디론가 날아갔다 다시 돌아온다”(「오르골」)라는 시구는, 언어가 끝나는 자리에서 비로소 열리는 감각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시집은 말이 미치지 못하는 자리, 해석이 불가능한 경계에 머물며 독자에게 그 너머를 요청한다. 시는 이렇듯 끝내 도달하지 못한 상태를 있는 그대로 견디게 한다. “내가 걸어갈 때마다 숲길은 점점 복잡해졌고 새는 사라지고 있었네 비에 젖은 눈물과 눈물에 젖은 비가 섞여 쓴맛이 났네”(「저문 뒤에야 찾아온 사람」)라고 말하는 장면처럼, 감각기관이 기능을 멈춘 뒤에도 남아 있는 기억과 촉의 언어가 이 시집의 깊이를 만든다. 『닮은 건 모두 아프고 달리아꽃만 붉었다』는 독자에게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새 한 마리가 강물 위에 내려앉을 때 가슴을 움켜쥐던 사람은 아직 보여 줄 달이 남았을까?”(「구멍에 내리는 비는 미래를 삼킨다」)라는 장면처럼, 감정과 언어의 소멸과 반복, 그 잔여로 독자를 안내한다. 의미는 완성되지 않으며, 독자는 그 빈자리에서 의미가 머물렀던 흔적을 어루만지게 된다. 더 나아가 이 시집은 시를 읽는 일이 현실이라는 텍스트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부단히 복수화하는 생산적인 작업이라는 점을 환기시킨다. 권기덕의 시는 현실을 하나의 언어 질서에 종속시키지 않고, 어긋남과 침묵, 실패를 통해 현실을 되읽고 다시 쓰도록 독자에게 제안한다. 죽음의 이미지로 소환되는 고니는, 이 시집에서 날고 있다. 그것도 빙판 위에서 “어긋난 하늘”(「겨울 해변의 늪」)을 향해. 이것은 언뜻 모순처럼 보이지만, 바로 그 모순 속에서 이 시집은 죽음과 생, 실패와 반복, 침묵과 언어가 교차하는 지점을 형상화해 낸다. 그것은 설명을 피하고, 완성 대신 균열 속에 머무르는 방식이다. 말이 끝나는 자리에서 다시 말을 시작하는 감각, 그것이 이 시집이 독자에게 건네는 가장 조용한 목소리다.
그늘흔

그늘흔

김성백  | 걷는사람
10,800원  | 20250609  | 9791193412954
걷는사람 시인선 125 김성백 시집 『그늘흔』 출간 “나는 아직도 그늘 속에서 유영하던 밤들을 살고 있다.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그림자들의 얼굴을 찾기 위해.” 스스로를 겨누는 언어의 윤리 존재하지 않는 얼굴을 위한 애도의 시 김성백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그늘흔』이 걷는사람 시인선 125번째로 출간되었다. “그늘 속에서 유영하던 밤들”(「시인의 말」)을 지나 비로소 내보이는 이 시집은, 어둠과 침묵의 시간을 견디며 ‘그림자뿐인 생’을 살아온 존재들의 언어 없는 고통을 비로소 ‘시’로 호명하는 작품이다. 김대현 문학평론가의 해설이 말하듯, 이 시집은 “자본에 내재된 구조적 모순과 이에 꾸준히 저항해온 이른바 노동시들의 계보와 친연성을 가지”면서도, 그것을 “내부에서 교란하는 낯섦”으로 전혀 새로운 정서적 국면을 연다. 『그늘흔』은 제목 그대로, 그늘에 남은 흔적이자 흔적에 머무는 그늘의 시학을 펼쳐 보인다. 여기서 ‘그늘’은 단순히 빛이 닿지 않는 곳이 아니다. 그것은 제도와 권력의 시야로부터 배제된, 사회가 관리하지 않는 존재들의 자리이다. 말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애초에 말해지지 않도록 설계된 비가시의 장소. 시인은 그 침묵의 장소를 언어로 옮긴다. 단정하거나 유려하지 않은, 뾰족하고 무거운 문장으로, 오히려 그늘의 윤리를 지키는 말들로, 김성백은 말한다. “다친 글자들이 서로의 허리와 팔다리를 그러쥐고 안간힘으로 폐허를 전하려”(「사량 思量」). 그의 시는 말해지지 않은 존재들의 고통을 다시 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던 그 침묵 자체를 끌어안는 언어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이 시집에서 ‘그늘’과 ‘그림자’는 반복적으로 소환되는 이미지이다. “우리의 삶을 훼손하고 있는 자본의 지배와 그에 수반하는 비참한 노동의 현실”(김대현, 해설)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도, 김성백의 시는 단순한 이분법에 갇히지 않는다. 그는 자본과 권력이 구축한 ‘말해지지 않는’ 존재의 조건, 곧 제도적 언어로 환원되지 않는 ‘얼굴 없는 이들’을 시의 감각으로 복원한다. “목이 부러진 스패너”, “고장 난 작업일지”, “그려진 비상 버튼”(「살고 싶은 아이」)은 단지 장치의 고장이 아니라 구조의 고발이다. 그렇기에 시집의 여러 시편은 사회적 약자, 특히 노동 현장에서 사라져 간 이들의 존재를 담담하고 절제된 언어로 직시한다. 「보기 중에 없음」에서 시인은 말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보기 중에 없어요”(「보기 중에 없음」). 이 세계는 정답지를 감추고, 해설 없는 문제만을 내던진다. 그 물음 앞에서 김성백은 ‘대답 없는 말’이 아닌 ‘묻는 말’로서의 시를 선택한다. 질문을 멈추지 않는 시인의 태도는 “그늘 속에서 유영하던 밤들”(「시인의 말」)의 기록을 가능케 한다. 김성백의 시는 그늘에 구획된 존재의 “오븐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던 많은 밤들”(「빵 나오는 시간」)에 주목하며, 하루의 가장 일상적인 장면들 속에 숨어 있는 생존의 최전선으로 시선을 침투시킨다. 「빵 나오는 시간」은 단순한 아침 풍경이 아니라, 온몸을 던져 구워낸 노동의 리듬이다. “여인이 방을 나오는 시간”은 오븐 앞의 시간으로 전환되고, 얼마간 생계를 견디는 온도로 철저하게 맞춰질 것이다. 그러한 여인의 마지막 얼굴도 계산대 옆에 남겨 두고서 머지않아 방을 떠나겠지만, 여인이 사라져도 빵은 제시간이 돌아오면 여지없이 나올 것임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우리가 뿌리내린 토양은 “식욕들이 줄을 서는 벌건 대낮” 아래에서 영원히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잉여숨」은 2023년 7월, 호우피해 실종자 수색작전 중 숨진 故 채수근 상병을 추모하며 쓰인 작품으로, 개인의 비극이 어떻게 공동체의 윤리적 과제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장화가 떠올랐다”는 첫 구절은 실종과 부재의 현실을 직면하게 하며, 이어 폭력적 제도, 감정이 배제된 무력한 구조로서의 물을 상징하며, 구조되지 못한 존재를 향한 시스템의 죄의식을 암시한다. 시인은 “손과 발을 잘라내도 손등과 발바닥이 가려운/둥근 죄”라는 구절로 육체의 소멸 이후에도 남는 감각과 고통, 그리고 그것이 되풀이되는 폭력의 구조를 형상화하며, 감정에 함몰되지 않은 채 상실을 응시한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인 “물에 녹았던 아이는 다시 아이로 돌아갈 수 없다”는 선언은 죽음을 목격한 세계 전체가 더 이상 예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음을 가리킨다. 그러나 시는 이 지점에서 “방향”을 얻으며, 비극을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너머로 나아가야 할 윤리적 행보를 시작한다. 마지막 구절 “세상의 모든 물은 아이가 녹은 물이다”는 고통의 기억이 개인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의 기억으로 재구성되는 과정을 면밀하게 보여준다. 김성백은 이 시를 통해 죽음 이후에도 지속되는 존재의 감각, 그리고 그 감각을 감당해야 할 공동체의 윤리를 환기시키며, 애도라는 말로는 부족한 문학의 윤리적 목소리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고립계」에서는 이와 같은 종류의 죽음과 장례를 통해 잊힌 존재들의 존엄에 대한 사유를 가능케 한다. ‘독수리 한 마리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멀리서 이승을 더듬거렸다’는 시의 문장은, 이 시를 관통하는 윤리의 출발점이다. 이는 “업을 이어받은 소년은 아비의 몸을 조각조각 잘라 독수리 무리에 던져 주었다 원래 저들 것인 양”이라는 시적 순간을 포착함으로써, 단순한 시적 상징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으로 제거된 자, 구조화되지 못한 슬픔, 의례의 무력함을 드러낸다. 죽음이 개인의 소멸이 아니라 집단의 무관심과 무례 속에서 지속되는 고립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김성백은 아주 조용하고 차가운 언어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그늘흔』 시집의 정서적 축과도 닿아 있다. 애도되지 못한 얼굴들을 기억하고, 잊힌 자들의 흔적을 언어로 복원하는 일. 김성백은 ‘말해지지 않았던 존재들’을 고립의 영역에서 끌어올려 ‘기억의 윤리’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김성백의 시는 “한 번 더 태울까요/그대로 박제라도 할까요”(「일인용」)라며 사라진 존재들의 육체가 아닌, 그 이름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묻는다. 기억이란 단순한 회고가 아닌, 지금 이 순간에도 반복되는 억압의 구조를 인식하고 말해내는 실천으로 확장해 나간다. 이에 시인은 “이 세계에 서명하지 않는”(「끝과 미안」) 방식으로 삶의 가장 어두운 자리에서 언어를 불러낸다. “심장보다 더 뜨거운 언어”(「손잡이」)를 통해서 말이다. 지금, 우리가 시를 읽는 일은 곧 얼굴을 찾아주는 일이다. 김성백의 『그늘흔』은 그렇게 지워진 얼굴들 곁에서, 침묵을 잃지 않는 언어로, “흐릿한 기척을 부여잡고”(「시인의 말」) 끝내 “그 손을 누가 좀 잡아 줬으면 하”는 마음을 조용히, 그러나 끝내 포기하지 않고 건네는 시집이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한 순간들. 그런 순간에도 말이 남아야 한다면, 그 말은 아마 이런 시였을 것이다.
상수리나무 책방

상수리나무 책방

김춘기  | 걷는사람
10,800원  | 20250530  | 9791193412947
기억 저편에 남은 아버지의 헛기침, 아궁이의 연기, 둠벙배미의 풍경까지 사람과 사람 사이, 느림과 비움의 시학 김춘기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상수리나무 책방』이 걷는사람 시인선 124번째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오랜 시간 삶의 뒷면을 들여다보며 써 온 언어를 통해, 기억과 체온이 묻은 풍경들을 고요하고 단정하게 그려낸다. 이 시집에서는 우리가 오래 잊고 살았던,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풍경이 조용히 되살아난다. 이병철 시인(문학평론가)의 해설이 말하듯, 이 시집은 “시간에 풍화되어 가는 기억을 소환하고, 자본 도시의 욕망에서 비켜선 느림과 비움의 미학으로 사람을, 사람 속을, 사람과 사람 사이를 노래한다. 그렇게 유행이나 경향을 좇지 않으면서 관습화된 기성의 서정을 타파하려는 김춘기의 시는 “다른 언어”라는 고유한 방법론으로 서정의 본령을 회복하고자 한다.” 김춘기 시인은 오랜 시간, 기억의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가족과 고향의 장면들을 시로 써왔다. 그의 첫 시집에는 유년 시절의 냄새, 부모의 손길, 사소하지만 가슴 깊이 남아 있는 장면들이 마치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펼쳐진다. 「대화」에서는 인기척도 없이 들르시는 외할아버지를 위해 어머니는 “소주병을 꺼내서 제단에 술을 따르듯이 / 투박한 사기잔에 술을 가득 따르”시기도 하고 그 시간은 지나서 우리 앞에서 사라졌지만 “벽장의 소주병”은 그 시절과 함께 여전히 그대로다. 「저녁의 감촉」과 「아궁이 신발장」에서는 군불 피우는 새벽, 아버지가 신발을 아궁이에 넣어 따뜻하게 데워 주던 날들이 시 한 줄 한 줄에 고스란히 살아 숨 쉰다. 그의 시에서는 “장마에 떠내려간 작은 미나리밭”(「작은 미나리밭을 생각했다」)이 다시 우리 앞에 소환되고 “더는 우리 땅이 아니게 된 둠벙배미”(「둠벙배미전傳」)도 눈 앞에 펼쳐진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그곳’은 이미 사라졌지만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그래서 시인은 “봄비는 계속 이유를 묻지 않았고/ 하릴없이 찾아드는 통증”에 가슴이 시린 마음을 시에 담는다. 잊은 줄 알았던 풍경이 한 줄의 시에 담긴 이번 시집은 고향의 언어로 과거의 시절을 되돌아본다. 『상수리나무 책방』은 단순한 회고의 시집이 아니다. 시인은 “천년의 속도로 지나던 벌레”나 사소한 통증처럼 익숙하게 멈춰 있는 풍경 속에서, 일상을 견디는 사람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이처럼 김춘기의 시는 유행이나 경향을 따르지 않되, 누구보다도 ‘지금 여기’의 삶에 깊숙이 닿아 있는 시적 실천이다.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저 물방울이 얼마나 많은 사연을 쌓아야 / 내를 이루고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룰까” (「다른 언어를 사용하다」). 시간이 흘러도 기억은 스며든다.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천년이 지나도 / 벌레의 껍질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 (「시골 버스 정류장」)은 시골 풍경, 이것은 우리 역사 속에서 사라질지라도 기억의 한 부분으로 시의 한 장면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상수리나무 책방』은 바쁘게 살아온 나날들 속에서도 어딘가 가슴 한편에 남아 있는 ‘그 시절’의 조각들을 다시 불러낸다.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일지라도, 이 시집 속 언어는 그곳의 공기와 감촉을 우리 곁으로 데려온다. 이 책은 이제는 어른이 된 우리 모두에게, ‘다시 찾아가고 싶은 마음의 고향’이다. 인간적인 서정을 갈망하는 독자들에게, 오래 곁에 두고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정갈한 언어의 집 한 채가 되어줄 것이다.
뒤로 걷는 길

뒤로 걷는 길

황규관  | 창비
11,700원  | 20250715  | 9788936425210
“이제는 앞을 보며 뒤로 걸어야지 어둠이 되어 어둠을 사랑해야지” 절망이 뿌리 내린 곳에서도 시는 고요하고 단호하게 흐른다 전진의 언어가 고갈된 시대, 뒤로 걸으며 만드는 새로운 길 냉철한 현실 인식과 자연과 문명에 대한 깊은 성찰로 오랜 시간 흔들림 없는 시의 지층을 묵묵히 다져온 백석문학상 수상 시인 황규관의 신작 『뒤로 걷는 길』이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삶과 노동, 생의 근원적 문제를 향한 치열한 탐색으로 동시대 시단의 단단한 목소리로 자리매김한 그는 이번 시집에서도 밀도 높은 시어로 세계에 맞서는 진실한 사유와 감각을 펼쳐 보인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시들은 “개인의 실존적 체험과 공동체의 역사적 경험을 포개며”(강경석, 해설), 오늘의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자 “현실을 오직 ‘바로 보기’ 위한 투쟁이자 기도의 여정”(변홍철, 추천사)이 된다. 말의 힘을 오랫동안 믿어온 한 시인이 지금-여기에서 끊임없이 되묻고 기록해온 궤적은, 시가 지닌 고요하고도 진실된 힘을 증명한다.
남은 건 명랑한 최선

남은 건 명랑한 최선

강나윤  | 걷는사람
14,400원  | 20250519  | 9791193412930
“진실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게 이상했다.” 환상을 뒤집어쓴 허상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에도 우리에겐 아직 명랑한 최선이 남아 있다 강나윤 소설가의 첫 소설집 『남은 건 명랑한 최선』이 걷는 사람 소설 17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작가의 말에서 평온한 삶 속에서 느꼈던 불안하고 막막한 마음을 이번 소설집에서 빠짐없이 꺼내놓았다고 말한 강나윤 작가는, 경쾌한 문체와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삶의 불안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현시대의 풍속도를 재기 넘치게 그려냈다. 강나윤은 여덟 편의 이야기에서 저마다 개성 있고 다채로운 인물들을 선명히 그려내지만, 그들은 언제나 이방인처럼 겉돌며, 남다른 사고방식과 언행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이상한 눈빛을 받아 내거나 좀처럼 주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때로는 소외감을 느낄 법도 한데 꼭 그렇지도 않은 것이 그들이 결백한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온몸으로 체험하면서 꿰뚫어 본 현실은 온통 부조리하며 의뭉스러운 것투성이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여간해서 좁혀지지 않는 그들과 세상 간의 거리는 웃음과 울음 사이를 왕복하며 얼마간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지만,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독자들에게는 방심을 유발할 만큼 유쾌하며 더없이 재미있고 사랑스럽게 다가갈 것이다. 그 속엔 삶을 겹겹이 둘러싼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깊은 통찰이 곳곳에 스며 있어서, 언젠가 삶에서 분주함과 불안감을 마주할 때마다, 강나윤의 인물들이 지난한 고군분투 끝에 내린 용기와 확신에 찬 결심들이 하나둘 떠오르게 될 것이다. 표제작 「남은 건 명랑한 최선」의 화자 ‘나’는 대학생으로, 휴학 후 코딩에 전념하는 중이다. 대학 졸업 후 취업 전선에 내던져져 백수로 남을까 봐 두려워하며 닥치는 대로 자격증을 따고 있다. 취업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만큼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지만, 동시에 끝없는 불안에서 자신을 구원해 줄 무언가를 막연히 기대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 날, 컴퓨터 학원의 홍보 영상을 운명처럼 마주하고 홀린 듯이 수강 등록을 하게 된 그는, 불행이 일찌감치 대비해 놓은 새로운 사건에 간파당해 “간단히 리셋”(「남은 건 명랑한 최선」)되고 만다. 그러나 원점으로 회귀하는 상황이 역설적으로 지금까지의 실패를 딛고 앞으로 더욱 씩씩하게 살아낼 수 있도록 하는 기발하면서도 기이한 술책이 되어준다. 책의 첫 문을 여는 「방금 있었던 일」 속 ‘보람’은 아스퍼거 증후군일지도 모르는 자신의 병리적 증상을 한사코 거부하지만, 정규직 전환을 위해 결국 현실과 타협하며 끝끝내 고수하던 정체성을 내려놓고 자신만의 세계를 단단히 구축하는 이야기를 생생히 그려낸다. 「카피라이터, 김 과장」 속 ‘나’는 출근하는 직원들의 표정이 죽상일수록 회사가 잘 돌아간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곤 입꼬리를 슬쩍 올리는 더할 수 없이 세속에 물든 자본가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정작 본인 스스로는 자신의 과욕적 기질과 면모에 대한 자각이 없는 상태에 머물러 있지만, 김 과장이 말했던 ‘진정성’의 의미를 곱씹으며, 그 역시 시스템을 깊이 체화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우체국 여자」는 등단 작가이자 우체국 직원인 ‘나’는 문예 창작 교실에 다니는 학생들이 투고하는 원고를 남몰래 빼돌려 심상한 표정으로 읽고는 상습적으로 판단하는 일을 일삼는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마지막 장을 찢은 원고를 우편 봉투에 넣어 매번 다른 신문사에 응모하며 그들의 운을 시험하는 기행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네 찌찌를 찾고 싶다면 신도림역 4번 출구로 와라」에 등장하는 ‘윤’은 게임 회사에 근무하는 안정된 삶의 한가운데서 갑작스레 젖꼭지가 사라지는 일을 겪는다. ‘윤’에게 젖꼭지는 사실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남들 다 있는 젖꼭지가 없다는 건 너무하다고 느끼는 모순된 감정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결국 ‘윤’은 자신의 젖꼭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람의 연락을 받고 그를 만나기 위해 신도림역에 간다. 「오늘의 해시태그」의 ‘희재’는 사회적 가치를 수호하는 행위에 높은 가중치를 부여하며,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위한 학생회 참여부터 여성 인권 운동의 일환으로 삭발까지 감행하는 것으로 대단히 노력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를 사상적으로 감화시킨 사람들의 삶을 분석하고 해부한 끝에 그들의 위선과 허위를 기어코 들춰낸다. 「하루」는 오전엔 병원에서, 오후엔 은행에서 하릴없이 떠돌며 해가 지면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한 노인의 심경 변화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기나긴 하루가 거듭되어 완성되는 찰나같이 짧은 세월을 회고함으로써, 그가 그저 살아내기만 했던 삶도 기꺼이 인정받고 존중받을 필요가 있는 인생이었음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주인공인 ‘보람’이 정규직 전환을 위해 스스로를 아스퍼거 증후군이라고 병리화하며, 자신이 고수하던 정체성을 내려놓고 결국 밥벌이를 위한 선택으로 마음을 굳히는 이야기 「방금 있었던 일」부터,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없이 늙고 쇠약한 노인이 된 ‘나’가 기나긴 하루 끝에 자신의 죽음 이후를 맡겨야 하는 아들 내외에게 결국 화해의 손길을 내밀기로 결심하는 마음의 경과를 다루는 「하루」에 이르기까지. 강나윤의 인물들은 인생이 두서없고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때마다, 그 속에서 어김없이 자리하고 있는 정체성과 밥벌이라는 영원한 딜레마에 끊임없이 봉착한다. 그러나 우리가 인식하는 정체성이라는 개념조차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저 허상으로 가득 차 있을지 모른다는 삶의 무서운 실체를 마주하며, 그것이 동반하는 깊은 불안감과 두려움을 더욱 끌어안는 방식으로 명랑하게 돌파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환기한다. 『남은 건 명랑한 최선』은 삶을 견고하게 지지하고 지탱하고 있다고 믿었던 토대가 완전히 무너져 내린 현실을 조명하는 동시에, 앞으로 그것을 딛고 마주할 불안 너머의 아득한 세계를 환한 불빛으로 비춰줄 것이다.
물의 숨겨진 맛

물의 숨겨진 맛

최호빈  | 걷는사람
10,800원  | 20250516  | 9791193412923
걷는사람 시인선 123 최호빈 시집 『물의 숨겨진 맛』 출간 “폭우가 끝나자마자 폭염이 오면 한 방울의 세계가 완성됩니다” 컴컴한 현실의 풍경을 뜨겁게 응시할수록 제 빛을 드러내는 따뜻하고 먹먹한 물의 세계 최호빈 시인의 첫 시집 『물의 숨겨진 맛』이 걷는사람 시인선 123번째로 출간되었다.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으로 등단한 이후 13년 만에 출간하는 첫 시집이다. 수상소감에서 “세상의 전부를 이해하기 위해 모든 인간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몸에 반항하는 한 방식으로 오랜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던 최호빈 시인은 “대상과 세계를 해석하는 강한 추동력과 낮은 자의 고통을 존재의 장소에서 불러내는 동일자의 윤리를 보여준다.”는 평을 받았다. 최호빈 시인은 첫 시집 『물의 숨겨진 맛』에서 “폭우가 끝나자마자 폭염이 오”(「물의 숨겨진 맛」)는 세상에서 “한 방울의 세계”를 완성해 냄으로써, 언어라는 마중물로 푹 잠겨 있었던 깊은 침묵을 길어 올려 어딘가 기묘하고 어쩐지 따스한 시 세계를 펼쳐 보인다. 최호빈의 문장을 천천히 읽어나가다 보면, 한 방울의 세계 위로 굴절된 저마다의 삶과 시간이 찬찬히 흘러가기 시작할 것이다. 최호빈의 시집은 무엇보다 돌아감을 매개로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돋보인다. 최호빈의 시편은 현실의 한 속성인 망각의 가능성으로부터 벗어나 끝없이 반복되는 기억들을 되돌아보려고 하나, 번번이 기억을 정확히 복구하는 일에 미끄러져 과거의 기억과 무관한 시공간으로 흘러 들어가고 만다. 이처럼 자신의 기억을 과거 속에 놓아두고 잊어버리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최호빈의 시적 전략은 “변하지도 않고 그대로도 있지 않은, 그냥 무너지는”(「주소」) 현실을 어찌하지 못하고 그저 “방에 업혀 가고”(「스펀지」) 있었다고 중얼거리는 체념의 어조에서 드러난다. 눈을 크게 떠도 천장 가득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어 힘들여 잠 깰 필요가 없었다는 시적 화자는, 암흑을 오래도록 응시하고 침묵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정물처럼 가만히 누워 있을 뿐이다. 그는 마침내 “커다란 방을 날마다 잘게 부수고서야 검은 씨들은 눈을 깜박이지 않고서도, 태양이 붉어지도록 오래 바라볼 수 있었다”(「소리의 집」)고 말하며 자신을 둘러싼 미세한 상태변화를 감지해 낸다. 이는 강보원 문학평론가의 해설처럼 “소, 염소, 사슴, 기린이 뿔”(「상상의 동물」)을 가지고 있는 현실을 간단히 외면하는 것이라기보다, 현실을 구성하는 한 원리의 다른 발현으로서 “뿔을 가진 개”도 있을 수 있는 현실을 위한 기반을 구축한 것이다. 문장의 가능성과 시적 구조에 기대어 무수한 세계를 창조해 내도 “옛이야기에는 권위적인 힘이 있어서”(「팝업북」) 매일 아침 눈뜰 때마다 자신을 마치 “옛이야기 속 어딘가로 데려다 놓은” 듯한 도무지 변하지 않는 현실에 최호빈의 인물들은 슬픔에 침잠하기도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현실은 여전히 “어머니의 아버지의 어머니의 아버지의 여름처럼 소중한 순간은 쉽게 흘러가”(「다음은 뭘까」)는 데 반해, “목숨을 부지하고 식욕을 유지하려는 인간”(「퀘스트」)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서로 딴 곳을 쳐다보며 웃는 적敵들을 못 들은 척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틈」)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변하는 현실을 깊숙이 파고들고 “물결처럼 씨들이 움직이는”(「해바라기」) 면면을 파헤칠수록 그곳엔 “사람이 볼 수 없는 의지가 있”어서, 시적 화자는 자연의 의지에 따라 “거울에도 내가 있는” 세계로 건너간다. 이를 통해 모든 기억과 감정은 홀가분하게 잊힐 순 있어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끝끝내 잔상을 남긴다는 세상의 비밀을 발견한다. 이에 기대어 최호빈의 시적 화자는 “나사가 두 개 빠진 세상”(「나사의 홈」)에 절망하기보다 언어라는 나사에 주목하여 나사 두 개를 서로 조이고 조여 새로운 세계를 재조립하고 배열하는 것으로 살아 있음이라는 아득한 빈틈을 연결해 낸다. “평생 잠만 깨다 죽을 것 같아”(「QQQ」)도 계속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울음마저 피곤하게 느낄 때 내게 열리는 것”(「그늘들의 초상」)이 무엇인지 들여다볼수록, “잘 보이지 않는 것들”로부터 시적 순간이 연속적으로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묘하게 균형을 유지하려는, 책상과 옷장과 침대가 말없이 싸”우는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체험 속에서, 깜깜한 현실 위에 또 다른 세계가 제각기 겹치고 때론 한꺼번에 중첩된 끝에, 원시적이고 환상적인 세계가 새로이 만들어질 것이다.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이름을 붙여준 그때부터 우리는 서로 다른 나무에 대해 말하기 시작”(「생각의 도넛」)하고, 각자가 바라보는 풍경에 대해 “언어의 형태로 데생”(「묵시록의 기사」)한다면, 제각기 튀어 오르는 물방울이 눈앞에 부려 놓는 “살아 있는 것들이 절실하게 살아가고 있어서 아름다운”(「거북이」) 정원도 마주할 수 있을지 모른다. 설령 그곳이 건조하고 메마른 정원이더라도 괜찮다. “거짓말이 자욱한”(「비스킷을 굽다」) 감정과 감각이 “시들지 않는 꽃잎을 붉게 물들”여 줄 것이니 말이다.
초선의원

초선의원

오세혁  | 걷는사람
16,200원  | 20250510  | 9791193412916
“마침내 관객들이 극장 밖으로 나서는 순간, 극장을 넘어 광장으로 질주하는 순간, 우리의 연극은 더 이상 연극이 아니게 될 것이오.” 법과 정의, 권력과 생존, 죽음과 선택 -우리 안의 정치를 무대 위로 불러낸 다섯 개의 이야기 도서출판 걷는사람의 희곡집 시리즈 일곱 번째 작품으로, 극작가이자 연출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오세혁 작가의 희곡집 『초선의원』이 출간되었다. 『초선의원』은 표제작 「초선의원」을 비롯하여 「세자전」 「전시의 공무원」 「단명소녀 투쟁기」 「킬링 시저」까지, 총 다섯 편의 희곡을 한 권에 묶은 작품집이다. 이 다섯 편은 현대극, 음악극, 청소년극 등 다양한 무대 양식을 오가며, 시대를 넘어 공통적으로 ‘정치와 인간’이라는 테마를 탐구한다. 오세혁은 이번 희곡집에서 권력과 생존, 개인과 국가, 죽음과 삶을 주제로 시대를 넘나드는 무대를 펼쳐 보인다. 역사적 사건과 신화, 현대 정치의 장면들 속에 인간 존재의 본질을 파고드는 이 희곡들은, 가벼운 유머와 묵직한 비판, 따뜻한 연대의 가능성까지 아우르며 독자와 관객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첫 번째 작품인 「세자전」은 정 이리이리 작가의 카카오웹툰을 원작으로 한 음악극이다. 동생을 죽이고 왕이 된 군주가 죄의식과 광기 끝에 세자 경연을 열고, 다섯 명의 왕자들이 권좌를 둘러싼 비극적 경쟁을 펼친다. 권력을 향한 열망과 죄책감, 피의 역사, 형제 간의 비극이 강렬하게 교차하며, 명분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는 인간성의 균열을 집요하게 조명한다. 두 번째 작품 「전시의 공무원」은 해방 이후 전쟁을 맞이한 혼란의 시대를 배경으로, '공무원으로 살지 말라'는 부모의 웃픈 유언을 받았으나 결국 다시 공무원의 길을 걷게 된 갑돌과 갑순의 아이러니한 여정을 따라간다. 두 명의 주인공들은 서로 다른 배경에서 시작해 지도자들을 따라 피난길에 오르게 되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를 수습하며 국가와 시민 사이,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한다. 시대의 격랑 속에서 개인이 버텨야 하는 아이러니와 생존의 진실을 경쾌하면서도 씁쓸한 블랙코미디로 풀어낸 작품이다. 표제작 「초선의원」은 1988년 서울올림픽의 열기와 함께 시작된다. 실존 인물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초선의원 시절을 모티브로 삼아, 뜨거운 청문회장의 풍경을 스포츠 경기로 빗대며 한국 정치사 한복판에 던져진 초선의원의 고군분투를 유쾌하면서도 진정성 있게 담아낸다. “법이 잘못됐으면, 법을 바꾸면 된다”고 외치는 인권 변호사 출신 초선의원 ‘수호’는 정의와 이상 사이에서 끊임없이 충돌하며, 진짜 정치를 찾아 한 걸음씩 나아간다. 네 번째 작품 「단명소녀 투쟁기」는 제1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인 현호정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청소년극이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단명할 운명을 타고난 소녀 수정이, 삶을 이어가기 위해 남동쪽으로 긴 여정을 떠나는 판타지 로드무비이자, 철학적 성장담이다. 죽음을 피하려는 수정과 죽음을 찾아 떠난 이안이 만나 함께 걷는 여정은, 삶과 죽음에 대한 다정하고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아름다운 성장 서사다. 마지막 작품 「킬링 시저」는 셰익스피어의 고전 『줄리어스 시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공화정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벌어진 시저 암살이, 결국 또 다른 독재자를 탄생시키는 정치적 아이러니를 예리하게 구현했다. 로마의 절대적 지도자이나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 전 암살당하는 시저, 정치적 야망과 공화국 수호의 명분 속에 갈등하는 카시우스, 공화국의 이상을 위해 친구를 배신하는 딜레마 속에 갈등하는 이상주의자 브루터스의 삼자 구도를 통해, 권력의 윤리와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충돌하고 전복되는지를 깊이 있게 파헤친다. 역사극의 외피를 벗고, 오늘날 정치의 본질을 조명하는 정통 현대극이다. 오세혁 작가는 이번 희곡집을 통해 시대마다 다른 얼굴로 나타나는 ‘정치적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무대 위에 소환한다.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치열하게, 그리고 때로는 비극적으로. 이 다섯 편의 희곡은 각각 다른 언어와 결을 가졌지만, 공통적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묻고 있다. 『초선의원』은 단지 무대 위에서만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대와 시대를 잇는 다섯 개의 강렬한 무대를 통해, 이 희곡들이 담고 있는 치열한 질문과 미묘한 균열을 다시 한번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무대 너머 독자와 관객 모두에게 깊은 공명을 일으킬 것이다.
걷는 마음 (치유 시 그림책)

걷는 마음 (치유 시 그림책)

이정지  | 퍼플
7,500원  | 20250501  | 9788924153385
『걷는 마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힘이 되어주고자 쓴 책입니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하여 집 앞 공원을 걷고 걸었습니다. 고개 숙이면 보이는 까치꽃, 연보라 연파랑 수국이 주는 위로, 멀리 보면 다가오는 참새, 크고 작은 소나무와 참나무 가지들, 촘촘한 아파트 사이로 붉은 노을도 멈춰 서서 지켜보았습니다. 나뭇가지의 거친 휘어짐과 넝쿨식물의 부드러운 생명력이 몸속으로 스며들어 왔습니다. 힘을 주는 것은 항시 주변 가까이 있는데 그것을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저를 만났습니다. 좀 지친, 좀 쉬고 싶은, 새로운 방향을 찾고 싶은 사람과 『걷는 마음』으로 대화하고 싶어요. 우리 함께, 조용히 걸어 봐요.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서른 살 빈털터리 대학원생을 메이지대 교수로 만든 공부법 25)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서른 살 빈털터리 대학원생을 메이지대 교수로 만든 공부법 25)

사이토 다카시  | 걷는나무
11,410원  | 20150603  | 9788901204208
“독서를 시작하기만 한다면 변화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내가 공부하는 이유》, 《독서력》 등의 저서로 한국과 일본의 300만 독자를 사로잡은 공부 전문가이자 메이지대 괴짜 교수로 유명한 사이토 다카시. 그는 현재 일본 최고의 교육심리학자이자 인기 교수로 손꼽히지만, 젊은 시절에는 매달 생활비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빈털터리에 논문도 인정받지 못하는 평범한 대학원생이었다. 남들보다 한참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불안하고 초조했던 그에게 ‘독서’는 유일한 돌파구였다.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그때 생긴 매일 책 읽는 습관을 바탕으로 사이토 다카시가 깨달은 독서의 기술을 알려주는 책이다. 추천 도서가 아니라 끌리는 책부터 먼저 읽으라거나 살 책이 없어도 일단 서점에 가라는 식의 독서 습관을 기르는 방법부터, 일주일에 10권을 읽는 동시병행 독서법, 더 깊은 통찰을 주는 질문 독서법,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고전을 읽는 법 등 살아 있는 독서법 25가지가 담겨 있다.
내가 공부하는 이유 (일본 메이지대 괴짜 교수의 인생을 바꾸는 평생 공부법)

내가 공부하는 이유 (일본 메이지대 괴짜 교수의 인생을 바꾸는 평생 공부법)

사이토 다카시  | 걷는나무
11,700원  | 20140616  | 9788901165196
괴짜 교수 사이토 다카시의 공부 혁명! 『내가 공부하는 이유』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교육심리학자이자 문학·철학부터 비즈니스 대화법·인간관계까지 종횡무진 경계를 넘나들며 공부하는 메이지대학교의 괴짜 교수 사이토 다카시의 저서이다.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칠 때마다 공부를 통해 성장해 왔다는 저자는 적은 양이라도 꾸준히 공부할 것을 주문하며, 지난 20년간 직접 경험하고 수백 명의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사이토식 핵심 공부법’을 알려준다. 예컨대 ‘내 몸에 꼭 맞는 공부 습관을 만드는 법’, ‘죽어도 책 읽기가 싫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인 독서법’, ‘문제의 핵심을 꿰뚫는 질문을 던지는 법’ 등 어떤 상황에서도 지치지 않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공부법을 소개하여,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막한 사람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어 포기한 사람들에게 공부하는 즐거움을 깨우쳐 줌과 동시에 누구나 공부를 통해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 있도록 돕는다.
사소한 말 한마디의 힘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사소한 말 한마디의 힘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사이토 다카시  | 걷는나무
0원  | 20160708  | 9788901213057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대화의 기술! [사소한 말 한마디의 힘]은 저자 사이토 다카시가 오랜 방송 생활을 통해 익힌 긍정적인 대화 습관과 자신의 전공인 커뮤케이션론을 바탕으로 실제 생활에서 제자, 친구, 동료 등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쌓아 온 대화법을 고스란히 담았다. 책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깎아내리고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버릇, 무성의한 답변 등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인간관계를 무너뜨리는 나쁜 대화 습관들을 버리고 말 한마디로도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대화의 기술을 담았다.
최근 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