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전기(개국~임진왜란 이전)
· ISBN : 9788928402632
· 쪽수 : 336쪽
· 출판일 : 2014-10-20
책 소개
목차
남효온은 누구인가
제1장 소릉복위 상소로 조정을 뒤흔들다
친구들과 압도에서의 하룻밤|성종대왕께 올리는 글
제2장 길 떠나는 벗이여 우리 언제 다시
구영안에게|안자정을 그리며|이천으로 귀양 가는 백연을 보내며|술을 경계하는 글|송도 유람을 나서며|영남으로 돌아가는 풍애 우덕보를 보내며
제3장 글은 으뜸이나 과거는 멀어라
관가에 환곡을 청했으나 얻지 못하다|성상의 옥체가 상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비가 조금 내리고 개다|어머님 꿈을 꾸고|영현암에서 공부하다가|장단의 객사에서 한 해를 보내며|종지의 시에 화답하다|관동으로 돌아가는 동봉 열경을 전송하다|벗의 충고에 답하다|소를 타고 밭 사이로 압도에 들어가다
제4장 전원에서 씨 뿌리고 명승지를 유람하다
입춘|동봉 선생을 송별하며|남산에 올라|유금강산기|송경록|스스로 읊다|또 스스로 읊다|병든 아들을 생각하며
제5장 가족의 시련, 길 없는 방랑
춘첩자|쌀을 보내 준 정중에게 사례하다|화숙과 광나루에서 이별하며|내 아들 종손에게|겸지와 계운의 급제를 축하하며|정미년 정월 초하루|차현에서|은진에서|낮잠 자다가 어머님 꿈을 꾸다|예양강 동정에서 경회에게 시를 남기고 작별하다|고향 의령에서|지리산 일과
제6장 스승 점필재에게 편지를 쓰다
두륜산에서 감사 김점필재 시에 삼가 화답하다|사위의 영구를 맞이하다|자신의 만사 네 수를 지어 점필재 선생께 올리다|이날 밤 술에 취해 느낀 바를 짓다|기자의 묘를 참배하다|아버님의 친구를 뵙다|덕우를 송별하고 항아 노랑에게 보내다|자정 시집 발문
제7장 천유를 품고 저 먼곳으로
부여 회고|조대기|장흥에서 우연히 읊다|월호에서 여름날 밤비 내릴 때 술을 마시다|밀양 영남루에서 점필재를 뵙다|득지락부
제8장 불의의 시대, 증언의 기록
충절 그리고 고발
육신전|박팽년|성삼문|이개|하위지|유성원|유응부
서늘한 정신의 기록, 추강냉화
시대의 아픔을 함께한 벗들|음악으로 풀어낸 벗들의 울분|죽은 벗의 가르침|꿈같은 꿈속 만남|세상에 버려진 인재들|저잣거리의 현자|미친병에 감춘 진심|간절한 효행 실천의 표상|새로운 시대를 꿈꾸던 젊은 스승|신진 사류의 아픔|험난한 벼슬길|잘 살다가 가는 것|압구정 주인의 허위의식|어긋난 효심|삶과 글의 일치|기심을 아는 새|정자 마루에서 싹 틔운 볍씨에 대한 단상|성리학에 관한 문답|이와 기에 대한 논란|시학과 도학의 두 길|버려진 기록의 한 단면
미완의 추억, 사우 명행록
김굉필|권안|정여창|이정은|김시습|홍유손|우선언|고순|신영희|이종준|이총|이심원|강응정|안응세
제9장 평가
『연산군일기』 1498년 8월 16일|추강집 뒤에 적다|남효온론|남추강 사적 뒤에 쓰다|묘갈명
연보
책속에서
제1장 소릉 복위 상소로 조정을 뒤흔들다 18~25세
성균관 유생 신분으로 상소를 올리기 이전인 열여덟 살에 지은 시 한 편과 성종대왕에게 올려 화제를 불러일으킨 소릉 복위 관련 상소문을 실었다.
제2장 길 떠나는 벗이여 우리 언제 다시 27~28세
남효온은 소릉 복위 상소를 올려 곤욕을 치렀지만, 스물일곱 살 때 진사과에 합격한 것을 보면 새 시대에 대한 꿈을 포기하기 어려웠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훈구 대신과 신진 사류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상황에서 친구들은 조금씩 그의 곁을 떠났다. 갈등과 울분의 시절을 폭음으로 달래던 시절에 남긴 그의 슬픔이 밴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제3장 글은 으뜸이나 과거는 멀어라 29~30세
현실의 장벽에 막혀 과거를 포기하고 행주 전원으로 돌아가 생활할 때 쓴 글들이다. 남효온은 문장공부와 마음공부 사이에서 끝없이 방황하였다. 갈등 끝에 과거에 응시하지만, 훈구 대신이 불법적인 농간을 하는 바람에 떨어졌다. 결국 명리와 현달을 포기하고, 행주 전원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제4장 전원에서 씨 뿌리고 명승지를 유람하다 21~32세
한강 부근 행주에 거처를 정하고 추강거사로 자호를 붙이고 전원생활을 할 때의 기록이다. 직접 농사도 짓고 비교적 평온하게 지냈다. 뿐만 아니라 성리학 관련 논설을 활발하게 저술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당시 가뭄으로 인한 극심한 궁핍과 김종직을 둘러싼 벗들 간의 불화를 지켜봐야 했다.
제5장 가족의 시련, 길 없는 방랑 33~34세
본격적인 방랑의 길로 들어선 시절이다. 둘째 아들과 고모가 죽고, 큰 기대를 걸었던 맏사위가 과거 공부를 중단하고 김해로 내려간다. 결국 남효온도 전원생활을 뒤로한 채 호남과 영남으로 방랑의 길을 떠났다.
제6장 스승 점필재에게 편지를 쓰다 35~37세
방랑 끝에 서울로 돌아왔지만 우환이 끊이지 않았다. 맏사위가 죽고 그는 병을 앓았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남효온은 스승 김종직에게 자신의 만사를 지어 올리고는 다시 방랑의 길을 떠났다.
제7장 천유를 품고 저 먼 곳으로 38~39세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추구하기 위해 전국을 떠돌았지만 끝내 자유는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자유는 작은 내 마음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족들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죽음도 가까이 와 있었다.
제8장 불의의 시대, 증언의 기록
단종복위 운동을 펼치다 죽은 인물 가운데 여섯 명을 선별하여 그들의 충절을 증언하는 기록인 [육신전]과 더불어 시대정신의 궤적을 함께하는 [추강냉화], 자신과 절친했던 벗들과의 일화를 기록한 [사우명행록] 가운데 선별한 내용을 실었다.
제9장 평가
남효온 사후, 후대인이 기록한 다섯 편의 글을 실었다. 김종직의 문인이라는 이유로 난신 취급을 받던 연산군 시대로부터 생육신으로 추숭된 정조 시대까지 남효온에 대한 평가가 300여 년 동안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