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34984580
· 쪽수 : 200쪽
책 소개
목차
1화 / 언어의 바다
2화 / 시작의 꽃
3화 / 선잠과 하늘
4화 / 세상의 체온
에필로그
리뷰
책속에서
얼음같이 차가워진 그녀의 손끝이 내 몸에 닿았다. 그녀는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위에서 내려다본 골판지 박스는 놀랄 만큼 작았다. 그녀는 재킷과 스웨터 사이에 나를 넣고 감싸 안았다. 그녀의 체온은 믿기지 않을 만큼 따뜻했다.
그녀의 고동이 들렸다. 그녀가 걷자 전철 소리가 우리를 추월했다. 나와 그녀와 세상의 고동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날 그녀가 나를 거두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녀의 고양이다.
웨이터가 커피를 가져왔다. 나는 한 모금 마신 뒤 큰맘 먹고 노부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로 했다. 노부는 문자를 잘 보내지 않는다. 전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말로 하는 사람이다.
“고양이를 주웠어. 초비라고 해.”
이리저리 궁리한 끝에 결국 평범한 문장이 되었다. 초비 사진도 첨부했다. 내 사진도 보낼까 하다 그만두었다.
초비 사진은 배를 내보이는 것들뿐이었다.
누워 있는 레이나에게 살짝 몸을 기댔다.
“그 녀석에게 졌어……. 지기는커녕 겨뤄보지도 못했어. 나는 아무것도 제출하지 않았으니까.”
레이나가 내 몸을 쓰다듬는다.
“나,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잘하는 거라고는 그림 그리는 거밖에 없는데. 미미, 전부, 전부 나에게 돌아와.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한 녀석에게 했던 말이 전부 나에게…… (…) 도와줘. 내가 너무 혐오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
레이나 뺨에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살짝 핥았다. 따뜻했다. 레이나의 생명의 맛이 났다.
레이나가 강인함을 잃고 있다. 나는 정말로 오랜만에 초비가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