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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33707739
· 쪽수 : 384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가지 않은 길
제1장 중일전쟁의 한복판에서: 한커우, 1939~1940년
한커우 이주와 아버지의 사업
한커우 메이지 심상소학교
제2장 평양에서 겪은 태평양전쟁, 1941~1943년
평양 가루개로 이사하다
명륜국민학교와 황국 신민화 정책
태평양전쟁과 나의 평양 학창시절
나의 ‘고향’, 나의 가문
제3장 만주의 국공내전과 14세 소년 가장, 1943~1948년
평양에서 만주로
소련군, 팔로군, 그리고 조선독립동맹
중국 국민당 치하의 의료원 조수 생활
랴오양 면화공장에서의 출세
제4장 공산 치하 평양의 쌀장수, 1948~1950년
만주를 떠나 평양으로
신양리 시장의 쌀장수
공산 치하의 평양 생활
한국전쟁의 발발
제5장 남한 피난생활, 1950년 12월~1953년
평양을 떠나 남한으로
중공군 개입과 국민방위군 사관학교 입대
나의 영어학교 ATIS(미군 번역-통역부대)
제6장 미국 유학과 공산주의 연구, 1954~1974년
내가 선택한 길: 1954년 미국 유학
UCLA의 낯선 봄
버클리와 스칼라피노 교수
한국 공산주의 연구
에필로그: 아이비리그의 새로운 길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는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걸었던 경우보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주어진 길을 무턱대고 걸었던 때가 더 많았다. 특히 열네 살부터 20대까지는 대부분의 시절이 그랬다. 만주에서 병원 도우미로 일하며 임질과 매독에 걸린 환자들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시베리아의 찬바람을 견디면서 공장 마당의 말똥을 치우던 소년이 미국 아이비리그의 대학교수가 되었으니 내가 받은 축복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나의 경험은 동아시아 역사와 남북한의 정치 관계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강의 시간에 졸고 있는 제자들을 잠에서 깨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한커우에서 보낸 2년은 나에게 뜻하지 않은 소득을 주었다. 첫째는 나의 일본어 발음이 완전히 일본인의 그것과 똑같아진 것이다. 어릴 때여서 그랬을 것이다. 이것은 후에 나의 학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덕분에 훗날 나는 일본의 정치와 외교 등을 가르치고 일본에 자주 드나들며 각종 회의에 참석할 때 언어에 구애받지 않고 본격적인 연구를 할 수 있었다. 둘째는 내가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양쯔강은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자주 오르내리고 건너다니던 강이므로 그 지역에 대한 배경지식은 연구하는 데 긴요한 자료가 되었다.
내가 입학한 해에 랴오양 상업학교는 전시체제라는 이유로 공업학교로 현판을 바꾸어 달았다. 입학 첫날 교정에서 일어난 일이 너무나 선명히 기억난다. 학생들이 교정에서 집합 명령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다른 반 애들은 이미 교실로 들어갔고 우리 반 학생 40명만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그날은 날씨가 매우 좋아서 겨울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봄날 같은 기운이 감돌았다. 그런데 그중에 키가 좀 큰 편인 한 아이가 땅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있는 내게 와서 말을 건넸다. “야, 저 조선 새끼를 때려 주자!” 나는 당시 체구가 또래 학생들보다 좀 큰 편이어서 아마도 싸움판의 대장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야, 그런 짓 하지 마. 인마, 나도 조선인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상대는 정색하더니 “야, 인마. 그런 농담은 하는 거 아니야!”라고 큰소리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