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6438845
· 쪽수 : 168쪽
· 출판일 : 2022-09-15
책 소개
목차
프리랜서의 자부심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내가 만난 클라이언트 쪽 실무자들은 대체로 유능하고 세심했다. 그들은 나와 소통하며 작업 스케줄과 업무 내용을 조정했다. 인터뷰 자리에 실무자가 동행하는 경우도 가끔 있었지만, 실제로 얼굴을 볼 일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구직사이트에서 일감을 확인하고 지원하는 절차부터 계약 체결과 이후 일의 진행까지, 모든 단계의 소통은 이메일을 통해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한 사람의 프리랜서로서 직접 클라이언트를 만나러 가고 있다. 직거래를 하러 길을 떠나는 농부가 된 기분이었다. 손수 재배한 농작물을 트럭에 싣고 시장으로 향하는 농부. 다른 점이라면 농작물과 달리 평판과 능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일까. 오늘은 업무 범위부터 방식까지, 구두로 의뢰인을 상대하고 흥정까지 마쳐야 했다.
그들 곁에 조용히 앉아 있었지만, 나는 그들이 하는 말을 빠짐없이 들었다. 두 사람이 이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얼마나 열정을 갖고 있는지 느껴졌다.
몸담은 공동체가 있고 그 공동체의 역사에 자부심을 품고 있는 사람들. 뜻밖에 나는 조금 부러움을 느꼈다. 날카로운 아픔이 느껴지는 부러움이었다.
돌이켜보면 기자라는 직업은 내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나는 내가 ‘여자’라는 점을 의식하며 살듯 나 자신이 ‘기자’라는 사실을 매 순간 느끼며 살았다. 내 인생은 일을 중심으로 했다. 공간 한복판에 거대한 쇠공이 놓인 것처럼, 나라는 존재는 일을 중심으로 휘어 있었다.
어느 날 자정이 되도록 일감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이렇게까지 할 일은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