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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25536453
· 쪽수 : 304쪽
· 출판일 : 2010-05-05
책 소개
책속에서
네 마리 사자가 떠받든 법상法床 형상의 보각에는 혜암 스님의 사리가 봉안돼 있었다. 불빛을 머금은 사리는 돋보기 속에서 더욱 영롱했다. 황금빛 사리 4과, 흑진주빛 사리 1과, 흰 골편 2과가 업경대 너머에서 시선을 끌었다. 대연 거사는 이마를 마룻바닥에 대고 있는 순간 머릿속이 홀연히 헹궈지는 느낌을 받았다. 삼배를 하고 일어서 보각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서자 이번에는 두 눈에 낀 헛것들이 떨어져나가는 듯했다. 찬물이 스친 듯 두 눈이 밝아졌다.
_「사리 친견」중에서
어린 남영(혜암 스님 출가 전 속가 이름)은 아이를 울리지 않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아이는 울다가도 남영을 보면 울음을 그쳤다. 남영은 아이가 울어도 절대로 화를 내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아이가 왜 우는지 차분하게 살폈다. 아이의 표정을 보고는 배가 고파서 그러는지 오줌이 마려워서 그러는지를 알아냈다. 아이는 어른들처럼 거짓말하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남영은 천진한 아이를 좋아했고, 자신도 아이 마음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_「길 없는 길」중에서
주장자에는 ‘공부하다 죽어라’고 쓰여 있었다. 혜암 스님의 사자후였다. 주장자 옆 조그만 게시판에는 다음과 같은 법문이 새겨져 있었다. ‘공부하다가 죽어라. 공부하다 죽는 길이 사는 길이다. 옳은 마음으로 옳은 일 하다 죽으면 안 죽어요.’ 대연 거사는 숨이 턱 막혔다. 언제 보아도 자신을 순식간에 절벽 끝으로 밀어붙이는 법문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모골이 송연했다. 날마다 순간순간 혼신의 힘을 다 쏟았는지,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는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스님의 사자후였다.
_「원당암 미소굴」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