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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독일소설
· ISBN : 9788932915760
· 쪽수 : 584쪽
· 출판일 : 2012-07-10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내 이름은 막스 슐츠, 순수 아리아 혈통을 물려받은 민나 슐츠의 아들이다. 사생아이긴 하지만……. 어머니는 내가 태어나던 무렵 유대인 모피상 아브라모비츠의 집에서 하녀로 일했다. 내 핏줄이 티끌 한 점 없는 순수 아리아 계통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내 어머니인 민나 슐츠의 가계로 말하자면 비록 토이토부르거 숲 전투만큼 멀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프리드리히 대왕 시절로는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니 말이다. 내 아버지가 누구였는지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다음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일 것은 분명하다. 푸주한 후베르트 나글러, 철물공 프란츠 하인리히 비란드, 미장이 조수 한스 후베르, 마부 빌헬름 호펜슈탕에, 하인 아달베르트 헨네만.
나로 말하자면, 언제나 이발사라는 일을 흥미로운 직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세상에 인간의 머리통만큼 귀한 것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 귀한 머리통을 모양내고, 다듬고, 아름답게 꾸미는 일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발사 일을 하다 보면 다음과 같은 생각도 문득 떠오를 때가 있긴 하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이 머리통을 으깨 버린다면, 그것도 참 재미가 있긴 하겠구나… 하는. 너무나 간단하게 해치울 수 있는 입장이 아닌가. 그것도 두 손만 이용해서. 이 손쉬운 가능성을 실감하고 나면 누구나 깜짝 놀랄 정도이다…. 우스꽝스럽기조차 하다. 여기 누군가의 머리통이 있다! 그 머리통이 완전히 내 손아귀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수용자들은 무거운 짐짝들을 트럭으로 옮겨 실었어요. 우리는 모든 걸 다 가져갈 수도 없었죠. 식량이랑 화약 그리고 보석류가 가득 든 상자 하나랑 시신에서 빼낸 금니가 든 상자 하나, 시간이 없던 관계로 독일 제국으로 보내지 못했던 나머지 것들, 뭐 이런 게 전부였어요.」 막스 슐츠가 말했다. 「그런데 마지막 상자를 트럭에 실을 때, 그게 바로 금니가 든 상자였지요, 그만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상자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박살이 났고, 그 안에서 무수한 금니들이 떼굴떼굴 굴러 나온 것이었죠. 그때 마침 난 트럭 옆에 서 있었어요. 그걸 보자 복통에도 불구하고 정신이 바짝 들었죠. 난 이를 앙다물었답니다. 물론 내 이를요. 그럴 땐 우선 정신 차리고 정신 집중부터 해야 하는 법이니까. 그렇게 되었던 겁니다. 금니가 온통 바닥에 굴러다녔어요. 그런데 남아 있는 빈 상자가 더 없었으니 문제였죠. 상자는 이미 다 동이 났으니까. 그래서 난 수용자들에게 종이 박스를 모아 오라고 시켰어요. 그런데 이런 구체적인 것까지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그냥 일이 그렇게 진행됐다고만 말하겠습니다. 금니들을 다시 다 모아서, 종이 박스 몇 개에 나누어 담았죠. 그래서 겨우 트럭에 실을 수가 있었어요.
그랬습니다. 그다음 내게 명령이 떨어진 거죠. 남은 수용자들을 다 처치하라고. 이미 말했듯이 그때까지 살아남아 있는 수용자들은 그다지 많지가 않았으니까요. 숫자를 세어 보니 모두 여든아홉 명이더군요. 최후로 살아남은 이들이 여든아홉 명이라고? 그 정도쯤이야! 원래는 혼자서도 간단하게 해치울 수 있는 일이에요. 그런데 문제는 내가 복통이 심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분대장에게 가서 사정을 말했던 거고, 하지만 분대장은 내 사정 따위는 들은 척 만 척 한 거죠.」
여기까지 말한 막스 슐츠는 짙은 담배 연기를 후 하고 뿜어냈다.
「그러니 어쩝니까.」 막스 슐츠가 계속했다. 「복통이 있긴 했지만 그들을 쏘아 죽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