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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조소앙 (균등사회의 새로운 민주주의)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사상/사회사상사 > 사회사상/사회사상사 일반
· ISBN : 9788936481179
· 쪽수 : 324쪽
· 출판일 : 2026-02-20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사상/사회사상사 > 사회사상/사회사상사 일반
· ISBN : 9788936481179
· 쪽수 : 324쪽
· 출판일 : 2026-02-20
책 소개
창비 한국사상선 제23권 『조소앙: 균등사회의 새로운 민주주의』는 일제강점기 민족운동의 거두이자 한국 민족주의 운동의 이념을 체계화한 이론가이며 정책입안가인 조소앙(1887~1958)의 논설을 엮은 책이다.
민족운동과 보편적 비전을 연결한 사상가 조소앙
‘한반도의 새로운 나라는 문명의 대안이 될 것이다’
창비 한국사상선 제23권 『조소앙: 균등사회의 새로운 민주주의』는 일제강점기 민족운동의 거두이자 한국 민족주의 운동의 이념을 체계화한 이론가이며 정책입안가인 조소앙(1887~1958)의 논설을 엮은 책이다. 여타의 독립운동가들이 정치가로서 혹은 사상가로서 하나의 특장점을 갖고 활동했다면, 조소앙은 운동의 실천과 함께 사상의 개진까지를 동시에 추구한 다차원적인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는 조소앙이 어린 시절부터 한학에 도통했고 종교적으로도 깊이 있는 공부를 이어왔다는 점에서도 기인한 바 크지만, 무엇보다도 근대 한국의 종교 교리의 융합을 기초로 하여 동서 사상 간의 경계를 자유로이 오간 데에서 비롯된다. “그의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적 사고는 지리적 경계를 횡단한 그의 이채로운 행적(일본・중국 및 유럽을 두루 다니면서 신조류와 접속하는가 하면, 해방 이후 분단된 조국에서는 남북한을 모두 살아야만 했던 특이한 이력)의 소산인 동시에 한국 사상사를 관통하는 유불선 융합의 사유구조를 내면화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14면)라고 엮은이 백영서 교수는 말한다.
식민지 현실에서 일구어낸 삼균주의라는 변혁사상
1887년 경기도 파주의 한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조소앙은 16세에 성균관에 입학했고 18세에는 자퇴한 뒤 대한제국 황실 유학생 시험에 선발되어 일본 토오꾜오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유학 중에 매국노 처단 운동을 벌이는 등 반일 활동을 이어가다가 메이지대학 법학부에 입학한 뒤로는 유학생 연합회를 이끌며 한일합방 반대 투쟁에 열중했다. 1912년 중국 상하이로 가서 망명 신청을 하고 비밀결사 조직 동제사에 가입하는 등 독립투쟁을 벌임과 동시에, 28세이던 1914년에는 일신교라는 통합 세계종교를 창시했다. 그 뒤로 상하이임시정부 수립과 조선사회당 창당 등을 기획하다가 1919년 「대한독립선언서」(무오독립선언서)의 초고를 작성하고 신규식, 신채호 등과 이를 배포한다.
상하이임시정부 수립 후에는 외무총장을 맡아 빠리를 비롯한 유럽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존재와 한국의 독립을 설파하는 활동을 벌였다. 풍찬노숙의 임시정부 투쟁 속에서도 1922년에는 한살림당(일명 대동당)을 조직하고 「한살림 요강」 등 당의 주요 강령과 정책을 제시했다. 또한 1928년에는 단군조선 이래로 한반도의 선현들이 남긴 명문장을 모아 『한국문원』을 펴냈다. 그리고 자신의 정치이념 연구와 정당정치 이론을 집대성하여 삼균주의를 제창했다. 삼균주의는 1930년 조소앙이 김구, 안창호 등과 함께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정당인 한국독립당을 결성할 때 당강, 당책 등의 기초 이념으로 채택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조소앙이 펼쳐온 행적과 사상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종교 관련 활동이다. 구한말 당시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조소앙은 자기 인생의 목적이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일이고, 하느님이 자신에게 한국을 구하라고 명하셨다고 적었다. 한일합방 직후인 1911년 기독교에 입회했지만 기독교 교리의 유일신 기조에 회의를 품고 통합적 보편종교를 세우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힌다. 그 뒤로 10여년간 전세계를 유랑하며 한국 독립투쟁을 알리는 와중에도 일신교와 대동종교를 연이어 개창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종교적·철학적 탐색 덕택이었다. 조소앙은 “세상의 치란의 안위와 국가의 흥망존폐가 모두 교”에 달려 있다고 보았는데, 여기서 ‘교’란 단순히 종교를 뜻하지 않고 “동시대 민중의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정신적 힘”(16면)을 말한다. 엮은이 백영서는 조소앙의 종교구국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나라를 잃은 식민지 상황에서 종교가 민족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고 말한다.
조소앙은 당대 한반도에 다양하게 포진된 사상 조류를 포괄하고자 했다. 그는 동학과 대동교가 유교·불교·도교의 3교를 통합하고자 시도한 데에서 영감을 얻고, 여기에 3·1운동 등에서 발휘된 조선 민중의 역할을 감안한 토착적 민중신앙을 접목했다. 그리고 이 같은 종교적 신념을 토대로 단순히 개인 차원의 구원이 아닌 민중 전체의 구원을 위한 변혁사상으로서 삼균주의를 제시했다. 조소앙 사상의 요체라 할 수 있는 삼균주의는 진선미(眞善美)의 융합을 우주가 합일을 이룬 경지로 보는데, 중요한 것은 진선미가 정치적 실천과 연결되어 혁명의 이치를 완성한다는 점이다. 나라를 건국하는 데서 정치와 종교를 연계하려는 시도는 다양하게 존재했지만, 조소앙만큼 정치와 종교 간 관계를 근본적으로 사유하고 사상의 도출이라는 성취를 이룬 이는 많지 않았다.
조소앙 사상에서 종교만큼 중요한 요소는 바로 사회주의다. 물론 그의 사회주의는 일신교를 비롯한 종교적 틀 안에서 수용한 사조로서, 그가 만든 사회당 또한 일신교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실천적 종교조직이라 볼 수 있다. 그는 세계의 대표적 종교들이 추구하는 이상이 사회주의의 이상과 다를 바 없다고 보았다. 조소앙의 이 고유한 사회주의관은, 1922년 설립한 사회주의 조직인 한살림당에 그대로 녹아 있다. 한살림당은 궁극적으로 빈부와 신분 격차가 없는 평등사회를 지향했다. 이는 당시 사회주의 운동가들이 쉽게 경도되었던 소련식 공산주의와는 거리를 둔 것이기도 하다. 그는 공산주의운동과 민족주의운동 간의 생산적 경쟁을 중시하여 훗날 해방될 조국에서 둘 중에 무엇이 정책으로 채택될 수 있을지, 그 경쟁을 통해 최후의 승자를 뽑자고 제안한다.
그는 1919년 유럽과 소비에트연방을 순방하며 공산주의의 이상과 현실 간의 거리를 체감했다. 이에 소련식 공산주의를 멀리하며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수용한다. 또한 중국의 국민당과 공산당이 통일전선을 이뤘던 것(1923~27)을 참고하여 한반도와 중국에서 각각 민족유일당 창당운동을 추진했다. 이를 토대로 상하이임시정부를 지탱할 중심체로서 정당이 필요함을 직시하고 한국독립당을 창당했다. 그리고 그동안 숙고하여 체계화한 삼균주의를 당의 이론적 체계와 기반으로 제안한다.
조소앙은 정치 역량이 뛰어난 외교전략가이기도 했다. 그는 상하이임시정부의 외무총장 등 여러차례 외교 분야의 수장으로 활동했고, 특히 1931년 중국에서 일어난 조선인과 중국인 간의 유혈충돌 사건인 완바오산사건에서 자신의 정책입안가로서의 역량을 십분 발휘해 임시정부, 중국정부, 일본정부 간의 지정학을 분석하여 삼민주의 및 국제법에 의거한 처리를 제안한다. 그밖에도 태평양전쟁 종결 이후를 다룬 1943년 카이로회담에서 중국을 통해 한국 독립의 보장을 약속받은 것은 당시 우리 외교 역량을 뛰어넘는 성과다.
이론가이자 정책입안가, 외교전략가로서 종횡무진 활동한 삶
8·15해방 이후 4개월이 지난 1945년 12월, 고국으로 돌아온 조소앙 앞에는 신탁통치에 대한 찬성과 반대로 사분오열된 국론이 놓여 있었다. 조소앙은 좌우합작에 매진했고 김구와의 불화를 감수하면서까지 임정법통론을 내려놓고 다양한 분파에 손을 내밀었다. 1948년 남북지도자 연석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평양을 다녀온 것도 이 같은 합작운동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어떠한 성과도 이루지 못한 채 남한으로 복귀한 뒤 방향을 선회한다. 자신의 삼균주의 이상을 좀더 현실적으로 구현하고자 ‘건국 단계의 대한민국’을 전제로 하여 그 토대 위에서 정치 변혁을 꿈꾼 것이다. 이 같은 실험은 1950년 5월 총선 당시 사회당 후보로서 전국 최고득표율로 당선되는 결과를 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발발한 한국전쟁에서 북한 정치보위부에 연행되어 북으로 압송되면서 미완의 꿈으로 남고 만다.
비록 분단의 희생양이 되었지만 조소앙의 삼균주의는 남과 북이 공유할 수 있는 사상적 자원으로서 그 잠재력을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자본주의 세계체제와 한반도 분단체제 아래에서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변화를 바라는 이들, 한국사회의 전통 자산을 활용해 보다 높은 차원의 민주주의를 제시하고자 하는 변혁적 중도론자들에게 그의 사상적 유산은 좋은 기초자료가 된다.
문명전환의 과제에서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의 도전적 기획
지구기후와 자본주의가 불가분의 위기를 맞닥뜨리고 각종 갈등이 팽배한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떠맡은 과제는 결코 가볍거나 단순하지 않다.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을 필두로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위원회는 이 모든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수행해야 할 과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환’이라는 강력하게 실천적인 과제는 우리 모두에게 다른 삶의 전망과 지침이 필요하며, 전망과 지침으로 살아 작동할 사상이 절실함을 뜻한다. 그런 사상을 향한 다급하고 간절한 요청에 공명하려는 기획으로서, 창비 한국사상선은 한국사상이라는 분야를 요령 있게 소개하거나 새롭게 정비하는 평시적 작업을 넘어 어떤 비상한 대책이기를 열망하며 구상되었다.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에서)
서구사상은 오랜 시간 세계 지성계에서 압도적 발언권을 유지하는 한편 오늘날의 위기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대응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그 강력한 위상의 이면에 강고한 배타성과 편견이 작동하고 있음은 이제 주지의 사실이다. 사상적인 면에서도 서구가 가진 위상은 돌이킬 수 없이 상대화되었고 보편의 자리는 진실로 대안에 값하는 사상들의 분투에 열려 있다. 이 시점이야말로 유·불·선의 회통이나 개벽사상 등 한국사상 특유의 사상적 기획이 한국사상이 전지구적 과제를 향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보태기에 더없이 적절한 때일 것이다.
창비 한국사상선 사상가들의 사유에는 역사와 현실을 탐문하며 새로운 삶의 보편적 전망을 구현하려 한 강인한 실천성, 그리고 사회를 변혁하는 일과 개개인의 마음을 닦는 일이 진리를 향한 단일한 도정에 있다는 깨달음이 깊이 새겨져 있다. 한반도의 경험과 지혜가 응축된 사상적 활력을 드러내는 창비 한국사상선이 문명전환의 개벽적인 사유와 실천의 지평을 열어가는 데 의미있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한반도의 새로운 나라는 문명의 대안이 될 것이다’
창비 한국사상선 제23권 『조소앙: 균등사회의 새로운 민주주의』는 일제강점기 민족운동의 거두이자 한국 민족주의 운동의 이념을 체계화한 이론가이며 정책입안가인 조소앙(1887~1958)의 논설을 엮은 책이다. 여타의 독립운동가들이 정치가로서 혹은 사상가로서 하나의 특장점을 갖고 활동했다면, 조소앙은 운동의 실천과 함께 사상의 개진까지를 동시에 추구한 다차원적인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는 조소앙이 어린 시절부터 한학에 도통했고 종교적으로도 깊이 있는 공부를 이어왔다는 점에서도 기인한 바 크지만, 무엇보다도 근대 한국의 종교 교리의 융합을 기초로 하여 동서 사상 간의 경계를 자유로이 오간 데에서 비롯된다. “그의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적 사고는 지리적 경계를 횡단한 그의 이채로운 행적(일본・중국 및 유럽을 두루 다니면서 신조류와 접속하는가 하면, 해방 이후 분단된 조국에서는 남북한을 모두 살아야만 했던 특이한 이력)의 소산인 동시에 한국 사상사를 관통하는 유불선 융합의 사유구조를 내면화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14면)라고 엮은이 백영서 교수는 말한다.
식민지 현실에서 일구어낸 삼균주의라는 변혁사상
1887년 경기도 파주의 한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조소앙은 16세에 성균관에 입학했고 18세에는 자퇴한 뒤 대한제국 황실 유학생 시험에 선발되어 일본 토오꾜오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유학 중에 매국노 처단 운동을 벌이는 등 반일 활동을 이어가다가 메이지대학 법학부에 입학한 뒤로는 유학생 연합회를 이끌며 한일합방 반대 투쟁에 열중했다. 1912년 중국 상하이로 가서 망명 신청을 하고 비밀결사 조직 동제사에 가입하는 등 독립투쟁을 벌임과 동시에, 28세이던 1914년에는 일신교라는 통합 세계종교를 창시했다. 그 뒤로 상하이임시정부 수립과 조선사회당 창당 등을 기획하다가 1919년 「대한독립선언서」(무오독립선언서)의 초고를 작성하고 신규식, 신채호 등과 이를 배포한다.
상하이임시정부 수립 후에는 외무총장을 맡아 빠리를 비롯한 유럽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존재와 한국의 독립을 설파하는 활동을 벌였다. 풍찬노숙의 임시정부 투쟁 속에서도 1922년에는 한살림당(일명 대동당)을 조직하고 「한살림 요강」 등 당의 주요 강령과 정책을 제시했다. 또한 1928년에는 단군조선 이래로 한반도의 선현들이 남긴 명문장을 모아 『한국문원』을 펴냈다. 그리고 자신의 정치이념 연구와 정당정치 이론을 집대성하여 삼균주의를 제창했다. 삼균주의는 1930년 조소앙이 김구, 안창호 등과 함께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정당인 한국독립당을 결성할 때 당강, 당책 등의 기초 이념으로 채택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조소앙이 펼쳐온 행적과 사상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종교 관련 활동이다. 구한말 당시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조소앙은 자기 인생의 목적이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일이고, 하느님이 자신에게 한국을 구하라고 명하셨다고 적었다. 한일합방 직후인 1911년 기독교에 입회했지만 기독교 교리의 유일신 기조에 회의를 품고 통합적 보편종교를 세우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힌다. 그 뒤로 10여년간 전세계를 유랑하며 한국 독립투쟁을 알리는 와중에도 일신교와 대동종교를 연이어 개창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종교적·철학적 탐색 덕택이었다. 조소앙은 “세상의 치란의 안위와 국가의 흥망존폐가 모두 교”에 달려 있다고 보았는데, 여기서 ‘교’란 단순히 종교를 뜻하지 않고 “동시대 민중의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정신적 힘”(16면)을 말한다. 엮은이 백영서는 조소앙의 종교구국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나라를 잃은 식민지 상황에서 종교가 민족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고 말한다.
조소앙은 당대 한반도에 다양하게 포진된 사상 조류를 포괄하고자 했다. 그는 동학과 대동교가 유교·불교·도교의 3교를 통합하고자 시도한 데에서 영감을 얻고, 여기에 3·1운동 등에서 발휘된 조선 민중의 역할을 감안한 토착적 민중신앙을 접목했다. 그리고 이 같은 종교적 신념을 토대로 단순히 개인 차원의 구원이 아닌 민중 전체의 구원을 위한 변혁사상으로서 삼균주의를 제시했다. 조소앙 사상의 요체라 할 수 있는 삼균주의는 진선미(眞善美)의 융합을 우주가 합일을 이룬 경지로 보는데, 중요한 것은 진선미가 정치적 실천과 연결되어 혁명의 이치를 완성한다는 점이다. 나라를 건국하는 데서 정치와 종교를 연계하려는 시도는 다양하게 존재했지만, 조소앙만큼 정치와 종교 간 관계를 근본적으로 사유하고 사상의 도출이라는 성취를 이룬 이는 많지 않았다.
조소앙 사상에서 종교만큼 중요한 요소는 바로 사회주의다. 물론 그의 사회주의는 일신교를 비롯한 종교적 틀 안에서 수용한 사조로서, 그가 만든 사회당 또한 일신교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실천적 종교조직이라 볼 수 있다. 그는 세계의 대표적 종교들이 추구하는 이상이 사회주의의 이상과 다를 바 없다고 보았다. 조소앙의 이 고유한 사회주의관은, 1922년 설립한 사회주의 조직인 한살림당에 그대로 녹아 있다. 한살림당은 궁극적으로 빈부와 신분 격차가 없는 평등사회를 지향했다. 이는 당시 사회주의 운동가들이 쉽게 경도되었던 소련식 공산주의와는 거리를 둔 것이기도 하다. 그는 공산주의운동과 민족주의운동 간의 생산적 경쟁을 중시하여 훗날 해방될 조국에서 둘 중에 무엇이 정책으로 채택될 수 있을지, 그 경쟁을 통해 최후의 승자를 뽑자고 제안한다.
그는 1919년 유럽과 소비에트연방을 순방하며 공산주의의 이상과 현실 간의 거리를 체감했다. 이에 소련식 공산주의를 멀리하며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수용한다. 또한 중국의 국민당과 공산당이 통일전선을 이뤘던 것(1923~27)을 참고하여 한반도와 중국에서 각각 민족유일당 창당운동을 추진했다. 이를 토대로 상하이임시정부를 지탱할 중심체로서 정당이 필요함을 직시하고 한국독립당을 창당했다. 그리고 그동안 숙고하여 체계화한 삼균주의를 당의 이론적 체계와 기반으로 제안한다.
조소앙은 정치 역량이 뛰어난 외교전략가이기도 했다. 그는 상하이임시정부의 외무총장 등 여러차례 외교 분야의 수장으로 활동했고, 특히 1931년 중국에서 일어난 조선인과 중국인 간의 유혈충돌 사건인 완바오산사건에서 자신의 정책입안가로서의 역량을 십분 발휘해 임시정부, 중국정부, 일본정부 간의 지정학을 분석하여 삼민주의 및 국제법에 의거한 처리를 제안한다. 그밖에도 태평양전쟁 종결 이후를 다룬 1943년 카이로회담에서 중국을 통해 한국 독립의 보장을 약속받은 것은 당시 우리 외교 역량을 뛰어넘는 성과다.
이론가이자 정책입안가, 외교전략가로서 종횡무진 활동한 삶
8·15해방 이후 4개월이 지난 1945년 12월, 고국으로 돌아온 조소앙 앞에는 신탁통치에 대한 찬성과 반대로 사분오열된 국론이 놓여 있었다. 조소앙은 좌우합작에 매진했고 김구와의 불화를 감수하면서까지 임정법통론을 내려놓고 다양한 분파에 손을 내밀었다. 1948년 남북지도자 연석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평양을 다녀온 것도 이 같은 합작운동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어떠한 성과도 이루지 못한 채 남한으로 복귀한 뒤 방향을 선회한다. 자신의 삼균주의 이상을 좀더 현실적으로 구현하고자 ‘건국 단계의 대한민국’을 전제로 하여 그 토대 위에서 정치 변혁을 꿈꾼 것이다. 이 같은 실험은 1950년 5월 총선 당시 사회당 후보로서 전국 최고득표율로 당선되는 결과를 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발발한 한국전쟁에서 북한 정치보위부에 연행되어 북으로 압송되면서 미완의 꿈으로 남고 만다.
비록 분단의 희생양이 되었지만 조소앙의 삼균주의는 남과 북이 공유할 수 있는 사상적 자원으로서 그 잠재력을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자본주의 세계체제와 한반도 분단체제 아래에서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변화를 바라는 이들, 한국사회의 전통 자산을 활용해 보다 높은 차원의 민주주의를 제시하고자 하는 변혁적 중도론자들에게 그의 사상적 유산은 좋은 기초자료가 된다.
문명전환의 과제에서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의 도전적 기획
지구기후와 자본주의가 불가분의 위기를 맞닥뜨리고 각종 갈등이 팽배한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떠맡은 과제는 결코 가볍거나 단순하지 않다.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을 필두로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위원회는 이 모든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수행해야 할 과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환’이라는 강력하게 실천적인 과제는 우리 모두에게 다른 삶의 전망과 지침이 필요하며, 전망과 지침으로 살아 작동할 사상이 절실함을 뜻한다. 그런 사상을 향한 다급하고 간절한 요청에 공명하려는 기획으로서, 창비 한국사상선은 한국사상이라는 분야를 요령 있게 소개하거나 새롭게 정비하는 평시적 작업을 넘어 어떤 비상한 대책이기를 열망하며 구상되었다.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에서)
서구사상은 오랜 시간 세계 지성계에서 압도적 발언권을 유지하는 한편 오늘날의 위기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대응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그 강력한 위상의 이면에 강고한 배타성과 편견이 작동하고 있음은 이제 주지의 사실이다. 사상적인 면에서도 서구가 가진 위상은 돌이킬 수 없이 상대화되었고 보편의 자리는 진실로 대안에 값하는 사상들의 분투에 열려 있다. 이 시점이야말로 유·불·선의 회통이나 개벽사상 등 한국사상 특유의 사상적 기획이 한국사상이 전지구적 과제를 향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보태기에 더없이 적절한 때일 것이다.
창비 한국사상선 사상가들의 사유에는 역사와 현실을 탐문하며 새로운 삶의 보편적 전망을 구현하려 한 강인한 실천성, 그리고 사회를 변혁하는 일과 개개인의 마음을 닦는 일이 진리를 향한 단일한 도정에 있다는 깨달음이 깊이 새겨져 있다. 한반도의 경험과 지혜가 응축된 사상적 활력을 드러내는 창비 한국사상선이 문명전환의 개벽적인 사유와 실천의 지평을 열어가는 데 의미있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목차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
서문
변혁적 중도의 고리: 삼균주의의 현재성
핵심저작
1장 종교구국과 사회변혁의 한 길: 조소앙의 종교세계
2장 동아시아 문명자산으로서의 한국문화
3장 삼균주의 형성과 나라만들기
4장 정치개혁의 동력으로서의 한국독립당: 삼균주의 이념과 책략
5장 세계, 동아시아 질서의 모순들: 한중관계 및 국제정세
6장 당위와 현실을 결합한 중도노선: 해방정국의 조소앙
조소앙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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