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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32322742
· 쪽수 : 384쪽
책 소개
목차
숨 쉴 곳을 찾아서
해설
숨 쉴 곳을 찾아 떠난 이에게 - 정용준
조지 오웰 연보
책속에서
그날 아침, 나 자신에 대한 환상은 전혀 없었다. 뚱뚱하고 붉은 얼굴에 틀니를 끼고 천박한 옷차림으로 거리를 걷는 내 모습을 저 멀리서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나 같은 인간이 신사처럼 보일 리 없다. 200미터 떨어져서 봐도 곧장 알아챌 것이다. 내가 보험회사 직원이라는 건 몰라도, 영업 사원이나 외판원 쪽이라는 건 간파하리라. 내 옷차림은 사실상 그런 종족의 제복이나 마찬가지였다. 낡아빠진 회색 헤링본 정장, 50실링짜리 파란 오버코트, 중산모,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 그리고 수수료를 받고 상품을 파는 사람 특유의 거칠고 뻔뻔한 표정.
나는 15킬로미터 넘게 걸었는데도 힘들지 않았다. 하루 종일 블랙 핸드 패거리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그 애들이 하는 건 전부 다 하려고 했고, 패거리 애들이 ‘코흘리개’라 부르며 최대한 나를 무시하려고 했는데도 그럭저럭 잘 버텼다. 내 안에서 근사한 감정, 느껴보지 않으면 모를 감정—하지만 남자라면 언젠가는 느낄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난 더 이상 내가 코흘리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드디어 소년이 된 것이다. 그리고 소년이 되어 어른들에게 붙잡히지 않을 곳으로 돌아다니고, 쥐를 쫓아다니고, 새를 죽이고, 돌멩이를 던지고, 짐마차꾼을 건방지게 놀려먹고, 상스러운 말을 외치는 건 근사한 일이었다.
내 심정이 어땠을지는 짐작이 갈 것이다. 잠시 후에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애가 타서 견딜 수 없었다. 허겁지겁 다른 연못으로 돌아가 낚시 도구를 챙겼다. 내 장비가 그 거대한 괴물들을 상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놈들 의 이빨에 머리카락처럼 싹둑 잘리고 말리라.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조그만 브림을 낚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큰 잉어를 보고 나니 구토라도 할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자전거를 몰고 언덕을 내려가 집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소년에게는 근사한 비밀이 하나 생겼다. 숲속에 거무스름한 연못이 숨겨져 있고, 그곳을 괴물 같은 물고기들—한 번도 낚시꾼들에게 노려진 적이 없어 미끼가 보이면 당장에 물어버릴 물고기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놈들을 버틸 만큼 튼튼한 낚싯줄을 손에 넣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내 머릿속에는 이미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가게 계산대에서 돈을 훔쳐 튼튼한 장비를 구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