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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예술/대중문화의 이해 > 예술 통사/역사 속의 예술
· ISBN : 9791189716035
· 쪽수 : 256쪽
· 출판일 : 2020-03-10
책 소개
목차
1부
샤를 보들레르
주
2부
샤를 보들레르 씨에게 _ 빅토르 위고
테오필 고티에
주
옮긴이의 말
테오필 고티에 연보
샤를 보들레르 연보
찾아보기
책속에서
이런 만남이 있고 나서 얼마 안 가 보들레르는, 그 자리에 없었던 두 친구가 남긴 시집 한 권을 전하겠다고 필자를 찾아왔다. …… 그 순간부터 우리 둘 사이에는 우정이 싹텄다. 이 우정에서 보들레르는 짐짓 사람 좋은 선생 앞에서 사랑받는 제자가 취할 법한 태도를 언제나 견지하고자 했다. 그의 재능은 어디까지나 그 자신 덕분이며 그 자신의 독창성에서 나왔는데도 말이다. 아무리 격의 없이 굴어도 될 때라도 그는 필자가 볼 때 지나칠 정도로, 그리고 진심으로 안 그래도 된다는 말을 들을 만큼 예절을 잊지 않았다. 그 점을 그는 공공연히 여러 차례에 걸쳐 인정했으며, 필자에게 바친 《악의 꽃》 헌사는 비문碑文 같은 형식으로 이 정다운 시적 헌신의 절대적 표현을 확인해준다. / 굳이 이런 자질구레한 사실들까지 강조하는 것은, 사람들이 말하듯 필자를 돋보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글이 보들레르의 성격에서 사람들이 미처 모르는 부분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악마 같은 본성을 지녔고 악과 결핍(물론 문학적 결핍이지만)에 홀려 있는 것으로 흔히들 치부하려 하는 이 시인은 사실 누구보다도 드높은 사랑과 감탄을 마음속에 지닌 사람이었다. …… 그런데 심지어 낭만주의가 풍미하던 시절에도 보들레르보다 더 거장들을 공경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악의 꽃》의 시인 보들레르는 사람들이 맞지도 않게 ‘데카당스decadence’ 스타일이라고 부르는, 다름 아니라 쇠진해가는 문명들이 그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햇빛을 받으며 열매 맺은, 농익을 대로 농익은 경지에 이른 예술을 사랑했다. 말하자면 기발하고 복잡하고 유식하고 각종 뉘앙스와 탐구로 가득 찬 스타일이고, 말이라는 것의 한계를 늘 뒤로 물리며, 기술 어휘를 전부 차용하고, 모든 팔레트에서 색채를, 모든 건반에서 음들을 가져다 쓰고, 생각의 가장 표현하기 힘든 면과 더없이 막연하고 도망치는 듯한 형태를 그 윤곽으로 표현하려 애쓰고, 그것을 번역하기 위해 신경증 환자의 미묘한 속이야기와 스스로 결핍을 느끼며 늙어가는 열정의 고백과 광기로 변해가는 고정 관념의 이상한 환각에 귀 기울이는, 그런 예술을 사랑했던 것이다. 이러한 데카당스 스타일은 모든 걸 표현하라는 재우침을 받고 극단적 모욕을 받아 궁지에 몰린 ‘동사’가 남긴 마지막 말이라 하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보들레르야말로 예술의 절대적 자율을 편들고, 시가 그 자체 이외의 목적을 갖는다거나, 시가 달성해야 할 사명이 독자의 마음속에서 절대적 의미의 미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이외에 있다는 사실을 용납하지 못했다는 말은 맞다. 그는 순진하지 못한 이 시대에는 이 감각에다 어떤 놀람이나 희귀함의 깜짝 놀라게 하는 효과를 덧붙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웅변조의 시나, 열정과 진실을 완전히 그대로 베껴낸 시는 되도록 멀리했다. …… 즐거우라고 끔찍한 요소를 일부러 집어넣은 것처럼 보이는 보들레르의 어떤 작품들을 읽노라면 이런 원칙이 놀랍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잘못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끔찍함은 항상 성격과 효과에 의해, 렘브란트식 빛 한 줄기에 의해, 아니면 비천한 기형 속에서 원래는 고결한 그 본모습이 드러나는 벨라스케스식 위대함에 의해 변한다. 엉뚱하기도 하고, 식인종처럼 독이 섞인 온갖 재료를 냄비에 넣고 휘젓는 보들레르는 〈맥베스〉에 나오는 마법사처럼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아름다운 것은 끔찍하고, 끔찍한 것은 아름답다.” 그러니까 일부러 추하게 표현한 것은 예술의 지고한 목적에 배치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