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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역사학 > 역사학 일반
· ISBN : 9788933707098
· 쪽수 : 470쪽
· 출판일 : 2016-06-02
책 소개
목차
서장: ‘학문적 자서전’에 나타난 이기백한국사학의 시기 구분
제1부 검토 편
제1장 이기백 『국사신론』·『한국사신론』의 체재와 저술 목표
1. 머리말
2. 이기백의 한국사학 저술에 대한 연도별 계량적 분석
3. 『국사신론』·『한국사신론』 여러 판본의 체재
4. 『국사신론』·『한국사신론』 여러 판본의 저술 목표
5. 이기백 『국사신론』·『한국사신론』 저술의 특징과 역사적 의의
6. 맺는 말
제2장 『국사신론』·『한국사신론』 본문의 사론
1. 머리말
2. 본문 사론의 내용
3. 본문 사론의 구성
4. 본문 사론의 유형
5. 본문 사론의 대세
6. 본문 사론의 개별성
7. 맺는 말
제3장 이기백한국사학 사론집 삼부작의 출간 의도
1. 머리말
2. 『민족과 역사』의 특징과 그 출간의 의도
3. 『한국사학의 방향』의 특징과 그 출간의 의도
4. 『한국사상의 재구성』의 특징과 그 출간의 의도
5. 사론집 삼부작 출간의 사학사적 의의
6. 나머지 말
제2부 탐구 편
제1장 이기백의 역사주의 수용과 한국사학의 초석 확립
1. 한국사 연구를 통한 세계사 연구에 대한 공헌 강조
2. 일본 유학시절 이기백의 역사이론 공부
3. 역사주의의 수용과 이기백의 사학사 연구
4. 역사주의의 수용과 이기백의 사론 연구
5. 이기백의 주체적 한국사관 및 상대적 평가 사론의 정립
6. 이기백의 민족적 자주성과 개별성 파악
7. 이기백의 한국사학연구에 끼친 역사주의 역사학의 영향
8. 이기백이 ‘역사주의’라는 용어를 쓰지 않은 까닭
제2장 이기백한국사학의 보편성 추구와 개별성 파악
1. 개화기 이후 한국학의 특징으로서 ‘보편성에 대한 인식’이해
2. 보편성·특수성 인식의 지향과 보편성 위에서의 특수성 규명 추구 및 개별성 터득
3. 이기백의 보편성·특수성·개별성 개념 이해에 끼친 외국학자들의 영향
4. 백남운 유물사관에서의 보편성과 특수성 검증
5. 개별성 파악과 보편적 개념의 성격 규정을 통한 한국사의 세계사 공헌
6. 맺는 말
제3장 이기백의 『한국사 시민강좌』 간행과 민족의 이상 실현 지향
1. 머리말
2. 간행의 목적과 취지
3. 편집의 체재와 변화
4. 특집의 선정과 구성
5. 「독자에게 드리는 글」 중 논평과 전망 제시
6. 게재한 글에 나타난 민족의 이상 실현 지향
7. 1997·2002년 대통령 선거와 관련한 현실 인식 표명
8. 맺음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이기백은 연구 생활의 중기 초반에 한국사학을 학문으로서의 역사학으로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염원을 간절히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점은 그 자신의 글 가운데 아래의 대목에서 확연할 뿐더러, 여기에서 당시에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나름의 구체적인 원칙까지 설정해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또한 확인할 수가 있어 크게 주목이 된다.
어떻든 ⓐ 나는 한국사학을 학문으로서의 역사학으로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염원을 잠시라도 잊은 적이 없다. 그러기 위하여 나는 나의 마음속으로부터 몇 가지 유혹을 뿌리쳐야만 했다.
그 첫째는 애매한 개념槪念을 사용하고 비논리적非論理的인 추리를 하는 일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개념을 분명히 하고, 논리적으로 이론을 전개하는 것은 어느 학문에 있어서나 필수적인 요건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러한 훈련이 거의 없는 나는 제 멋에 겨워 마음내키는대로 휘두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둘째로는 공식주의公式主義로부터 탈피하는 일이었다. 안이하게 공식을 적용하는 것이 한국사학을 과학으로 정립시키는 일로 흔히 생각되어 온 것은 불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의 극복은 부정만으로서는 안 되며 자신의 이론을 내세워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다.
ⓑ 셋째는 권위주의權威主義나 사교주의社交主義의 유혹을 물리치는 일이었다. 사교적인 방법으로 기성의 권위와 타협함으로써 자기의 권위를 세우고, 그 권위에 굴복하도록 남에게 요구하는 방식은 가장 달콤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종종 이 달콤한 유혹에 말려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놀라는 일 한두 번이 아니다.
그는 “한국사학을 학문으로서의 역사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염원을 “잠시라도 잊은 적이 없다(ⓐ)”고 강조하면서, 그러기 위해 “유혹을 뿌리”치기 위한 3가지 점의 원칙을 정했던 것이다. 첫째는 “애매한 개념을 사용하고 비논리적인 추리를 하는 일을 극복하는 것”으로, “어느 학문에 있어서나 필수적인 요건”인 “개념을 분명히 하고, 논리적으로 이론을 전개하”겠다는 다짐이었다.
둘째는 “공식주의로부터 탈피하는 일”이라 하였는데, 이 ‘공식주의’라고 함이 뒤이어 “공식을 적용하는 것이 한국사학을 과학으로 정립시키는 일로 흔히 생각되어 온 것”이라는 설명으로 보아서 분명 유물사관唯物史觀을 지칭하는 게 틀림이 없다고 이해된다. 따라서 한마디로 유물사관의 탈피를 선언한 것이라고 풀이된다. 그러면서 이를 극복한다는 게 “부정만으로서는 안 되며 자신의 이론을 내세워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다”라고 언급함으로써, 종국에는 자신 나름의 이론 정립을 지향하고 있음도 내비쳤던 것이라 하겠다.그리고 셋째는 “권위주의나 사교주의의 유혹을 물리치는 일(ⓑ)”로, 이로써 오로지 학문 연구에만 정진하고자 했음이 확연하다. 결국 이 시기에는 이렇게 함으로써 이기백은 ‘한국사학을 학문으로서의 역사학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온 힘을 쏟았던 것이었다.
-「‘학문적 자서전’에 나타난 이기백한국사학의 시기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