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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88933801758
· 쪽수 : 472쪽
· 출판일 : 2012-01-22
책 소개
목차
기획의 글
작가의 말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12월
1월
2월
3월
4월
5월
해설
작가 연보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까만 스커트에 흰 포플린 블라우스는 깃이 너무도 단정하게 목둘레를 조이고 있고, 과히 예쁘지 않은 얼굴에, 입은 교태를 거부한 채 완강히 다물어져 있어, 마치 국민 학교 우등생처럼 착실해 보였을 뿐 아니라 우등생 기질도 여전해 무료한 시간의 쓸모를 몰랐다. 문득 짐승의 소리인지 사람의 소리인지 분간 못할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 근처를 두리번거렸다. 도망갈 자세를 먼저 취하고 있던 진이는 그만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피식 웃고 말았다.
행동을 같이하자는 순덕을 뿌리치고 진이는 혼자서 허술한 빈촌을 골라 가가호호를 방문했다. 오후 늦게까지 더위와 허기증이 뒤범벅이 되어 몸을 가눌 수 없을 때까지 굳게 닫힌 문을 두들기고 비행기 기금 모금의 취지를 설명하고 협조를 호소하는 일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단 한 집의 협조도 얻지 못했다. 조소와 경멸, 때로는 노골적인 욕설과 적의를 아무리 받아도 진이는 오히려 미흡했다.
진이는 꿇어앉은 채 그의 발에서 헝겊으로 된 구두 모양의 두툼한 신을 조심조심 벗긴다. 다음은 해진 얽은 양말을 벗기고 두 손으로 발을 감싼다. 수북이 부어오른 발등과 뭉크러진 발가락을 가만가만 어루만지다가 화끈화끈 체온 이상의 열로 달고 있는 발등에 볼을 비빈다. 그의 발의 아픔이 그녀의 가슴 한복판으로 화살처럼 와 박힌다. 정녕 아프다. 자기의 육신인들 어찌 이보다 더 아플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