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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25553016
· 쪽수 : 496쪽
· 출판일 : 2014-09-05
책 소개
목차
목차가 없는 도서입니다.
리뷰
책속에서
엄마가 살려 달라고 외쳤을 때, 난 놀라지 않았다. 유치원에 들어간 지 일주일도 안 되어, 난 엄마가 아이들이 만든 색색의 마카로니 목걸이를 하고 다니는 그런 엄마가 아님을 알았다. 엄마는 날 그저 손이 좀 작은 하인으로 여겼다.
“콜라 갖다 줘, 룰루.”
“동생 시리얼 먹게 우유 갖다 줘.”
“가게에 가서 윈스턴 담배 한 갑 사 와.”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수위를 높였다.
“아빠를 집 안에 들이지 마.”
우리 가족이 와해되던 7월, 내 여동생은 다섯 살이었고 난 곧 열 살이 되었는데, 엄마는 날 쉰 살쯤으로 보는 것 같았다. 아빠는 집을 나가기 전에도 가족들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자기 나름대로 문제가 있었겠지만 아빠는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걸 원했고, 다른
무엇보다도 엄마를 간절히 원했다. 어려서부터 브루클린의 매력적인 해변과 유원지가 있는 코니아일랜드 부근에서 성장한 탓에 엄마의 반반한 얼굴에 약한 건 그렇다 쳐도, 나머지 부분은 왜 놓치고 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달콤하게 꾸민 엄마의 겉모습 때문이었는지, 아빠는 엄마가 온전히 자기 뜻대로 할 수 없을 때면 언제든 얼마나 화를 잘 내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엄마의 묘지에 솜털 같은 풀이 자라 있었다. 엄마의 묘비 제막 의식이 곧 시작될 참이었다. 루비 할머니가 유대인들은 장례식 때 묘석을 천으로 감싸 덮어 두었다가 일 년 뒤 기일에 돌아와 천을 걷어 낸다고 설명해 주었지만, 난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메리와 함께 엄마의 묘지 발치에 섰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천으로 덮인 묘석 주위에 모여 있었다.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우리 밑에 있을 엄마의 발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엄마는 브루클린에 사는 여자들 가운데 가장 밝은 빨간 색 매니큐어를 발톱에 발랐다. 매니큐어가 엄마의 뼈에 그대로 남아 있을까?
“엄마가 풀 밑에 있는 거야?” 메리가 속삭였다.
큰 목소리로 소리치고, 날 가게에 심부름 보내고, 저녁을 차려 주지 않고, 매정하게 대하고, 날 이해해 주지 않은 엄마가 싫었다. 엄마가 필요할 때만 날 찾는 게 싫었다.
“동생이랑 놀아.”
“다림질할 거 티니 아주머니에게 갖다 줘.”
“나 살려 줘.”
엄마를 미워했던 나 자신이 미웠다.
내 증오심이 아빠가 엄마를 죽이도록 했을지도 몰랐다. 왜 아빠 등 뒤에서 달려들지 못했던가? 왜 앞에서 달려들지 못했던가? 왜 소리치지 못했던가? 왜 욕실에 숨어서 입도 뻥긋하지 못했던가? 메리는 엄마와 아빠에게 달려갔다. 엄마가 “칼을 들고 있어! 티니 아줌마 불러와! 날 죽이려고 해!”라고 소리치는데도 난 욕실에서 나가지 않았다.
엄마가 그렇게 말했던가? 제대로 기억하는 걸까? 아니면 내 멋대로 상상하는 걸까? 엄마는 아빠가 죽이려 한다고 말했던가? 나는 왜 엄마 아빠한테 달려가지 않았을까?
아빠가 메리를 죽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빠는 왜 자살하지 않았을까?
나는 왜 아무도 구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